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까페쇼에 갔다. 올해는 20주년이라서 볼거리가 풍성하다는 소문을 들었다. 직접 현장에 가보니 사실이었다. 볼거리가 풍성한 만큼 행사장을 찾은 사람들도 많았다. 미로 같은 행사장 곳곳마다 사람들로 인한 정체가 빚어졌다. 시음을 하거나 증정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부스 앞에 줄을 서는 바람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나 역시 그 혼란에 가담했다. 사실은 관심 있는 부스만 둘러보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길게 선 줄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무언가 홀린 듯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여차저차 증정품을 받고, 다른 부스에 가서 또 줄을 서고... 즐겁고도 괴로운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기업들은 그야말로 경쟁적으로 증정품을 나누어주었다. "선착순 백 명에게 드려요, 얼른 오세요!" "인스타그램 팔로우 하시면 본품을 드려요!" "1만 원 이상 사면 시럽 본품이 공짜예요!" 덕분에 쇼핑백이 금세 무거워져서 끈이 어깨를 사정없이 파고들었지만 꾹 참았다. 다리도 점점 아파왔지만 참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다만 인파로 인한 열기 때문에 자꾸 흐릿해져 가는 머릿속이 문제였다. 의도치 않게 똑같은 부스에서 똑같은 증정품을 여러 번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즈음, '도망쳐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핸드폰에는 이미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와 있었다. 친구와 친구의 오빠로부터 온 전화였다. 분명히 혼자 온 게 아닌데, 어느새 나는 혼자 떨어져서 드넓은 행사장을 종횡무진했던 것이다. 어깨 양쪽에 맨 거대한 쇼핑팩, 그리고 손에 든 작은 쇼핑백과 함께 행사장을 빠져나왔다. 차가운 공기를 쐬려고 아예 코엑스 건물 밖으로 나왔다. 대리석 벤치에 쇼핑백들을 내려놓고 친구와 전화 통화를 했다. "쇼핑 잘하고 있는 거지? 미안해 난 지금 밖에 나왔어." 차갑고 습기에 젖은 초겨울 공기가 코 끝으로 스며들었다. 길 건너편에는 고색창연한 사찰이 오후의 햇살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냥 봉은사로 튈까?' 이것저것 가득 담겨 입을 벌리고 있는 쇼핑백들을 보고서, 마음을 접었다. 이를테면 전쟁을 치르고 얻어낸 전리품인 셈인데 딱히 맡길 곳도 맡길 생각도 없었다. 좀 더 봉은사 입구를 건너다보며 시간을 보내다가, 코엑스 건물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들과 욕망과 이상한 열기가 넘실거리는 행사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2021.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