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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훈 Sep 20. 2017

두 개의 국가, 하나의 도시 -홍콩

홍콩 여행기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던 날을 기억한다. 당시의 나는 아주 어렸으나 이상하리만큼 그날의 뉴스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영국과 중국의 관료와 군인들이 자리를 함께 했고 음악과 함께 영국의 국기는 내려가고 중국의 국기는 올라갔다. 엄숙한 행사의 분위기는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느껴졌다.

1997년 홍콩 반환식 사진, 출처 연합뉴스

홍콩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도시의 국적이 바뀌는 기묘한 혼란을 겪었다. 그래서 그들만의 특수한 감성을 공유하고 있다. 나는 이 무렵 만들어진 홍콩 영화를 좋아한다. 왕가위로 대표되는 반환기 홍콩영화의 아름다움은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감성의 시각적 발현이다.


200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지 약 10년이 지났을 때 나는 홍콩을 여행했었다. 홍콩이 영국도, 중국도 아니었던 시기라고 기억하고 있다. 현대적 건축물이 가득하고 커피와 홍차를 즐기며 중국어보다 영어에 능숙한 홍콩인이 그곳에 있었다. 당시에는 높은 곳에 있는 화려한 조명과 아득히 높은 빌딩들의 마천루밖에 보지 못했다.

홍콩섬의 야경, 매일 저녁 8시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볼 수 있다.


그리고 2017년, 나는 다시 한번 홍콩을 여행했다. 지난 여행에서 홍콩이라는 도시의 외면을 관찰했다면, 이번에는 홍콩이라는 도시의 내면을 경험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제 홍콩의 거리는 중국의 도시에 가까워졌다. 지난 10년 간 중국 내륙에서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었고, 영어로는 자유로운 소통이 어려운 도시가 되었다.  

홍콩 여행의 중심은 홍콩섬의 센트럴 역(Central) 부근과 구룡반도의 침사추이(Tsim Sha Tsui), 두 지역이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두 지역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예약한다. 그러나 해당 지역은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홍콩 내에서도 손꼽히는 곳이다. 자연스럽게 두 지역은 주요 호텔과 기업의 사옥, 명품 매장 등으로 이뤄져 있다. 주거용 빌딩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나는 중심과 다소 떨어진 지역에 숙소를 예약했다. 과일가게와 반찬가게, 식당들이 아침부터 분주하고 윗옷을 벗고 일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동네였다.

숙소 근처의 풍경, 사람들이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9월의 홍콩은 무척이나 덥고 습했다. 걷다 보면 갑작스레 비가 쏟아지다가도 금세 잦아들었다. 숙소 주변을 한참이나 걸었다. 이 지역은 제기동을 연상시키는 지역이었다. 약재를 파는 상점이 많았고 건물들은 노후했다. 상점에는 무슨 물건인지 가늠할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각기 대단한 냄새를 뿜어냈다.  

주변을 충분히 탐험한 후엔 지난 여행에서 인상적인 지역이었던 구룡반도에 있는 몽콕(Mong Kok)으로 갔다. 그러나 10년 전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였다. 과거에는 금붕어가 들어있는 봉지가 보석처럼 노점에 걸려있고 길거리에서 비둘기 고기를 먹었던 기억이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찾은 몽콕은 관광객을 기다리는 무기력한 관광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현지인이 즐겨찾던 몽콕의 시장은 이제 관광객만을 기다리는 매력없는 지역으로 바뀌었다.

이번 여행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는 홍콩 사람들이 찾는 홍콩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홍콩 사람들은 도심의 과도한 밀도로부터의 해방을 정기적으로 원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청차우 섬(Cheung chau)과 홍콩섬 외곽의 쉑오비치(Shek O beach)를 즐겨 찾는다는 것을 알았고, 나는 그중에서 쉑오비치를 방문했다.  

쉑오비치는 작은 해변이다. 지리적으로 동남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나 바다 색깔은 서해와 유사하다. 그러나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해변에 있었다. 일광욕을 하는 사람부터 해변을 산책하는 사람, 그리고 수영을 하는 사람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여유를 즐기고 있었고 구성원도 가족단위부터 학교에서 단체로 찾은 학생들까지 다양했다. 쉑오비치 주변은 제법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마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서 걷기에 좋았다.

홍콩섬 외곽에 위치한 쉑오비치 풍경, 아담한 해변이다.

그리고 익청빌딩(Yick Cheong Building)으로 갔다. 익청빌딩은 홍콩의 중심과는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익청빌딩은 아마도 내가 홍콩을 여행하면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장소다. 익청빌딩을 마주하면 우리의 감각을 압도하는 스케일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익청빌딩을 마주하는 제법 긴 시간 동안, 이곳에 사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알파벳 E를 눕혀 놓은 모양으로 생긴 거대한 건물에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세대가 살고 있다. 각 세대가 점유하는 공간은 매우 좁지만 각 세대는 모두 외기에 접하는 면을 갖고 있다. 그 면이 건물의 입면을 다채롭게 만든다. 그리 크지 않은 창문의 열림과 닫힘, 에어컨 실외기와 널려 있는 빨래가 리드미컬하게 배열되어 아름답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집 안에는 각각의 우주가 담겨 있다. 빌딩 1층은 생필품 및 식료품 상점, 미용실 등이 입점해 있고 중정은 공용공간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듯하다. 내가 방문했을 때 중정에서 아주머니 여섯 분이 모여서 마작을 했다.  

