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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Jun 17. 2017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창극의 역설

<코카서스의 백묵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지인과 우연히 창극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창극의 매력과 발전 가능성, 개인적으로 느끼는 장르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대화는 2015년에 초연한 <코카서스의 백묵원>으로 이어졌는데 최근 국립창극단의 발전은 이 공연으로 대표된다는 것이 지인의 주장이었다. 아쉽게도 당시에 나는 보지 못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생각하는 창극이라는 장르의 한계는 <코카서스의 백묵원>으로 극복되었다고 했다. 창극이지만 완전한 극의 형태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애타게 재공연을 기다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봤다. 전통적인 형태를 온전히 계승하면서 철저히 새로운 공연이었다.

사진출처 : 국립극장 홈페이지

 <코카서스의 백묵원>을 공연하는 국립극장의 해오름극장은 무대와 관객을 철저히 분리하는 프로시니엄 무대다. 프로시니엄 무대는 무대의 액자인 프로시니엄과 각종 막을 이용하여 다양한 연출을 가능하게 하는 형태다. 그러나 정의신 연출은 기존의 무대와 객석을 포기하고 무대 위에 새로운 무대와 객석을 만들었다. 그래서 공연장에 입장한 관객은 프로시니엄 무대의 객석을 지나 관객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는 무대를 밟고 무대 위의 새로운 공연장으로 안내받는다. 낯선 경험이다. 프로시니엄 무대를 돌출무대로 만든 것이다. 돌출무대는 다양한 장치를 숨기기 어렵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흐려지고 관객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무대를 둘러싸고 구석구석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관객과의 소통이 극대화된다.  

 돌이켜보면 우리의 전통 공연은 돌출무대나 원형무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히 판소리가 그랬다. 공터에 돗자리를 깔고 소리꾼과 고수가 앉으면 그곳이 무대였고, 관객들은 주변에 둥글게 둘러앉아서 소리꾼의 창에 맞춰 추임새를 넣었다. <코카서스의 백묵원> 무대도 전통적인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희미하고 거리가 매우 가깝다. 이 무대는 우리 전통 공연에 내재된 관객과의 소통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형태다. 여기에 도창이 더해졌다. 도창은 창극에서 극 중의 인물이 아닌 사람이 무대 옆에서 관객의 흥을 돋우고 난해한 이야기를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게 돕는 해설자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공연에서 도창은 원래의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중요한 극 중 인물인 아츠닥(재판관) 역을 함께 맡았다. 그래서 완전한 극 형태를 지향하는 현대 창극에서 점점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 도창이 극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었다.  

 공연과 연출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의 공연은 관객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창극은 다르다. 내 경험상 창극은 관객이 요란할 때 훨씬 재밌다.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프로시니엄 무대를 변형한 돌출무대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었고 도창이 앞장서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다 보니 이 날 공연에서 관객은 무척이나 다양한 추임새를 넣었다. 내가 공연을 관람한 날에는 (아마도)고등학교에서 단체관람을 왔었는데 야유와 탄성을 오가는 적극적인 추임새로 공연을 굉장히 유쾌하게 만들었다. 또한 관객의 반응에 따라 배우들이 즉흥적인 대사와 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진출처 : 국립극장 홈페이지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성에 반란이 일어나 자식을 버리고 도망간 생모와 그 자식을 정성으로 돌본 양모의 재판에 대한 이야기다. 원작은 평화와 전쟁의 비극, 계급의식 등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공연에선 원작의 무게를 과감히 덜어내는 경쾌한 연출로 다양한 재미를 선사했다. 도창(아츠닥)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보는 것이 즐거웠고, 영주의 부인이 피난을 준비하면서 노래했던 '모두 다 필요해'의 선율이 중독성 있어서 집에 들어가는 길에 계속 흥얼거렸다. 그리고 노파와 지주들의 재판 부분은 공연의 백미(白眉)였는데, 걱정스러울 정도로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던 노파가 객석의 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내 앞에 앉았다. 어깨를 두드리라는 몸짓을 취했고, 나는 공연 관람 중에 한참이나 노파 역의 배우 어깨를 두드렸다. 그 노파는 재판의 끝 무렵에 기적이 일어났다며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요란하게 춤을 췄는데 그 능청스러움에 한참을 웃었다. 만약 도창이 없었다면, 무대와 객석이 떨어져 있었다면 이러한 즐거움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브레히트의 원작이 창극을 만나면 이렇게 경쾌하게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진출처 : 국립극장 홈페이지

 창극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창극의 창법은 서양의 성악 창법보다 우리 감성에 가깝고, 충분히 신선하다. 또한 창극은 과거에 만들어진 작품을 재현하는 것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창작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창극은 전통악기와 서양악기를 조합하고 첨단 무대기술을 이용하여 더욱 새로워지고 있다. 게다가 도창이라는 창극의 고유한 장치를 활용하고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여 얼마든지 극을 다채롭게 변형할 수 있다.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이라는 말은 역설(逆設)이다. 그러나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공연이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창극은 세계적인 공연예술이다.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내게 다시 한번 창극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주었다. 창극은 우리나라 공연예술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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