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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썸머 Aug 29. 2021

4. 남자 보는 눈도 결국 물극필반


       

물극필반.

만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대 극으로 돌아간다.


     

학부 시절, 동양철학 시간에 배운 개념이다. 살아보니 정말 이 물극필반처럼 맞는 말도 없다. 특히 요즘 남자 보는 눈이 물극필반인 시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통통한 체격의 남자들을 좋아했는데, 나와는 반대되고, 왠지 폭신한 느낌이 드는 게 좋았다. 그리고 좋아했던 남자들은 왠지 모르게 찌질한 구석이 있었는데, 그것이  귀여웠다. 최근에 이런 내 예전 이상형에 가까운, 통통하면서 왠지 찌질미있는 남자가 친구 주선 소개팅남으로 등장했다.     



피플 첫 매칭이 있었던 날, 낮에 만난 친구가 소개팅을 제안했다. 역시 물 들어오는 때는 한 철이니, 노를 젓고자 역시 오케이를 했다. 소개팅남은 동네에 사는 사람을 찾고 있었고, 때마침 그게 나였고, 직업도 문과 출신인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여튼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그런데 그는 만나기 전부터 너무나도 구구절절 자신의 일상을 공유했다. 소개팅 전, 적당한 다정함은 좋지만 과하게 되면 만나서 맘에 들지 않으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이 들 수밖에 없다.      



그와의 약속 날,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를 보고 이 소개팅은 망했음을 직감했다. 그는 너무나도 내 과거 이상형에 적합했다. 그때의 나라면 반했을 테지만, 우린 시기를 잘못 만났다. 지금의 나는 예전 이상형인 통통 찌질미남에게 끌리기보단 오히려 반감을 갖고 있다. 애석하게도 지난 실패들을 통해 배우게 된 본능적인 반감이다. 그저 물극필반이 되었을 뿐이다.     



예전이라면 매력적이었을 그의 체격이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엔 귀엽게 여겨졌을 그의 말들, 만나기 전에 칼같이 대답하셔서 눈치 보였어요, 등의 대사가 별로로 느껴졌다. 다음에 초밥을 먹으러 가잔 그의 말에 한번 더 만나볼까도 했지만, 미지근한 내 톡에 그도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도 내 맘을 돌릴 만큼의 애정이 없었으니, 역시 물극필반의 법칙은 깨지지 않았다.     



실은 단순히 과거의 남자친구들이 통통하고 찌질미가 있어서 그런 남자를 피한다는 것은 핑계다. 이상하게 그때 그런 외모와 성격의 남자들은 연인에 대한 존중감이 부족했다. 잠수 이별을 한 사람도 있었고, 내 핸드폰을 몰래 훔쳐보고 그걸 떳떳이 싸움의 수단으로 삼은 사람도 있었다. 좋은 추억을 모두 덮어버릴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저런 사람은 이럴 거야, 라는 큰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이제는 마르거나 적당한 체격의, 찌질하기보단 쿨한 남자도 만나보고 싶은 것을. 효리 언니도 이 산, 저 산 다 가봐야 내게 맞는 산이 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이 와중에 그 피플 첫 매칭남은 신기하게도 꾸준히 연락을 해오고 있었다. 계속 관심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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