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수자 이야기
2011년, 스므살 쯤 된 BMW가 아지랑이가 이는 네바다주 사막을 힘겹게 달린다. 사이드 미러 뒤로 사라지는 아지랑이가 신기루로 변한다. 뜨거운 사막에서만 볼 수 있는 진정한 착시 효과다. 라스베가스에서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는 국도는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과 이름 모를 선인장들로 시작한다. 600마일 이상을 달려 캘리포니아주 요새미티 국립공원 근처에 도착할 때 즈음 부터는 세쿼이아(안개비가 내리는 북미지역에서 볼수 있는 나무로 세계에서 가장 긴 나무 종으로 꼽힌다)가 울창한 숲이 펼쳐진다. 그 사이로 우뚝 솟은 6월의 설산은 그야 말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휘트니 휴스턴과 같은 이름을 가진 이 산(휘트니)은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산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고작 라스베가스가 있는 서쪽 네바다 주에서 북쪽을 향해 13시간을 달렸을 뿐인데 황량한 사막과 눈 덮인 산을 한낱 시간 여행을 하듯 지나친 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나의 신께 경의로움을 표한다.
해가 지면서 밤 하늘에는 별들이 꼬마 빛을 내리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하려면 아직 4시간 이상은 더 달려야 한다. 미국 국적의 사촌 오빠와 나는 인근의 산장같은 호텔에서 하루 묵어 가기로 했다. 담배 냄새가 진득하게 베인 방에는 내 허리 만큼 높은 시트의 침대가 멀찌기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피곤한 몸을 누이자 바닥을 향해 쭉 꺼지는 메트리스 덕에 허리에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잠을 잔듯 만듯 한 몽롱한 상태로 이른 새벽 레이크 타호를 들리기 위해 간신히 침대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산장 밖으로 나오자 숲이 뿜어내는 청량한 공기가 찌든 담배 냄새로 어지러웠던 머릿속을 뚫고 지나간다. 레이크 타호는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북동쪽으로 3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데 미국에서 가장 큰 고산 호수로 알려져 있다. 차를 타고 두시간을 돌아야 할 만큼 거대한 호수의 물결이 출렁일 때 마다 파도치는 바다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켰다.
낮 2시가 되서야 겨우 도착한 샌프란시스코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대도시답게 베이 브릿지를 통해 샌프란시스코로 들어가려는 차들의 행렬이 꽤나 길다. 다운타운은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 했지만 우산을 들고 있는 사람은 왠지 나뿐인 것 같았다. 모자를 쓰고 걷는 사람들의 걸음에는 왠지 모를 여유가 느껴지기도 했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낯설음이 느껴진다. 이 도시 구석구석을 돌다 보면 깃발 같은 홍보용 포스터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주로 마약상담이나 성소수자와 관련된 것들이다. 함께 걷던 사촌 오빠가 잠시 나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는 "남자 둘이 유모 차 밀고 가는 거 보여?"라고 물었다. "응" 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고보니 한국에서 아줌마 둘이(이웃 사이거나 자매사이) 유모차 한대를 밀고 가는 모습은 많이 보았지만 대 낮에 남자둘이 유모차를 밀고 가는 모습이 익숙한 그림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들을 의식하지 않는다.
Love is all you need?는 Kim Rocco Shields 감독 작품으로 2016년 제18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개봉됐다. 영화는 동성애자를 주류, 이성애자를 비주류로 세상을 거꾸로 조명한다. 지금은 풀 버전 영상을 구할 수 없지만 한국다양성연구소에서 제공하는 20분짜리 단편작으로 만날 수 있다. 주인공 애슐리는 동성애자가 주류인 세상에서 hetero 즉 이성애자의 감정을 가지고 태어난 성 소수자다. 그녀가 다섯살이 되던 해에 삼촌의 결혼식에서 우연히 마주친 꽃돌이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 애슐리는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간다. 그리고 이성애자라는 놀림과 낙인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2000년대에 들어 국가인권위원회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성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하고 있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는 것 같지만, 여전히 사회는 다수자 진영이다. 샌프란시스코는 2004년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을 합법화하며 미국에서는 최초로 동성혼을 인정한 도시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이루어진 모든 동성혼은 2008년에 무효화 되었고 2013년 미국 대법원에서 다시 합법화 될 때 까지 중단 되었다. 누가 다수자이고, 누가 소수자 인가?
샌프란시스코의 일상은 여느 도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수시로 변덕을 일삼는 날씨와 그로 인한 세계적인 커피 소비량, 다양한 인종, 전세계 각지의 관광객 그리고 LGBT(Lesbian, Gay, Bisexual,Transgender)
.... 이 도시에서 만큼은 다수자도 소수자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적어도 이 도시에 삶을 뿌리 내리지 않은 나같은 관광객의 눈에는 그러했다. 6월이 되면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세계 최대 피어축제가 열린다. 어쩌면 페스티벌이라는 명목아래 자신들의 존재를 필사적으로 알리고 있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거대하게 치루어지는 행사와 성 정체성에 대한 개방적 표출만이 아니다. 오랜 기간 이곳에 기반을 두고 정착한 다양한 인종과 민족에 대한 이해없이 샌프란시스코를 아는척 한다는 것은 큰 실례다. 최근 대학원 수업으로 '한국의 소수자'에 대해 배우면서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이 결핍된 나는 한 학기를 반성의 마음으로 보내야 했다. 19세기 미국에 불어닥친 이민 열풍과 소수민족이 다수의 인구로 이루어진 샌프란시스코는 그야 말로 자유가 있는 곳 이다.1840년 이후 미국은 멕시코와의 전쟁을 끝내고 미합중국에 샌프란시스코를 할양했다. 그리고 1849년 전세계에 퍼진 골드러시로 인해 캘리포니아와 샌프란시스코로 수많은 이민자들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의 욕망과 투기로 원주민을 몰아내고 극성장한 도시...
미국 역사를 잠시 공부하다 성 정체성이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 만은 아니라는 생각 들었다.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겪는 다양한 경험, 문화, 사회적구조, 예술 등 모든 것이 그의 성 정체성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닐까? 한 인간의 혼재된 내면과 생태계를 이해하지 않고는 다양성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한 '우리'라는 집단에 소속되어지 위한 노력이 다양성을 부인하고 있는 감추어진 마음이 아닌지 들여다 보아야 한다. 나 스스로를 '다수자'라고 할 때, 누군가는 소수자가 되고 누군가는 'Love is all you need'의 애슐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