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얽힌 추억의 대부분은 기분이 좋지 않은 일들이다. 어렸을땐 일에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나를 돌봐주셨다. 아빠는 막내아들이었지만 할머니를 20여년간 모시고 살았다. 하고싶은 말을 다 꺼내놓는 성격에 맘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친척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 전화는 돌고 돌아 마지막엔 꼭 엄마에게 왔다. 할머니는 우리 남매와 터울이 크지 않은 작은고모네 사촌들을 더 챙겨 늘 서운했다. 나는 하교하고 돌아오면 거실에서 뽀옹짝을 크게 틀어 놓는 할머니가 싫었고, 그림을 시작했을땐 날 보며 환쟁이라했던 할머니가 싫었다. 늘 반찬을 한데 모아두는 것도 싫었고 할머니가 만드는 두꺼운 만두피도 싫었다.
가장 싫었던 기억은 유치원 원장님이 사탕목걸이를 걸어주고 볼에 뽀뽀를 해주던 생일파티때의 일이다. 다른친구들은 다 양장을 입은 엄마아빠가 오셨지만 나만 연보라색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왔다. 원장이 뽀뽀를 하는것도 기분이 나쁘고 내 옆에 할머니가 있는것도 기분이 나빠 두꺼운 아랫입술이 더 삐쭉 나왔다. 한복입은 할머니와 찍은 기념사진에 내 얼굴은 울기 직전이었다. 눈물을 꾹꾹 참으며 속으로 바쁜 엄마를 원망했다. 사진을 막 다 찍었을 쯤 일을 마친 엄마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겨울에 볼이 빨갛게 튼 엄마가, 까만목티를 입은 엄마가 달려온 것이 기뻐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사진을 찍었다. 엄마가 와서 너무 기뻤기때문에 나는 한복을 입은 할머니가 더 미웠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는 작아보였다. 작년에 세례를 받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셨다. 몇년전부터 따로 살기시작했는데, 꽤 적적하셨는지 여러 사람을 만나는 성당활동을 즐거워하신다. 할머니는 기도를 해야 잠이 잘 온다고 믿고있었다. 아흔이 넘어서도 강건하던 그 기질도 모두 꺾여 이제는 조용히 기도만 할 뿐이다. 말 수는 적어졌고 그저 웃는일이 많아졌다. 이제서야 나는 할머니가 가엽기도 하고 할머니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내복을 하나 사서 드리니 기뻐하며 어렸을땐 가리는 음식이 많더니 이제는 다 잘 먹으니 좋다고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