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기
-1-
여행 이틀 전 헌법재판소에선 탄핵 선고가 있었다. 탄핵 선고문의 논리가 바르고 문체가 정갈하여 몇 번이고 읽었다.
여행 하루 전 참여했던 TFT(Task Force Team)가 끝났다. 기관의 경영평가 자료로 쓰이는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많이 읽고 많이 썼다. 그러나 보고서를 읽고 보고서를 쓰는 일은 무척이나 서늘하고 건조한 일이었다. 덥고 습한 것들이 그리웠다. 그래서 라오스 여행을 결정했다.
-2-
라오스행 비행기를 탔다. 배낭여행객이 많은 여행지라서 당연히 여행자 평균 연령도 낮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승객의 대부분이 60대였다. 의아해서 주변 승객들의 대화나 행동을 관심 있게 살펴보니 여행사 패키지 상품을 구매한 여행객들이었다. 하나투어, 롯데투어, 노란풍선 등 일부 여행사에서 해당 항공 좌석 대부분을 구매해서 패키지 상품으로 판매했고, 나는 극히 일부 남은 좌석을 개인적으로 구매했던 것이다. 덕분에 운항 내내 기내는 관광버스 분위기였다. 주변 환경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스스로를 보면서 이번 여행을 통해 초연함을 배우고 싶어 졌다.
책을 읽거나 잠을 자기에 어려울 만큼 시끄러워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봤다. 담백한 영화였다. 작년 여름 대만을 여행할 때 이 영화의 광고를 많이 봤었다. 이 외에도 대만에서는 여러 차례 일본문화에 호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위키피디아로 대만의 역사를 찾아본 후에야 대만과 일본의 묘한 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대만도 일제 점령기를 거쳤지만 군인 총독이 주도하는 억압적인 통치를 받았던 조선과 다르게 대만은 민간 출신 각료가 (비교적)온건한 통치를 했다고 한다. 또한 당시 중화민국(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의 정세 탓에 대만은 일본과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과 타이완 섬 주민들이 스스로 통치권을 갖은 적이 없었던 탓에 일제 점령에 대한 큰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비행기에서 봤던 영화는 대체로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봤다. 여전히 그 영화의 처절한 이미지가 또렷하게 남아 있다.
비행의 절반 정도가 지났을 때 창밖을 보니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때때로 이렇게 사소한 변화는 주변의 소음과 관계없이 감동적이다. 헤르만 헤세의 '싯달타(싯다르타)'를 읽었다. 책의 일부 구절이 라오스를 여행하는 내 마음과 비슷했다.
싯달타 앞에 하나의 목표가 세워졌다. 그것은 바로 해탈하는 것이었다. 갈증으로부터, 욕망으로부터, 꿈으로부터, 기쁨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는 해탈이었다. 자기 자신을 죽이는 것, 자아를 벗어나는 것, 텅 빈 마음에서 안식을 찾는 것, 자아를 벗어난 사유 가운데서 우주의 경이에 겸허하게 맞서는 것, 그것이 그의 목표였다.
책을 읽다 보니 비행기는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Vientiane), 왓타이 공항에 도착했다. 도착한 라오스는 후덥지근하고 공항에 모기가 많았다. 수속을 마치고 한국에서 미리 예약해 둔 방비엥(Vang Vieng)행 밴을 타러 나갔다. 공항 로비에는 내 이름을 크게 적은 플래카드를 라오스인 운전기사가 들고 있었다. 그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밴에 탑승해서 가로등이 없는 늦은 밤의 도로를 세 시간 동안 달리고 또 달렸다. 그리고 새벽 두 시가 다 돼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에서의 뷰가 압도적이라는 평가를 읽고 예약한 숙소였다. 체크인 후에는 숙소의 위생상태를 걱정할 틈도 없이 피곤함에 잠들었다.
-3-
다음 날 오전 7시에 일어났다. 평소 여행을 치열하게 하지 않는 편이다. 여행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행복을 위한 것이며 여행에서의 행복한 시간을 위해선 여유로운 환경, 특히 충분한 수면시간이 보장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오스에서는 반드시 이른 아침에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피곤함을 무릅쓰고 이른 오전에 알람을 맞췄다. 일어나서 커튼을 걷어보니 호텔에서의 전망이 환상적이다. 제주도의 산방산을 연상케 하는 가파른 산이 켜켜이 쌓여 원경을 이루고 원주민의 집과 지붕, 새벽의 활발한 아침 시장이 근경을 이룬다.
