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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이야기 Oct 11. 2016

케냐 여행, '웃픈' 이야기 하나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나이로비의 새벽, "제발 날 보내줘!"

거울 앞에서 물었다. "너, 지금 행복하니?" 이 질문의 답은 '사표'였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정세가 불안한 에티오피아 국경 마을 모얄레행을 포기하고 케냐 나이로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디스아바바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오전 1시 30분쯤 나이로비 국제공항에 안착했다. 50달러를 내고 한 달짜리 비자를 받았다. 다른 도시 같으면 곧바로 숙소를 잡고 휴식을 취했겠지만, 위험하기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이로비에선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 중 상당수는 공항 한쪽에 자리를 잡고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나도 그들의 대열에 합류해 시간을 죽였다. 그러던 중 한 호객꾼이 나이로비 시내에 위치한 '뉴케냐롯지'까지 1500실링에 가자고 해 선뜻 승낙을 했다. 공항 2층에 있는 사무실에서 계산을 하고 영수증을 받았다. 불행의 전주곡이었다. 사고는 항상 예기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내가 탄 차는 택시가 아니었다. 공항에 있는 여행사 차량이었는데, 돈을 먼저 내고 영수증을 받으면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는 방식이었다. 기사에게 뉴케냐롯지의 위치를 알고 있냐고 물으니 그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처음 방문하는 곳에서 여행자를 가장 긴장시키는 건 숙소를 찾는 일이다. 숙소에 도착만 하면 여행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공항 주차장에 세워진 승용차에 배낭을 넣고 차량에 탑승했다. 운전기사는 출발과 동시에 사파리 투어를 할 거냐고 물었다. 케냐나 탄자니아를 방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파리 투어나 킬리만자로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 흔한 여행자 중 하나였다.

난 "생각 중"이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그의 관심에서 벗어나 려고 했다. 사실이 그랬다. 이 말을 들은 운전기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런 뒤 다운타운 근처에 있는 자신들의 사무실에서 사파리 정보를 받아가라고 했다. 난 단호하게 운전기사의 제안을 거절했다. 지금은 무엇인가를 알아보고 꾸밀 시기가 아니었다. 휴식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이미 차는 숙소가 아닌 사파리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전날 오전 5시 곤다르에서 버스에 올라 15시간을 달려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해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24시간을 뜬눈으로 지새운 탓에 피로감은 극에 달해 있었다. 나이로비의 악명만 아니었다면 벌써 정신줄을 놓았을 상황이었다.

"휴~"
                                                                              


인생이 항상 예기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듯 여행도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날 인도했다. 어두컴컴한 나이로비 시내의 알 수 없는 사무실 앞에서 난 장탄식을 내뱉었다. 뒷골이 당겨왔다. 배낭을 메고 무작정 길을 걷고 싶었다. 그런데 도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옴짝달싹할 수 없이 생면부지의 직원이란 사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날 납치해 어디로 팔아넘기거나 강도질을 할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조금만 참자.'


5분이면 온다는 직원은 30분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사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은 분노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내 감정을 그대로 흑형에게 전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운전기사에게 너무 피곤하니 제발 목적지에 데려다 달라며 읍소를 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이미 줄 돈은 다 준 상황 아니던가. 내가 내밀 카드가 전혀 없었다.


'바보같이...'


여행을 그렇게 하고도 순진하게 덥석 돈을 줘버렸단 말인가. 모든 게 내 실수였다. 잠시 뒤 운전기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그리고 그는 숙소에 데려다 주겠다며 다시 차에 타라고 했다. 마수에서 빠져나오는 순간이었다. 뛸 듯 기뻤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가자규!


"헐~ 이게 어디야!"


차에선 내린 난 뭉크가 그린 '절망'에서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여긴 엉뚱한 호텔 앞이었다. 기사는 뉴케냐롯지는 최악의 숙소라며 여길 한번 보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뉴케냐롯지에 대한 기사의 평가는 정확했다.


어떤 사정인지 똑똑히 잘 알기에 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운전기사의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운전기사는 나이로비 시내를 이리 돌고 저리 돌더니 목적지를 찾지 못하겠다고 했다. 분명 일부러 헤매는 거였다. 그렇게 나이로비 다운타운을 세 바퀴나 돌아 도착한 곳은 다시 사파리 사무실 앞이었다. 분노의 끝에선 현기증이 찾아왔다. 난 분명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한 흑형이 날 보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기다리던 직원이란 작자였다. 그는 투어회사 사장이었다. 알고 보니 조금 전 찾아갔던 숙소는 이 사람이 경영하는 곳이었다. 그는 다짜고짜 사무실에 들어가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더는 화를 낼 힘도 없었다. 울음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두 손을 모아 빌었다. 제발 가게 해달라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연락하겠노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꼬박 하루를 이동하며 반송장이 돼 다크서클이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고, 망나니 머리에 시꺼멓게 탄 별 볼 일 없는 가난한 여행자의 몰골을 보고 그도 느낀 게 있었을 거다. 난 어디 내놓아도 돈이 안 될 차림새였다. 가도 좋다는 그의 재가가 떨어졌다.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한마디는 무서웠다. '절대권력'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다시 차에 올랐다. 


"너 연락 안 할 거지?" 


운전기사가 물었다.


"무슨 소리! 아니야. 아니야. 당연히 연락해야지. 걱정하지마. 날 믿어." 


화들짝 놀란 표정 연기는 수준급이었다. 5분도 안 돼 뉴케냐롯지에 도착했다. 물론 아까 헤매던 거리였다. 시계를 보니 오전 7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도착과 동시에 케냐가 저주스러워지고 있었다. 내게 나이로비는 위험 보다는 피곤한 도시였다.


여행 정보

아프리카를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싶다면 꼭 자유여행을 해야만 하는 걸까?

답은 NO다. 아프리카만의 독특한 패키지가 있다. 바로 트럭킹이라는 거다. 산을 오르는 트레킹의 오타가 아니다. 트럭킹은 주로 20~30명 정도 모여서 관광용으로 개조한 트럭을 타고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패키지와는 다르게 여행지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가 보장된다. 패키지와 자유여행의 중간 형태라고 보면 된다. 

특히 아프리카처럼 치안이 좋지 않고 이동이 어려운 곳에서 성행하고 있다. 기간은 보름, 한 달 등 다양하다. 트럭킹은 무엇보다 여행 내내 다국적 팀으로 움직이며 다양한 친구들을 사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트럭킹 투어 회사로는 노매드가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동우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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