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만큼 깊은 그리움
<라우더 댄 밤즈>는 그리움의 정서를 한껏 머금은 작품이다. 유명 종군 사진 작가였던 '이사벨'. 그녀는 은퇴 후 갑작스러운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 남겨진 그녀의 세 남자(가족)는, 다른 방식이지만 이사벨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살아간다.
이 영화는, 그리움의 정서 속에 사랑과 비밀을 동시에 품고 있다. 어쩌면, 그리움과 사랑의 무게는 저울질 할 수 없을 만큼 영화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동시에 영화가 지닌 흥미로움은, 이사벨의 죽음에 대한 '실질적인 이유'에 있다. 이사벨의 표면적 죽음의 원인은 자동차 사고였으나,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이사벨의 죽음은 그녀 스스로가 택한 것이었다. 이사벨의 실제 죽음에 대해 남겨진 세 남자는 각기 다른 슬픔의 무게를 안고 살아간다. 또한, 나름의 방법으로 이사벨의 부재를 극복해나간다. 이사벨은, 자신이 경험한 총격의 흔적보다 더 큰 마음의 구멍을 가족들에게 남기고 떠난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상실과 아픔과 헛헛함을 구멍들로만 풀어내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해내고 있으며, 구멍난 사랑의 공간을 또 다른 사랑으로 채워나가려는 남겨진 자들의 노력으로 희망을 노래한다. 이사벨이 촬영한 날것 그대로의 종군 사진들과 잔혹한 취미와 취향을 즐기는 콘래드의 일상 스케치는, 이상한 동시에 감성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 이는, 죽음이 지닌 중의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죽음은 슬픔의 표상인 동시에, 그리움과 사랑의 정서를 증폭시키는 강력한 원인이 된다. 슬픈 동시에 아름다운 것이, 바로 '죽음'이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다양한 시선과 대처법을 보여주는 <라우더 댄 밤즈>. 비단, 가족의 죽음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이같은 상황에 놓일 때가 많다. 우리는, '동상이몽'의 상황을 어렵지 않게 경험한다. 하지만 그 상황이 해결이나 통합의 방향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이해'와 '화합'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사벨의 남겨진 세 남자는 '분리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보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가능성이 보여진다.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따라서, 죽음에 의한 슬픔 역시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노력만으로 끊을 수 없는 것이 슬픔이지만, 그 안에서 갇혀 살 수만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라우더 댄 밤즈>는, 슬픔에 대한 극복, 가족 간의 사랑과 이해, 화합에 대한 방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더불어, 이사벨의 종군 사진 작가로서의 직업의식(사명감)과 가정 내외에서의 역할론에 대한 갈등도 엿볼 수 있기에, '여자의 사회활동'에 대한 속내(딜레마)도 확인할 수 있다(이 부분에서는 영화 <천번의 굿나잇, 2013>과도 닮았다).
이렇듯, 이 작품은 캐릭터의 내면을 깊이있게 파고드는 영화다. 따라서, 여운이 짙은 영화다. 먹먹하고 차가운 냉기에서부터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온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온도를 지닌 작품 <라우더 댄 밤즈>.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