익청빌딩을 사진으로 봤을 땐 디스토피아의 현존(presence)이라고 생각했다. 쾌적하게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의 밀도와 협소함이 어쩔 수 없이 살아내야 하는 처절한 삶의 단면 같았다. 그러나 삶의 현장을 직접 마주하고 충분한 시간 동안 머물러보니 이웃끼리 창문을 열고 대화하고, 중정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삶이 보였다. 한걸음 떨어져서 타인의 삶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인지를 반성했다.

창문의 비례와 건물의 입체적인 입면, 에어컨 실외기와 창밖의 빨래가 만드는 조화가 아름답다.

그리고 홍콩의 핫플레이스라는 란콰이퐁(Lan Kwai Fong)으로 갔다. 젊은 사람들이 주로 늦은 시간에 어울리는 곳이었는데, 자유로운 분위기의 펍들이 모여 있고 물담배를 피우는 것이 유행인 듯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지 내가 지나갈 때마다 서툰 한국어로 ‘물담배 있어요’라고 했는데 썩 내키지 않아서 조금 둘러보다가 숙소로 돌아갔다.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식당은 Ling Heung Kui라는 오래된 딤섬집이었다. 이 딤섬집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데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크리스탈 제이드나 딤섬스퀘어와 달리 현지인들에게 사랑받는 곳이었다. 식당에 들어가서 앉았더니 메뉴판 대신 1부터 50까지 적혀 있는 종이 한 장을 건네줬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끔 딤섬을 실은 수레가 지나다니는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들은 수레가 자기 앞을 지나갈 즈음 수레에 실려 있는 딤섬 목록을 확인하고 원하는 딤섬을 고른다. 그러면 직원이 해당 딤섬의 가격을 종이에 도장으로 찍는다. 문제는 이 수레에 먹고 싶은 딤섬이 들어 있는 경우가 흔치 않다는 것인데, 그래서 식당은 새로운 수레가 지나갈 때마다 아수라장이 된다. 처음 식당에 들어왔을 땐 주문하는 시스템을 전혀 몰라서 적잖이 당황했으나 옆에 앉아있던 (현지인에 가까워 보이는) 런던에서 온 친구가 알려줘서 원활하게 식사할 수 있었다. 홍콩에는 미슐랭가이드에서 별을 받거나 소개된 식당이 무척 많다. 나도 여행 중 미슐랭가이드에 소개된 여러 식당에서 식사를 했으나 경험상 미슐랭가이드에 소개된 식당보다는 현지인으로 북적이는 식당이 더 맛있다. 이 식당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언제 수레가 지나갈지 모르기 때문에 바짝 긴장하고 주변을 살펴야 한다.

그리고는 다시 바다를 건너 구룡반도에 있는 템플야시장으로 갔다. 템플야시장은 잡다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노점들과 야식을 파는 식당들이 혼재되어 있다. 나는 노점에서 게 튀김 요리를 먹었다. 그러나 요리가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양손을 전부 쓰면서 다소 번잡하게 식사해야 하는 갑각류를 먹는 것을 내가 그리 즐기지 않는 탓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가격에 비해 게살이 알차지 않았었다. 역시 게는 충남 서천에서 먹는 간장게장이 가장 맛있다.


그리고 다음날은 이른 아침 페리를 타고 마카오로 이동했다. 마카오에서는 좋은 호텔에 묵으며 일광욕과 카지노, 그리고 공연을 관람하며 호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글로 남기기엔 다분히 과시적인 시간이었기에 이 글에서 마카오 여행에 대한 내용은 생략하고자 한다.


홍콩 사진을 보면 냄새를 상상하게 된다.

중국 대륙 남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 향(香) 나무를 실어 나르는 항구(巷)가 위치했던 곳, 영국과 중국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도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예외적으로 민주주의를 허용하는 일국양제의 도시 홍콩(香巷). 홍콩의 기구한 역사는 홍콩을 고유한 감성의 도시로 만들었다.

건축가 렘 콜하스(Rem Koolhaas)는 저서 정신착란의 뉴욕(Delirious New York)에서 뉴욕을 욕망의 산물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홍콩에서도 유사한 감각을 느낀다. 홍콩의 욕망은 수많은 냄새를 만들었다. 홍콩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너무도 많은 냄새를 마주하게 된다. 걸음걸음마다 고유한 냄새를 품고 있는 홍콩의 거리는 개성이 넘친다. 냄새의 도시 홍콩, 홍콩에는 화려한 야경 이면의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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