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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있는 무대 Sep 27. 2021

소년의 눈물을 흘리는 환갑의 아버지

소년의 눈물을 멈추게 하지 말지니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고 나서 그 이후 태어난 세대들은 사랑이나 돌봄에 대한 주제보다도 생존을 위협하는 질병과 먹을 것에 대한 결핍만 채워져도 감사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었다. 집안 어른이 폭력을 쓰든, 화를 내든, 타박을 하든 먹을 것만 주어져도 감사한 상황이었다. 현재의 50세 이상 70세 어른들인데 내겐 부모세대에 속한다.


아버지는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배제를 당했다고 한다. 이 억울함이 어찌나 큰지 70년대 국가가 발전해 나라의 기강이 강해지는 때에도 10세였던 소년 아버지의 마음은 허약해져만 갔다. "나도 하고 싶은데." 소년이었던 아버지는 형에게 밀려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살아 억울해서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이 눈물을 받아주는 이가 없으니 아버지는 삼키고 삼킨 눈물을 모아, 지금까지도 찔끔찔끔 흘리게 된다. 나이가 30이 넘은 아들 앞에서도 과거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이미 손녀가 세상에 나와 칭얼거리는 소리를 들려주며 미소 지으면서도 아버지 안에 있는 소년은 자신의 어릴 적 억울함과 슬픔, 어미에게서 짜내려 했던 젖의 한 방울의 모유를 먹겠다는 아이처럼 칭얼거리듯 과거를 회상하기도 한다.


그때, 마음껏 눈물 흘리게 해 주고 달래주는 어른이 있었더라면, 내 아버지의 마음 그릇에는 소년의 눈물 대신에 만족과 평안이 자리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가 채워주지 못한 사랑을 자식의 성장을 보면서 채워졌다고 하니 태어나서 말 못 하는 아이의 미소와 움직임으로 다 보상받았었다고 말하신다.


어릴 적 어른을 보면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이 되며 무서운 것도 없고 두려워 눈물 흘릴 일도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어른이 되었고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서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는 일을 한다. 눈물 흘리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하는 상담사 일이 참 좋은 까닭이다. 마음 그릇에 찬 눈물을 비워내 주면 그 자리에는 기쁨과 평안, 그리고 과거를 다시 새로 쓸 힘이 담긴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보면, 여전히 낯설기도 하고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가장 잘한 일은 아버지의 무덤 앞에 서서 후회하지 않는 일이겠다. 살아있을 때 내가 효도할 수 있는 일은 좋은 물건을 사드리는 것에 신경 쓰기보단 아버지 안에 있는 소년의 억울함과 슬픔을 달래주고 기뻐 뛰어놀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겠다. 환갑이 넘은 아버지가 더 늙기 전에 세상을 여행하듯 놀고 싶다고 한 뜻을 하루라도 더 빨리 실현시킬 수 있도록 오늘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손녀를 보여드린다. 오늘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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