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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Apr 06. 2016

삶은 어떻게 예술이 되는가

슬로베니아 엑소도스 페스티벌 참관기

(예술의전당 월간지 기고문, 2015년 6월)


슬로베니아는 중앙유럽과 남유럽에 있는 나라로 알프스 산맥 끝부분과 지중해에 접하고 있다. 인구는 200만 명, 1992년 유고 연방에서 독립했다. 천년 가까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등 주변 나라의 영향을 받았다.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는 유럽 도시의 전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유럽의 많은 도시에서 고지대에는 주택지구가 이루어지고, 저지대에는 상공업지역이 형성된다. 또한 성곽도시들은 도시의 발달로 여러 차례의 확장이 이루어지는데, 기존 성벽을 기준으로 고리형의 길을 남기게 되고, 좁은 미로상의 구시가舊市街 주변에 넓고 규칙적인 신시가가 건설되며, 대공장 및 종업원의 주거지역이 가장 바깥쪽에 발달한다. 이런 현상은 ‘유럽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류블랴나도 마찬가지여서 류블랴나성을 중심으로 고지대부터 동심원형으로 도시가 형성되어있다.


슬로베니아, 엑소도스 페스티벌

<엑소도스 국제현대공연예술제 Exodos International Festival of Contemporary Performing Arts>는 슬로베니아의 첫 국제 공연예술페스티벌로 1995년 시작되었다. 국내외의 현대연극과 무용 공연을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매회 페스티벌의 주제에 맞게 다양하게 구성한 워크숍, 강의, 토론, 라운드 테이블 등을 통해 교육적이고 이론적인 면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 페스티벌은 예술과 외설, 장르의 혼합물, 기술적 예술, 예술의 미로, 인간의 몸 등 을 주제로 했다. 지난 18회는 아시아 댄스 플랫폼을 주제로 다양한 무용 공연을 소개했으며, 한국 참가자로 최근 에르메스재단 미술상을 수상한 퍼포먼스 작가 정금형이 공연했다.  

올해 페스티벌의 주제는 An Africa Focus, 아프리카였다. 아프리카 예술은 토속신앙을 바탕으로 그들의 희망과 공포를 강렬하게 내포하고 있다. 또한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순수한 생명력을 허식과 모방 없이 원초적으로 표현한다.  

<엑소도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나타사 자볼로브섹(Natasa Zavolovsek)은 관계자 간의 워크숍에서 "아프리카는 거대한 가능성과 지혜, 즐거움과 기쁨, 그리고 창의성의 대륙이다. 우리는 아프리카 아티스트의 공연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유추하고자 한다"라고 소개했다.   

나는 디렉터와 큐레이터,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는 모임(Shared spaces)에서 ‘왜, 지금 아프리카인가?’라고 질문했다. 그에 대해 페스티벌의 큐레이터 ‘얀 구센스(Jan Goossens)’는 "아프리카의 공연 예술에 대한 국제적인 논의가 미흡한 현 상황에 대해 반성하는 기회가 되려  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일시적인 공연 공간을 제공하고 실향失鄕의 경험을 담은 그들의 작업을 통해 대륙간의 연결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랐다"라 답변해주었다.


류블랴나 시민의 삶 속엔 페스티벌이 있다

요즘, ‘축제의 위기’라는 말이 꾸준히 들린다. 세계적인 경제 침체로 문화, 예술 관련 예산부터 줄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예술이 수익성으로 가치를 평가받는 일이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피노자의 저서 「에티카」에 따르면 “무릇 고귀한 것은 드물고도 어렵다”고 했다. 인구 30만의 소도시 류블랴나에서 개최되는 <엑소도스 페스티벌>은 예술의 주류가 아닌 지역과 흐름을 앞장서서 소개, 발굴하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이 페스티벌은 현지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많은 경우 제3세계Third World의 아티스트가 공연의 주역이고, 대중이 즐기기 어려운 장르인 컨템퍼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를 공연한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과 지역 주민의 지지로 이 드물고 어려운 일이 20년 간 계속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를 대표하는 페스티벌을 한다면 으레 도로변에 페스티벌을 홍보하는 깃발이 걸리고, 각종 현수막과 전단지를 도시 곳곳에서 쉽게 발견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류블랴나에서는 공연장 입구를 제외한 도시 어느 곳에서도 의도적 홍보물을 발견하지 못했다. 특별한 홍보를 하지 않는 이유는 도시나 페스티벌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페스티벌이 열리는 공연장들이 도시와 시민의 삶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페스티벌은 여섯 개의 공연장과 공연장 주변을 무대로 한다. 페스티벌 공연이 있는 공연장들은 도시의 중심(류블랴나 성)에서 모두 도보로 이동이 가능했으며, 공연장의 주변엔 식료품 상점, 학교, 유치원, 놀이터 등 생활과 밀접한 시설이 함께 있었다. 류블랴나 사람들에게 공연장을 방문하고 공연을 보는 행위는 특별한 일과가 아닌 식료품 상점이나 학교를 가는 것처럼 일상이었다. 페스티벌 기간 공연장 주변에선 아프리카의 공예품, 음식 등을 판매한다. 생활권역 안에 있는 공연장 주변의 이러한 행사를 통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페스티벌을 알고, 공연을 관람했다.

