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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어스름 속에서 잠이 깼다. 커튼이 미처 가리지 못한 창문 일부를 바라보다가, 밖에 눈발이 흩날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차갑게 얼어붙은 것들이 바람과 함께 휘몰아치고 있었다. 고요 속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다시 아득히 멀어졌다... 나는 핸드폰을 주섬주섬 찾아서 들여다보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코로나 위중증 환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오픈 채팅방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지난밤 사이 다섯 명이나 되는 부모님들이 차례차례 숨을 거두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목숨이 꺼져가는 환자들이 여럿 있었다. 어떤 보호자는 병원에서 급하게 연락을 받고 임종 면회를 하러 출발했다고 했다. 또 다른 보호자는 거리 때문에 도저히 제시간 안에 병원에 도착할 수가 없어서 영상통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위중증 환자 가족들에게 환자의 임종을 지키는 일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대부분 손 한번 잡아보지도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하고 가족을 떠나보낸다. 병원의 통제 속에서 겨우 허락되는 임종 면회, 너무나도 늦은 연락, 너무나도 황망한 이별... 보호자들은 병원의 연락을 받고 달려가면서도 가족의 마지막 순간을 곁에서 지킬 수 없으리란 사실을 알고 있다. 확진에서부터 증세의 악화, 다시 죽음의 선고를 받기까지 모든 과정이 예측불허이기 때문에 보호자들은 고통과 슬픔을 제대로 느낄수조차 없다. 단 며칠만에 폭삭 늙어버린 사람이 되어 신을 찾거나 오직 체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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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또 한 분의 부모님이 숨을 거두었다는 내용의 카톡이 떴다. 해는 중천을 지나 서서히 기울고 있었고, 나는 혼잡한 노원역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다. 눈이 쌓여 미끄러운 길 위로 다시 눈이 내리고 내리고 사람들은 추위에 떨면서 자기 발만 쳐다보고 있는데... 저 건너편에서 응급차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빨간 신호등 앞에서 멈춰 서서 하하하하하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응급차를 보고 있자니 가슴이 서늘해졌다. 엄마와 함께 응급차에 몸을 실었던 날이 갑자기 선명하게 엄습해왔다. 엄마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는지 모르고 있고, 나는 응급차의 난폭한 질주에 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응급대원은 엄마의 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하면서 코로나 위중증 환자 병상이 있는 병원을 구하는 것이 힘들 것이라는 말을 거듭했다. 그렇게 그날 이후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 모든 일을 없던 것으로 하면 안 될까? 가슴이 다시 희미하게 아파왔다. 삶의 조각들이 힘겹게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것은 이전과 다른 결을 가진 다른 삶이 될 것이다... 신호등의 불이 바뀌고, 응급차가 급하게 우회전을 하며 내 앞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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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지나 밤이 되었지만 눈발은 그치지 않았다. 기온은 더욱 떨어져서 옷을 두텁게 입어도 추위가 뼛 속까지 스미는 듯했다. 집에 도착해서 몸을 녹였지만 정신적인 한기는 가시지 않는다. 오늘 하루 동안 많은 보호자들이 엄마와 아버지, 누나와 이모들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버티고 버티던 여린 목숨들이 매서운 겨울 한파 앞에서 속절없이 져버렸다. 특히 환갑을 넘긴 고령의 어르신들이 버티지를 못했다. 나의 엄마는.... 놀랍게도 서서히 호전되고 있었다. 며칠 내로 중환자실을 벗어나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을 거라는 전망이었다. 사경을 헤매던 초반의 상황을 생각하면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의사의 말을 듣고 기뻐했던 마음은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사실은 기쁨이라는 감정 자체가 무척이나 생경하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홀로 기뻐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병실에서 황망하게 죽어가고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많이 슬퍼하시고, 충분히 위로받으세요.' 남겨진 유족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이란 이렇게 빈약하기 짝이 없어서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하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내일은 기습 폭설과 함께 전날보다 기온이 10도 이상 더 떨어진다고 한다. 차라리 아주 많은 눈이 내린다면, 세상이 완전한 고요 속에 파묻힌다면, 삶도 죽음도 모두 같은 흰 빛으로 지워버릴 수 있다면 좋겠는데...
2021. 12.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