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영 Mar 10. 2019

할머니


할머니와 얽힌 추억의 대부분은 기분이 좋지 않은 일들이다. 어렸을땐 일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돌봐주셨다. 아빠는 막내아들이었지만 할머니를 20여년간 모시고 살았다. 하고싶은 말을 다 꺼내놓는 성격에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 전화는 돌고 돌아 마지막엔 꼭 엄마에게 왔다. 할머니는 우리 남매와 터울이 크지 않은 작은고모네 사촌들을 더 챙겨 늘 서운했다. 나는 하교하고 돌아오면 거실에서 뽀옹짝을 크게 틀어 놓는 할머니가 싫었고, 그림을 시작했을땐 날 보며 환쟁이라했던 할머니가 싫었다. 늘 반찬을 한데 모아두는 것도 싫었고 할머니가 만드는 두꺼운 만두피도 싫었다.



가장 싫었던 기억은 유치원 원장님이 사탕목걸이를 걸어주고 볼에 뽀뽀를 해주던 생일파티때의 일이다. 다른친구들은 다 양장을 입은 엄마아빠가 오셨지만 나만 연보라색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왔다. 원장이 뽀뽀를 하는것도 기분이 나쁘고 내 옆에 할머니가 있는것도 기분이 나빠 두꺼운 아랫입술이 더 삐쭉 나왔다. 한복입은 할머니와 찍은 기념사진에 내 얼굴은 울기 직전이었다. 눈물을 꾹꾹 참으며 속으로 바쁜 엄마를 원망했다. 사진을 막 다 찍었을 쯤 일을 마친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겨울에 볼이 빨갛게 튼 엄마가, 까만목티를 입은 엄마가 달려온 것이 기뻐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와서 너무 기뻤기때문에 나는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더 미웠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작아보였다. 작년에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몇년전부터 따로 살기시작했는데, 꽤 적적하셨는지 여러 사람을 만나는 성당활동을 즐거워하신다. 할머니는 기도를 해야 잠이 잘 온다고 믿고있었다. 아흔이 넘어서도 강건하던 그 기질도 모두 꺾여 이제는 조용히 기도만 할 뿐이다. 말 수는 적어졌고 그저 웃는일이 많아졌다. 이제서야 나는 할머니가 가엽기도 하고 할머니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내복을 하나 사서 드리니 기뻐하며 어렸을땐 가리는 음식이 많더니 이제는 다 잘 먹으니 좋다고 하셨다.

 

작가의 이전글 올리브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