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뱀 이야기이다. 길고, 아름답고, 축축하고, 결정적으로 아주 느린 것에 대한 이야기다. 뱀을 본 적이 있나요? 나는 어릴 적에 서해의 외딴 섬에 살았었고, 크고 작은 뱀들을 종종 봤다. 존재 자체만으로 혐오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그것을. 이번에는 흔한 통증 이야기이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역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을 때면 특정한 신체 증세에 시달리곤 한다. 아주 자세하고 실감 나게 묘사할 수도 있지만 왠지 구질구질하니까 그냥 통증이라고 하자. 그것은 길고, 아름답지는 않지만 축축하고, 결정적으로 아주 느리게 지나가는 것이다.이번에는 흔한 불행과 흔한 슬픔을 흔하지 않게 오롯이 담아내고 있는 어떤 시 이야기다.
이 시는 '아버지를 병원에 걸어놓고 나왔다'라는 담담한 독백으로 시작된다. 얼굴이 간지러운 것은 흐르는 눈물 때문일까. 시인은 다른 숱한 사람들처럼 '아버지'라는 이름의 불치의 병명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라는 이름의 피할 수 없는 슬픔이라고 해도 다른 말은 아닐 것이다. 시인의 눈앞에는 개처럼 질질 끌려서 이송되어 병원의 침대에 누워있는 아버지가 있다. 심각한 알콜중독으로 인해 몸도 마음도 망가져버린 아버지이다. 딸인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어쩐지 부끄러운 말투로 처제, 라고 부르는 아버지이다. 시인의 눈앞에 다시 막막한 천장이 펼쳐진다. 막막하고 텅 비어버린 듯한 슬픔 속에서, 천장을 지나가는 뱀 한 마리 본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뱀은 기운이 없고 축축하다. 뱀은 이 모든 상황을 관망하는 것처럼 하품을 한다. 시인 또한 대수롭지 않은 듯 뱀을 구경하고 있다.
그때 뱀이 말한다. 아니 아버지가 말한다. '나는 원래 느리단다 그러니 얘야,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으렴' 시인과 아버지 사이의 질긴 연은 시인이 죽거나, 혹은 아버지가 죽어야 끝이 날 것이다. 아버지는 마치 한 마리의 뱀처럼 느리지만 확고하게 시인의 인생을 관통하여 지나가고 있다. 아버지는 또한 그 자신의 풍파 많은 인생길을 맨 몸으로 느릿느릿 기어가며 지나가고 있다. 시인은 특유의 예민한 촉으로 아버지의 기나긴 어둠이 마지막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렇게 모두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고통은 견딜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러니 얘야,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기도해주렴'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참 길구나. 뱀이란 정말 길고, 아름답고, 축축하고 느리구나... 시인이 미처 드러내지 못한 아픔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한때 가족에 대한 원망과 분노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아픈 기억이 아직까지도 주홍글씨처럼 내 안에 남아있다. 박연준 시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 역시 병원의 천장에서, 어두운 길거리에서, 무신경한 사람들 속에서, 나의 뱀을 여러 번 만나왔던 것이지도 모른다. 어쩌면 뱀에게 필사적으로 말을 걸려고 했던 적도 있었을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과연 그런 적이 있다. 애정을 담아 당신에게 권고한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을 겪을 때, 문득 천장을 지나가는 뱀을 보게 된다면 너무 오래 눈을 마주치지 마시길. 말을 걸지도 마시길. 뱀이 내 가슴속에 들어와 차갑게 똬리를 틀지 않도록 그냥 눈을 감아요. 뱀이 그냥 지나가도록 놔두세요. 이 짧고도 허망한 글을 쓰느라 새벽에 깨어있었다. 조금 있으면 어둠이 고개를 다 넘어가서 아침이 희끗하게 밝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