<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홍상수 감독의 데뷔작이다. 제목에서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역설이 느껴진다. 그렇다. 이 영화는 '재수 없는 날'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겉으로 봤을 때 '치정'과 '살인사건'이라는 나쁜 소재들이 얽힌 작품이다. 이런 소재를 다룬 작품들은 많고, 대개의 평은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세상에 등장했을 때, 평단은 열광했다. 이유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식' 때문이었다.
홍상수는 이 데뷔작부터 범상치 않은 형식의 작품세계를 선보였고, 그 세계를 끊임없이 선보이고 있다. 그의 세계에서는 선형적인 서사가 거부당한다. 그리고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에게 생기를 부여한다. 주조연 모두 살아있는 홍상수의 세계 속에서는 시간 또한 재탄생된다. 선형적인 서사를 거부함으로써 시간은 분리되거나 혹은 중첩된다. 같은 시간의 다른 상황들이 연이어 등장함으로써, 반복과 변주의 세계를 제시한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서는 네 명의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네 개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 에피소드란, 네 명의 인물들이 처한 각자의 상황과 시선들이다. 하지만 각 에피소드는 하나의 전체 상황을 위해 필요한 퍼즐조각 같은 역할을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삼류 소설가 효섭과 유부녀 보경의 불륜이다. 효섭은 그를 따라다니는 민재에게 교정을 맡기고 2만원을 빌려 보경과 만난다. 민재에게 빌린 2만원으로 모텔비를 지불하고 치르는 섹스. 왠지 불길한 기운이 감돈다. 효섭은 저녁에 있는 문인들의 회식자리에서 여종업원과의 트러블로 깽판을 치고, 경찰에 연행되고 5일 간의 구류 선고를 받는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중심인물은 보경의 남편 동우다. 그는 전주로 출장을 갔지만 약속이 파토난다. 그로 인해, 계획에 없던 1박을 하게 된다. 동우의 전주행은 시작부터 재수 없었다. 옆자리 손님이 동우의 구두에 구토를 하는가하면, 적적한 1박을 위해 다방 아가씨를 불렀는데, 그녀와의 섹스에서 콘돔이 찢어진다. 성병의 위험을 느낀 그는 강박관념 때문에 비뇨기과로 향한다.
세 번째 에피소드의 중심은 민재다. 따지고보면, 민재와 보경, 그리고 효섭은 삼각관계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민재의 하루가 보여진다. 민재는 효섭을 위해 모닝콜을 해주고, 극장에 출근해 효섭의 원고를 교정해준다. 오후에는 사장의 눈을 피해 녹음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녀가 이렇게 돈을 열심히 버는 이유는 효섭 때문이다. 효섭을 위해 헌신하는 민재의 모습이 보여진다. 효섭의 생일을 맞아, 선물을 사들고 효섭의 옥탑방을 찾은 민재는, 보경과 마주친다. 보경과 함께 있었던 효섭은 민재의 방문을 탓하며 그녀를 구타한다. 상처받은 민재는 평소 그녀를 흠모했던 극장 매니저 민수와 영혼 없는 섹스를 한다. 이후, 끔찍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마지막 에피소드의 중심은 보경이다. 효섭과의 약속에서 타이밍이 어긋난 그녀의 재수 없는 일상이 그려진다. 모든 걸 포기하고 택시를 탔지만, 지갑이 소매치기 당했음을 안다. 남편 동우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는 바빴고,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보경은 동우의 행적을 쫓다가 비뇨기과를 드나드는 것을 알게 되고 배신감과 실망을 느낀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잠을 청하지만 꿈 속에서도 자신이 죽는 등 찝찝한 상황들이 이어진다. 그리고 밤에는 동우와의 영혼 없는 섹스를 한다. 다음날, 우리는 그녀의 쓸쓸하고도 불안한 뒷모습을 보게 된다.
대략 정리된 네 개의 에피소드만 봐도 이 영화의 색빛은 검붉다. 냉혹한 현실을 민낯처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리얼리즘의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과 시선이 분리된다는 점을 놓고 본다면, 이 영화는 안티-리얼리즘에 가깝다. 현실과 판타지 모두를 아우르는 홍상수의 세계.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그 세계의 출입문이다. 강렬한 출입문 덕분에 홍상수는 평단의 주목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리들 모두에게도 '우물에 빠진 날'이 있을 것이다. 영화와 같은 상황은 아니겠지만, 유달리 운수 나쁜 날이 있었을 게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속 인물들처럼 최악의 상황들에 부딪친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 대해 홍상수는 '괜찮을거야'라는 위로를 전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감의 네트워크를 선사한다. 때로는, 위로보다 공감이 더 큰 힘이 될 때가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홍상수의 영화가 특효약일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