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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Mar 27. 2017

평범한 사람들의 도시, 라오스 2/3

라오스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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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행 밴은 방비엥에 있는 현지 여행사에서 쉽게 예약할 수 있었다.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한 코스는 6시간, 한 코스는 4시간이 걸리는데 주저 없이 4시간 코스를 선택했다. 4시간 코스는 산을 넘어서 가는 코스라서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지만 길이 거칠고 구불구불해서 멀미하기 쉽다. 6시간짜리 코스는 산을 둘러서 간다고 한다.
길은 멀고도 험했다. 포장은 했으나 노면 상태가 고르지 않았고 오토바이와 사람, 자전거와 동물이 혼재된 도로에서는 과속과 급정거가 계속됐다. 제법 높은 산을 오르는 길은 대단히 구불구불했다. 산 정상의 간이 휴게소에는 2,000킵(kip:라오스 화폐단위)의 사용료를 받는 화장실과 편의점이 있었다. 휴게소는 엄마와 어린 두 딸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화장실 사용료를 받는 어린이는 눈을 마주치자 배시시 웃고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눈을 마주치기를 반복했는데 무척 귀여웠다. 라오스를 비롯한 티베트와 네팔, 미얀마 등 비교적 더디게 발전하고 있는 국가의 아이들에게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방비엥과 루앙프라방의 중간쯤에 있는 아이들에게서 이제는 희미해져 버린 인간의 순수함을 본 것 같아서 기뻤다.
산의 정상까지 올라갔으니 내려갈 일만 남았다. 라오스 운전기사의 운전은 거침이 없었다. 신호등이나 횡단보도, 과속 단속 카메라가 전혀 없는 도로 상황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건 중앙선의 개념이 없다는 것이었다. 차는 역주행과 순주행을 반복했고 도로는 운전자의 의지에 따라 2차선이었다가 3차선이었고, 때로는 1차선과 4차선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목격하거나 동물 로드킬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는데 경이로운 운전실력 때문인지 충분히 적응하여 상호 간의 완벽한 합의가 이뤄진 것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도로 교통체계가 고도로 발달한 선진국과 아직 체계가 구축되지 못한 개발도상국의 사고율에 대해 생각했다. 어쩌면 많은 규제와 통제가 운전실력을 낮추고 사람들이 제도에만 의존하여 불시의 사고에 대한 대처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라오스 최초의 통일 왕국, 란상(Lan Xang) 왕조의 수도였다는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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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예약해둔 메콩강에 면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도시를 걷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메콩강의 석양이 지고 있었다. 멍하니 석양을 바라봤다. 메콩강의 석양은 거친 아름다움이 있다. 폭이 넓은 메콩강의 물살은 제법 강하다. 그리고 물 색깔은 누렇다. 또한 양쪽 강변으로는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와 풀이 가득하다. 또한 공기는 청명하지 않아서 석양은 마치 연무가 있는 것처럼 번진다. 썩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잘 어우러지면 아름다움을 만든다. 메콩강의 석양은 그런 것이었다.

루앙프라방의 메콩강 석양

이제 해는 졌고 가야 할 곳은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이다. 약 17시쯤이면 야시장의 노점이 깔린다. 해가지고 조명이 켜지고 본격적으로 장사가 시작된다. 해가 지면서 만드는 붉은 연보랏빛의 하늘과 야시장의 갖가지 조명이 만드는 풍경은 아름답다. '낮에는 어디 있었을까' 싶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야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흥정소리로 소란스럽다. 골목골목에는 숯불에 구운 생선과 고기, 각종 채소와 맥주 등을 파는 먹거리가 가득하고, 거리에는 전통의상과 액세서리, 그리고 라오스에서 유명한 각종 직조(weaving) 상품을 판매한다. 나는 야시장을 충분히 구경하다가 먹거리 골목으로 들어가서 약간의 채소와 대형 민물고기구이, 그리고 라오비어(라오스맥주)를 연기가 가득한 노점에서 먹었다. 그리고 후식으로 길거리에서 바로 갈아주는 망고와 아보카도 셰이크를 먹었다. 이렇게 루앙프라방에서의 첫날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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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여기는 루앙프라방입니다.' 루앙프라방은 어감이 재밌어서 자꾸 되뇌게 된다. 루앙은 큰, 프라방은 불상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지금 큰 불상에 있다.
내가 루앙프라방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탁발 행렬을 보는 것이었다. 루앙프라방 도처에 있는 사원에서 승려들이 동틀무렵(새벽5-6시)에 탁발에 나서고 신도들은 찰밥과 과자를 시주한다. 이러한 행위를 목격하는 것은 일정 부분 상실해버린 나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동이 트기도 전에 루앙프라방의 가장 큰 사원인 '왓 시엥 통'으로 가서 기다렸다. 약 이십여분을 기다렸을까, 탁발 행렬은 칠흑 같던 하늘 색깔에 변화가 생기면서 시작됐다. 승려들은 매일 같은 동선으로 걷고, 신도들은 승려들의 동선을 따라 바닥에 무릎을 꿇거나 작은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승려가 지나갈 때 승려가 들고 있는 바구니에 준비한 음식을 넣었다. 승려와 신도가 만드는 경건한 시주 행위는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사원과 푸르스름한 공기를 만나 무척이나 성스러웠다.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매일 탁발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다. 신을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탁발 행렬을 따라 시주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단체관광객이었다. 단체관광객들은 탁발 시간에 맞춰 버스와 봉고차 등을 타고 도착한다. 그리고 여행사에서 준비한 의자와 시주 물품, 그리고 의상을 입고 앉는다. 그들은 시주 준비를 끝낸 후 구호를 외치고 탁발 행렬이 오면 시주를 시작하는데 사진기사는 관광객 한 명 한 명이 시주하는 모습을 근접하여 촬영한다. 탁발이라는 행위의 아름다움 탓에 그것을 관람하러 오는 관광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관광객은 한 발자국 떨어져서 원형의 가치를 존중하고 보전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탁발 행렬은 관광객에 의해 수차례 끊어지고 카메라 셔터 소리를 포함한 온갖 잡소리에 엄숙함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멀찍이 떨어져 탁발 행렬을 계속 따라가 본 결과 현지 신도들은 관광객이 없는 한적한 길에서 승려를 맞아 시주하고 있었다. 진정한 의미의 탁발이 계속될 수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내가 느낀 탁발의 진짜 아름다움은 나눔이다. 시주하는 신도들 사이에 구걸하는 어린이들이 섞여 있다. 그리고 탁발 행렬 속 승려들 중 일부도 어리다. 구걸하는 어린이와 승려의 상당수는 비슷한 또래일 것이다. 그리고 어린 승려들은 자신의 바구니에 있는 음식을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아마도 이것이 탁발의 이유고, 종교의 진짜 이유다.

