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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있는 무대 Oct 02. 2021

용서하기 전에 거리를 둬야 합니다.

나 자신을 위한 용서. 첫 시작은 거리두기부터

'확, 죽일까...'


왕따를 주도했던 녀석이 누군지 알게 되고 밤마다 되뇐 생각이다. 얼마나 치밀했는지 학원 위치, 끝나는 시간을 알아냈고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구간이 어딘지도 파악했다. 매일 밤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돌려도 끝에는 눈물을 흘리며 무력감에 빠져 잠들었다.


아버지께 말하니, 가서 죽여 패란다. 마음 같아선 100번도 더 죽였다. 안 하고 싶어 그러겠나. 그건 옳지 않았다. 마음도 약했다. 방구석 여포처럼 한 곳만 멍하니 응시하며 상상으로나마 잔인하게 해체한 것만으로 하루 위로를 받았던 터다. 누구를 사귀어도 의심과 경계를 하고 종속관계를 스스로 맺었다. 타인보다 낮은 자세로 인간관계를 맺어갔다. '너는 날 떠나지 않으면...' 날 싫어하진 않을까, 날 좋아하게 만들려면, 이때 연구하고 분석했다. 덕분에 큰 자양분은 됐다.


아버지도 무서웠다. 크르릉 쾅쾅. 천둥 치는 소리가 안방에서 난다. 아버지의 포효다. 덕분에 집은 먹구름 비 오는 날의 연속이었다. 기상청 캐스터가 뭐라고 떠들든 마음의 우산은 늘 펼친 채로 낙뢰로 파닥이는 사슴처럼 무서워했다. 힘과 키가 커지면서 무서움은 분노와 증오로 바뀌어갔다.


단절된 10대의 인간관계와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연결되니 슬퍼하지 못해 화내는 인간이 됐다. 모든 세상이 적과 분노로 가득 찼다. 이길 방법은 무릎 꿇고 기도밖에 없었다. 용서하라고 해서 용서하는데, 도저히 안된다. 화장실로 끌고 가 팼던 녀석이. 내게 소리 지르는 아버지가.


용서해야 한다는 생각과 미워서 화가 나는 '나'가 서로 충돌하다 못해 매일 싸운다. 정신적 에너지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10년을 망각으로 덮어놓고 살다 보니 꽤나 살만했다. 버스로 1시간 거리로 이사를 했고, 대학과 군대를 다녀오고 나니 잊었다. 아니 잊었다고 믿었다.


스승을 만난 지 한 달이 됐을까. 상담교육시간에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람을 불러보세요." 무너졌다. 한참. 마음도. 눈물도. 생각도. 왜 네가 떠오르는 거냐. 왜. 왜. 왜.

엉엉 울었고, 파르르 떨었다. 27살이 14살이 되어 울었다. 그리고 무서워했다. 혼자 화장실 끌려가 맞은 기억. 아버지에게 말하다가 차단당한 기억이 터져 나왔다. 막을 재간이 없었다. 기절 직전까지 갔다.


스승은 내게 말했다. '거리를 둬보라고' 도망치지 말고 주체적으로 그 사람을 어디로 보낼 건지 정해 보라 했다. 저 멀리 보냈다. 감방으로도 보내고, 지옥으로도 보냈다. 다 보냈다. 그리고 '가고 싶은 곳'으로 가보라고 했다. 어릴 적 18평 아파트 장롱문을 열고 들어가 숨었던 곳. 안락처였다. 그곳에서 난 쉬웠다. 내 주변을 정리하니 모든 게 선명했고 쾌적했다. 마음의 공간에 세워두었던 미운 대상들은 다 제거했다.


이를 계기로 용서는 곧 나를 위함임을 알았다. 잘못한 대상이 받을 법적 책임은 이제와 물을 수 없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나를 파고들었다. 이로부터 살아남는 것은 그 대상이 죽거나 다치거나 ㅈ되거나 하는 등도 있겠으나 내 마음 한편에 세워둔 대상은 내가 치워야 한다. 나를 만난 내담자들에게 건넨다.


"법적 책임 묻는 일은 선생님이 결정하시면 됩니다. 그전에, 마음 어떤 공간에 선생님에게 좋을 것들만 모아둬야 해요. 밉거나 싫은 대상을 세워뒀다면 잠시 정리합시다."

청소가 아니라 정리다. 비움으로서 채워지는 기적은 용서를 통해 일어난다. 상대를 위한 게 아니다. 나를 위한 거다. 상대를 용서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랑이 필요하다.

거리를 두면 더 넓은 공간에서 쾌적해진다. 사랑하는 것과 좋은 걸로만 채워도 부족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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