관객의 태도에서도 시민과 예술, 공연장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현대(contemporary)라는 것은 역사적 연대기 상의 고정된 한 시기이기보다 늘 새롭게 되려는 노력의 표현이다. 그래서 컨템퍼러리 아트는 추상, 은유 등의 난해함을 갖고 있다. 때문에 현대 예술 공연의 관객은 진지한 표정과 학구적인 자세로 의미를 추론하곤 한다. 하지만 <엑소도스 페스티벌> 기간 동안 내가 목격한 류블랴나의 관객은 ‘추론’이 아닌 ‘해소’를 위해 공연을 관람했다. 어린아이를 안고 온 부모와 몸을 움직이지 않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것 같은 소년들, 그리고 꽃무늬 셔츠를 입은 노부부까지 다양한 연령의 시민이 공연을 관람했다. 또한 공연 전 공연장의 스태프와 관객들이 자연스러운 인사를 나눴다. 이러한 모습이 류블랴나에 산재한 공연장에서 빈번히 눈에 띄다 보니 작은 도시에서 <엑소도스 페스티벌>을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자신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예술에서 진보는 대중과 함께 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창조하는 데 있다. 이곳에서 예술은 대중을 창조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시민의 삶에 녹아 있는 공연장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류블랴나의 공연장 

엑소도스 페스티벌의 특징은 공연과 공연장의 조화로운 연결이다. 예를 들어, 스판키 보르시 문화센터Spanki Borci Cultural Centre는 영화관처럼 무대 뒷면 전체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서 나스티오 모스키토Nastio Mosquito의 영상을 더한 공연과 어울렸다.

또한 류블랴나 댄스 시어터Dance Theatre Ljubljana는 블랙박스 형태의 공연장으로 최소한의 무대장치를 갖추고 있다. 또한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서 아티스트의 표정과 숨소리가 들릴 만큼 아티스트와 관객과의 관계가 밀접하다. Faustin Linyekula의 무용처럼 최소한의 연출과 소수가 출연하는 공연에 적합했다.

그리고 찬카레우돔Cankarjev dom은 한국의 예술의전당과 마찬가지로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복합아트센터다. 2000석 규모의 프로시니엄 형식 클래식 공연장 및 800석 규모 슈박스 형식의 공연장, 400석 규모 블랙박스 형식의 공연장, 250석 규모 아레나 형식의 공연장, 두 개의 전시 갤러리 등을 갖추고 있어 음악, 무용, 연극, 영상, 미술 등 다양한 형태의 예술을 아우르고 있다. 또한 예술의전당 비타민스테이션과 마찬가지로 건물 내부에 레스토랑과 음반, 악보 등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고, 게다가 문구점과 서점 등 생필품 상점 및 백화점(MAXI)의 지하와 연결되어 있다. 이 또한 슬로베니아의 문화, 예술이 삶과 얼마나 직접적으로 관계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에서 도시는 ‘모든 욕망의 집결지’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라캉에 따르면 “예술이란 무의식적 욕망의 표출”이다. 두 명사名士의 표현을 빌려 도시와 예술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욕망은 도시로 집결하고 도시의 시민에 의해 예술로 표출된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욕망을 미와 감성의 형식으로 담아내는 그릇이 공연장이다. 공연장은 시민 모두의 소유이고 따라서 모든 이가 발전의 주체이다. 시민의 삶에 공연장이 녹아들어 시민의 삶이 더욱 건강하고 풍성해지길, 그리고 예술의전당이 진정으로 그 역할을 하길 바란다.


글․사진 김영훈 (예술의전당 음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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