라오스 탁발 행렬의 진정한 의미

새벽시장으로 갔다.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은 관광객이 주로 찾는 수공예품을 판매한다면 새벽시장은 원주민들이 주로 찾는 식료품을 판매한다. 다리가 묶여 나온 닭이 있고 삶아진 돼지머리와 살아있는 생선도 있다. 그리고 아침을 먹는 사람들도 있다. 새벽시장은 정갈하다. 매대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장을 보는 사람들도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깔끔한 차림이다. 라오스 인들은 부지런하다. 라오스의 새벽은 현지인이 온전히 점유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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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앙프라방을 걸었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구석구석 걸어보니 루앙프라방은 크게 세 방향의 길로 나뉜다. 라오스를 관통하는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메콩강변의 길이 있고, 유럽식 건물이 양쪽에 자리 잡고 있는 (여행자거리라고 부르는) 길이 있고, 메콩강 지류 변의 길이 있다. 세 길은 각기 다른 특성이 있다. 먼저 메콩강변의 길은 강과 완전히 면한 쪽에 식당들이 있다. 또한 저렴한 호스텔보다는 고가의 호텔이 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일대 건물은 목조를 이용한 것들이 많다. 여행자 거리의 분위기는 크게 다르다. 길 양변으로 2층 내외의 나지막한 건물들이 모여 있다. 건물들은 유럽의 근대 건축물 형태의 조적조 건물이다. 프랑스 점령기 때 지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한정된 범위에 프랑스식 근대 건물이 밀집해서 지어져 있고 잘 보존되어 있는 것에서 역사적, 도시적 추론이 가능하다. 여행자의 상당수가 프랑스인이고 라오스 내 간판 등에 부분적으로 프랑스어가 병기되어 있고 은행과 관공서의 상당수가 프랑스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식민지배를 받았던 라오스 사람들은 프랑스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그래서 점령기 때 지어진 건물이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고 루앙프라방은 과거와 근대, 현대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여행지로 남았다.
이 지역의 프로그램은 주로 현지 여행사다. 루앙프라방 인근의 여행(꽝시폭포, 코끼리 체험, 원주민 마을 방문 등) 상품을 판매하거나 수도 비엔티안으로 가는 항공편 판매를 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인, 특히 서양인 여행자를 쉽게 볼 수 있다. 길가의 건물은 유럽의 근대 건축물이고 길거리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유럽 여행자라서 이 곳을 아시아의 작은 유럽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메콩강의 지류 주변은 잘 정돈된 느낌이다. 목조건물과 조적조 건물이 혼재되어 있는데 대체로 크기가 크고 비교적 깨끗하다. 다른 지역에 비해 인도가 잘 분리되어 있고(다른 지역은 인도가 자주 끊기고 아주 좁은 경우가 많아서 차도로 걷게 된다) 식물이 많았다. 그리고 고급 레스토랑이 이 지역에 많이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끼니를 20,000킵(약 3천 원) 내외로 해결했으나 이 지역의 유명 빵집(조마 베이커리)에서 커피와 약간의 빵을 먹었더니 100,000킵이 훌쩍 넘었다(약 1만 5천 원). 여행 전 인터넷으로 숙소를 알아보며 느낀 점이었는데 라오스 여행은 지출의 정도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형태로 여행이 가능하다. 저가 숙소는 1박에 5천 원 내외부터 고가의 호텔은 100만 원이 넘는 것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비단 배낭여행자뿐만 아니라 휴양 여행으로도 라오스를 많이 찾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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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분위기의 꽝시폭포