여행을 좋아하지만 일부러 자연경관을 찾아다니지는 않았었다. 고정적인 형태의 자연경관보다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무형의 유산을 좋아한다. 그러나 방비엥의 새벽은 자연에 순응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만들어낸 도시,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이 오브제로 함께 어우러져 있다. 만약 방비엥의 풍경 속에 새벽시장이 들어있지 않았다면 이토록 감동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호텔에서 이 풍경을 충분히 음미한 후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새벽시장을 둘러봤다. 이 시간의 도시는 온전히 현지인들의 것이다. 노점의 상인들은 채소와 생선, 각종 과일과 고기, 그리고 청설모처럼 생긴 쥐과의 동물을 팔고 있었다. 그리고 주민들은 상품을 살피고 가격을 흥정했다. 나는 시장을 지나서 아침식사를 위해 식당을 찾았다. 최근 한국에서의 라오스 여행 열풍 탓인지 대부분의 식당은 한국어 간판과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기어코 한국어 간판이나 메뉴가 없는 식당을 찾아서 들어갔다.
라오스의 음식은 천천히 나온다. 나는 라오스식 매운 쌀국수인 카오소이와 라오스 사람들이 아침으로 주로 먹는 죽을 시켜서 먹었다. 맛은 으레 우리가 동남아에서 상상할 수 있는 맛이다. 고수와 레몬그라스 등의 향신료를 충분히 넣고 메콩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담근 젓갈로 간을 했다고 한다. 우리 입맛에도 거북하지 않아서 잘 먹었다.
식당에는 어린아이가 둘 있었다. 나중에 라오스 여행을 끝내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라오스 대부분의 상점에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있었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은 라오스에서 아이는 엄마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점포가 있는 경우는 상황이 낫다. 그러나 상당수의 경우 노점 형태로 장사가 이뤄지고 있고 노점이 모여있는 시장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라오스의 어린이들은 학교가 아닌 엄마의 일터에서, 시장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현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땐 채소가 가득 들어있는 바구니를 준다. 마치 한국의 쌈밥집에서 채소를 가득 담아서 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바구니에는 상추와 알 수 없는 채소(미나리와 유사함), 레몬과 고수 등이 들어 있다. 그 채소를 국수에 넣어서 먹거나 우리의 쌈장과 유사한 질감의 마른 젓갈에 찍어 먹는다. 향이 강한 채소들이다 보니 국에 넣는 정도에 따라 음식의 향 정도가 정해지니까 굉장히 능동적인 형태의 식사라고 할 수 있겠다.
식사를 마치고 방비엥을 걸었다. 이 도시는 매우 작다. 걸어서 삼십 분 내외면 도시의 경계를 따라서 모두 걸을 수 있다. 그리고 걷다 보면 오로지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선 현지인의 생활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가 없다. 극소수의 현지인 대상 식당과 새벽시장 등이 있을 뿐이다. 또한 제법 떨어진 곳에 희미하게 전통주택(땅에서 1미터 이상 띄워서 짓는 목조 주택)이 보일 뿐 시내에 현지인의 집이 보이지 않는다. 호텔과 게스트하우스, 식당과 기념품 상점, 여행사와 운전기사 등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하는 최소한의 현지인만 비교적 인근에 살고 있을 것이다.
방비엥은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대(1893년-1949년)로 거슬러 올라가야 정확한 도시의 기원을 이해할 수 있다. 프랑스가 라오스를 점거하고 있을 당시 적지 않은 프랑스인이 라오스에 살았을 테고 그중 일부 사람들이 방비엥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발견했을 것이다. 유럽 사람에겐 대단히 생경했을 풍경에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이 많아졌을 것이고 군락을 형성하지 못했을 작은 지역은 도시로 성장하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방비앵과 같은 1차적 생산(농업, 어업 등) 활동이 없는 관광 특화 도시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돌아다니다가 (속도가 느려서 한국처럼 원활하게 인터넷을 할 순 없지만) 유심칩을 샀고 샌드위치와 과일주스를 먹었다. 젊은 여행자들의 천국이라는 방비엥은 다양한 액티비티로 유명하다. 블루라군에서 수영과 다이빙을 하고 짚라인(zip-line)과 패러글라이딩을 하며 코끼리를 구경하고 사륜자동차와 카약을 타고 동굴을 탐험하기도 한다. 천혜의 자연에서 즐기는 다양한 활동이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나는 액티비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라오스에 온 것은 계획된 도시가 아닌 자연발생적으로 탄생한 도시 원형의 흔적, 그리고 역사의 켜가 남아 있는 라오스의 도시를 걷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루앙프라방(LuangPrabang)이 가장 궁금했다. 그래서 방비엥에서 곧장 루앙프라방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