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공간 눈 2 전시실, 2017-05-19 ~ 06-01
(대안공간 눈 평론지 기고문, 2017.05.19)
요즘 예능 프로그램의 주류는 음식 관련 콘텐츠다. SNS엔 자신이 무엇을 먹었는지 증명하는 게시물이 범람하고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과거엔 핏줄이 신분을 갈랐으나 지금은 문화와 취향이 계급을 나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의 저서 ‘구별짓기(La Distinction)’에 따르면 각 계층은 다른 계층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서 문화와 취향의 과시를 통해 계급의 차별화를 심화하는 ‘구별짓기’를 하고 개인의 내면화된 성향 체계를 ‘아비투스(habitus)’라고 한다고 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사람들은 음식에 대한 자신의 ‘아비투스’를 과시하여 남과 ‘구별짓기’ 하고 있다.
아마도 먹는 행위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이다. 먹는 것은 문화의 차이, 지위의 상하와 관계없이 인간이 공통적으로 하는 행위다. 먹는 것이 행위라면 그 대상이 되는 것은 음식이다. 인간은 모두가 먹지만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같은 행위를 하지만 대상은 다르다. <오늘의 밥>展은 이러한 괴리에서 오는 삶의 고달픔에 대한 기록이다.
임동현 작가는 “나는 밥벌이가 힘겹고 슬픈 모든 이들의 힘겨운 밥 한 술을 기록한다.”라고 전시에 대해 설명했다. 작가의 설명대로 작품은 사람들의 먹는 행위를 관찰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음식이라는 대상을 먹는다는 인간의 공통적 행위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고, 모두가 먹지만 같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현상으로부터 문제의식을 도출하고 있다. 작가는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사람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인 층위를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작가는 '잘' 먹는 것과 '못' 먹는 것을 결정하는 몇 가지 논리적인 기준을 정했다. 무엇을, 무엇을 위해, 어디서, 얼마나 자주, 어떻게 먹느냐를 종합적으로 관찰하며 관찰대상의 사회적 위치를 유추했다. 그리고 작가는 '못' 먹는 사람에게 집중했다. 청소부, 경비, 폐지 줍는 노인, 노점상인 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지만 주목한 적 없는 그들의 생존활동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표현했다. 작가는 목탄의 거침으로 밥벌이의 힘겨움을, 스크래치로 사람들의 상처와 삶의 흔적을, 캔버스 간의 비교로 삶에 대한 기록을 그렸다.
작가의 전시는 다양한 종류의 밥을 기록하고 있다. 작품명을 보면 노점상인이 거리에서 먹는 ‘거리 밥’, 컴퓨터 모니터를 앞에 놓고 먹는 ‘모니터 밥’, 상위에 신문을 깔고 먹는 ‘신문 밥’, 바닥에 음식을 놓고 먹는 ‘어두운 밥’ 등이 있다.
작품, '모니터 밥(40.0x60.0cm, mixed media on canvas, 2017)'은 책상에 신문지를 깔고 모니터(CCTV)를 보면서 식사하는 경비의 뒷모습을 그렸다. 작품 속 음식은 대부분 일회용 그릇이나 간단한 휴대용 용기에 담겨 있다. 작품은 판화처럼 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작품 속 음식을 먹는 행위의 주체인 경비의 뒷모습과 그가 바라보는 모니터, 그리고 음식과 음식의 용기에서 중첩된 날카로운 선이 보인다. 작품의 주된 표현방식인 날카로운 스크래치(선)는 식사시간마저 자리를 비우지 못하고 끼니를 때워야 하는 상황에 대한 잔인함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작품, '어두운 밥(51.0x70.0cm, wood cut on paper, 2016)'은 좁고 어두운 방에 여럿이 모여서 바닥에 음식을 놓고 먹는 장면을 그렸다. 음식이 바닥에 있어서 먹는 사람들의 자세가 구부정하다. 가장 즐겁고 편안해야 할 식사시간을 이들은 좁고 어두운 방바닥에 앉아서 어두운 표정으로 식사하고 있다. 이때 음식을 먹는 행위는 유희가 아닌 노동이다. 삶이라는 노동을 계속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 장면을 작가는 판화로 표현했다. 작가는 날카로운 조각칼로 먹는 행위의 이면을 표현했다.
작가의 작품은 솔직하다. 숨기거나 과장하지 않고 사회의 이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작가는 먹는 행위를 관찰하는 작업을 통해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들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의 특정 현상이나 문제에 대한 고발이 아니라 잊힐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따뜻하게 기록하고 있다. 작가의 그림에 동정은 없다. 공감과 애정만 있다.
소설가 김훈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글에서 모든 먹는다는 동작에는 비애가 있다고 했다. 먹는 행위는 유희이자 비애다. 먹는 행위가 유희가 된 시대에 생존을 위해 먹는 현실의 밥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임동현 작가의 <오늘의 밥>展은 여전히 현실의 밥을 먹는 우리 주변 이웃에 대한 이야기다. 먹는 행위 자체를 선택할 순 없으나 음식은 선택할 수 있는 역설에서 오는 삶의 비애에 대한 자조적인 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