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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reaky Doors n Steve Jan 30. 2021

회사에 10억의 손해를 끼친다면...

사표로 해결이 안되겠죠? 


이번 전철을 타야 지각하지 않는데, 

플랫폼을 벗어난 전철을 바라보면서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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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와서 일주일 즈음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인천 가좌동의 사무실에 8시 출근을 지키려면 집에서 6시에는 나와야 했습니다. 


업무도 잘 모르면서 무작정 ’노무 담당자‘로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유로 지원한 회사. 


일주일은 잘 출근했는데, 일주일만에 고시촌에 있는 친구들과 저녁 단합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침 6시에 눈을 떴습니다. 




급하게 신림동을 뛰어내려가도, 8시는 불가능합니다. 


아직 월급을 받은 것도 없어서 택시는 언감생신. 

7시까지 머뭇머뭇거리다가, 그래도 전화기는 들어서 '선배'에게 전화를 합니다. 


“대리님, 죄송합니다.” 


그때, 그 전화를 받으신 선배의 멘트 


“... 그랬군요. 하하. 택시타지 말고, 천천히 나와요. 내가 팀장님께 말씀 잘 드릴께요. 하하.”   

  

한참 지난 일인데, 어쩌면 그 전화가 직장생활을 계속하게 된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어쩌면 사과드리고, 그날로 나가지 않았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부끄럽지만, 생각이 여러 가지 복잡하던 시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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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대리님은 직장의 전무까지 승진하시고 지금도 승승장구 중이십니다.     



그날, 진짜 택시타지 않고, 천천히 전철로 10시까지 갔습니다.   ㅠㅠ.    


그리고 점심 이후에 팀장님과의 커피 한잔.     



“OO씨, 만약에 나중에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회사에 손해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억 정도 합법적인 범위에서 일을 하다가도 손해를 입히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글쎄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금액이 아니어서... 


쉽게 답변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단순히 사표를 내는 수준으로 마무리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회사에 손해를 10억 정도 가져와도, OO씨가 합법적이고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면, 


우리 회사는 그걸 OO씨가 혼자 책임지라고 내버려 두지 않을 겁니다. 


우리 회사가 그 정도로 작은 회사도 아니고, 인사팀장인 내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     


“하지만, 기본적인 것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 계속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한 번은 실수라고 하더라도, 두 번, 세 번이 되면, 실수가 아니라, 


성향이나 습관이라 볼 수 있는데, 기본이 지켜지지 않으면, 같이 일하기 힘듭니다.”      


“...”     




첫 번째 지각한 날, 


그날 선배와의 전화, 팀장님과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다시 고시생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때 그렇지 않았다면.     


그 뒤로 지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일은 못해도 기본은 지켜야 겠다는 생각에. 


14년 강의하면서 세운 규칙 중에 하나는 ‘무조건 강의장에 한 시간 전에 들어가자’입니다. 


모두 다 지키지는 못했습니다. 

비행기가 뜨지 않은 단 하루가 많이 아쉽긴 합니다. 

김포공항에서 전라도 광주까지 40만원 주고 택시로 달려 간 그 날 말입니다.     


선배님이나 팀장님의 의도한 피드백이나 코칭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참 지난 지금도 가끔씩 생각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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