루앙프라방을 제법 걸은 후에 여행자 거리에서 예약해둔 꽝시폭포 행 밴을 탔다. 꽝시폭포는 정글 같은 숲 속에 에메랄드 빛 폭포가 있는 동양적인 매력의 여행지로 유명하다. 밴은 각지의 호텔과 호스텔의 승객을 태우고 거의 가득 차서야 목적지로 출발했다. 승객의 비율은 대략 서양인 8명에 아시아인 4명 정도였다. 나는 공교롭게도 라오스 운전기사의 옆에 앉았는데 성격이 급하고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한국인이라고 말했으나 자꾸 일본어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통에 포기하고 몇 번 맞장구를 쳐줬다.
꽝시폭포는 장관이었다. 정말로 에메랄드빛 물이 흐른다. 라오스를 가기 바로 전 여행은 하와이였고, 하와이의 일부 산호초 군락지역 바다도 에메랄드빛이었다. 그러나 꽝시폭포의 에메랄드빛 물은 물감을 탄 것처럼 탁한 에메랄드고, 하와이의 에메랄드빛 바다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에메랄드 빛으로 우열은 없으나 느낌이 크게 다르다.
폭포는 4-5단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최상단은 제법 큰 폭포다. 3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곳에서 물이 떨어진다. 그리고 그 물이 평평한 일부 지역에 웅덩이를 만들었다가 1미터 내외의 높이 아래로 떨어지는 작은 폭포 만들기를 서너 차례 반복한다. 그리고 물이 흐르면서 석회질 성분의 바위를 거치고 물은 에메랄드 빛으로 변한다. 꽝시폭포에서 놀랐던 건 사람들이 물속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된다는 것이다. 너 나할 것 없이 사람들이 물속에 몸을 담그고 놀고 있다. 수영을 하기에 적합한 높이나 크기는 아니고, 대부분 몸을 반쯤 담그고 일광욕을 한다.

라오스 아이들의 용감한 다이빙

현지 어린이들이 스티로폼 박스를 몸에 매달고 나무에서 다이빙을 하는 모습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사람은 많지만 거북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몸을 담가보니 뜨거운 날씨에 비해 물이 차다. 물은 아주 불투명해서 속이 보이지 않고 바닥의 지형이 제각각이라 얼굴까지 잠기는 깊은 곳도 있고 무릎까지밖에 오지 않는 얕은 곳도 있다. 그리고 라오스의 다른 여행지와 비교했을 때 꽝시폭포에는 유독 서양인이 많다. 간간히 보이는 아시아인 중 상당수는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서양인과 아시아인이 물놀이를 즐기는 방식을 비교해서 보면 대단히 흥미롭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먼저 밝힌다) 우선 서양인들은 물속에서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는다. 가끔 몸을 물에 누이거나 평평한 바닥에 앉아서 일광욕을 할 뿐이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을 한 자리에 있다. 열명 중 한 두 명 꼴로 방수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서 사진을 찍는 경우도 있으나 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여행자(서양인)와 쉽게 친해져서 각각 왔던 여행자들은 어느새 무리가. 되어 있다. 반면 아시아인(특히 한국인)의 물놀이는 조금 다르다. 방수팩에 담은 핸드폰이나 방수 카메라를 반드시 들고 있다. 또한 물놀이나 일광욕 등에는 관심이 없고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다. 특히 커플이 함께 여행하는 경우 구석구석을 돌면서 샅샅이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목표한 사진을 모두 찍은 후에는 신속하게 자리를 뜬다. 여기에 물놀이나 일광욕, 주변의 풍경을 즐기기 위한 충분한 시간은 없다. 이것은 자조적인 반성이다. 나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꽝시폭포 구석에 해가 잘 드는 위치에 앉아서 같은 공간에서 이렇게 다른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서 충분한 시간 동안 생각해봤다. 그리고 얻은 결론은 우리는 지나치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산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어서 여행을 증명하고 행복함을 과장하고 연출해야 한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여행은 스스로의 행복을 과시하는 용도로 이용되고 자기만족은 여행을 통해서가 아니라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뤄진다. 타인으로부터 부러움을 얻는 것이 내 삶의 가치를 높인다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삶과 행복에 대한 증명과 연출, 과장과 과시 같은 현상이 왜 우리에게 유독 더 심하게 나타나는 것일까. 아마도 우리는 빠른 성장만을 강요받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타인과의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간,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갖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러워지리라 믿는다.
그 후 꽝시폭포 중턱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물에 제법 오래 있었더니 추워서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쌀국수를 먹었는데 맛있었다. 경치도 근사했고 가격도 크게 비싸지 않았다. 다음에 다시 한번 꽝시폭포를 오게 된다면 처음부터 이 곳에 앉아서 여유롭게 먼 곳을 바라보고 있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위한 제법 근사한 사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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