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시는 한살 무렵, 심한 분리불안을 앓았다. 사람이 나가면 문을 긁고 문틀을 뜯고, 집안의 물건을 엉망으로 만들기 일쑤였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매일 거실에 온갖 물건들이 널부러져있었다. 구두며 운동화, 고심하며 고른 가구의 서랍, 여행지에서 사온 기념품이나 친구들의 선물, 아끼는 그림책까지 모두 멀쩡하지 못했다. 거실의 모습을 보고 진이 빠져 한참을 멍하게 서있기도 했다. 정신을 차리고 쓰레기봉투에 물건들을 담으며 첼시를 혼내지도 못한다. 그저 미안했다. 그런 와중에도 첼시는 내 맘은 모르고 못쓰게 된 물건으로 장난을 치자며 폴짝폴짝 뛰었다.
분리불안의 정도가 약했을 때, 출근 전에 간식을 넣어 구긴 종이들,오래가지고 놀 수 있는 뼈간식 등을 주고 나갔다. 처음에는 그것에 집중하느라 내가 나가는 걸 보지도 않고 오랫동안 잘 노는듯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도 얌전히 잠을 자고 있었다. 그렇게 한두달이 지나니 구긴 종이나 뼈간식을 주고 나와도 울며 문을 긁고 뜯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간식을 주고 나가는 경우 간식이 '너는 앞으로 혼자 있을거야'라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간식이 먹히지 않고부터 첼시의 분리불안도 정점을 찍었다.
첼시가 현관문을 열고 복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입으로 문고리를 잡고 내려 주민들이 집에 돌려보내도 몇번이고 다시 나온다고 했다. 우리는 도어락을 바꾸고 모든 방문 손잡이도 바꿔야 했다. 첼시가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첼시의 가출시도 이후 더욱 정기적이고 강도높은 산책을 했다. 매일 출근 전 한시간, 집 근처 산을 올랐고 간식을 주지 않고 나갔다. 처음에 간식을 주지 않고 나갈때는 너무 불안해 문앞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는지, 한참을 서 기다렸다. 예상외로 첼시는 금새 적응하고 혼자서도 잘 있어주었다. 비가 와서 밖에 나갈 수 없는 날에는 집 주차장에 내려가 잠깐이라도 바깥냄새를 맡도록 하고 집에서 노즈워크도 시켰다. 집에 돌아왔을때는 바로 아는척하지 않는다. 진정할때까지 짐을 정리하고 물을 한잔마신다. 조금 진정하고 바라보고 있으면 이름도 부르고 쓰다듬어주는데, 흥분을 가라앉힌 보람없게 흥분한다. 첼시가 어지르거나 고장낼만한 물건들은 다 닿을 수 없는 곳으로 치워놓았다. 호기심왕 비글답게 모든것을 냄새맡고 씹어봐야 하니까. 매일 여유있는 산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산책훈련도 했다. 내가 멈추면 첼시도 (내 옆에 와서 앉지는 않고) 자리에 앉는다. 콜훈련도 하고있고, 하도 주워먹어서 뱉어 훈련도 했으나 못먹는것만 뱉고 먹을 수 있는건 안뱉는다. 2년동안 거의 매일을 첼시와 1시간남짓 산책을 했다. 여전히 다른 문제행동들이 있지만 집에 혼자 있어도 물건을 뜯거나 울지 않는다. 작년이맘쯤엔 부부가 동시에 나가면 울고 신발장을 뜯어놔서 시간을 두며 나갔는데, 요즘은 둘만 나가도 다녀오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얼마나 기특한지!
첼시야, 이제 다른 개랑 사이좋게만 지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