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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는이야기 Aug 24. 2016

아프리카의 지붕 시미엔 마운틴

[트레킹으로 지구 한 바퀴] 아프리카의 지붕 시미엔 마운틴을 향해가며

거울 앞에서 물었다. "너, 지금 행복하니?" 이 질문의 답은 '사표'였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야기 1] 단 한 번 일본인이고 싶었던 순간

장마가 연상되는 날씨였다. 잔뜩 구름을 머금은 하늘은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 종일 오락가락 비를 뿌려댔다. 습도가 100%에 가까운 우기는 결코 반갑지 않았다. 침대시트를 꾹 짜면 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그 꿉꿉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빈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날씨이기도 했다.

39살의 터키 여성. 아이는 좋지만, 결혼은 싫다는 독신주의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해 유창하고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그녀. 강단과 경험을 두루 겸비한 '독고다이' 여행자. 필리스는 무엇이든 자기 생각이 분명했고, 아프리카의 낯선 환경을 즐길 수 있는 강한 멘탈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도 도저히 참지 못하는 게 있었다.

필리스는 타이투호텔에서 빈대에 물려 세 번이나 방을 바꿨다. 벌레 물린 데 바르는 크림을 빌려주니 전신에 팩을 바르듯 절반이나 써버렸다. 역시나 빈대엔 장사가 없었다.

필리스가 빈대에 물려 신나게 욕을 퍼부은 타이투호텔은 나에게 또 다른 난제를 안겨 주었다. 이 숙소는 그나마 아디스아바바에서 좋은 분위기의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어 현지인뿐 아니라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 숙소인 건 맞다. 역사도 100년이 넘었다. 하지만 그런 명성에 비해 시설은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내가 묵고 있던 방은 하룻밤에 173비르나 했지만, 항상 빈대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 복도를 지나가는 소리에 잠이 깰 정도로 방음이 취약했다. 어느 날은 옆방에서 새어나오는 젊은 남녀의 뜨거운 숨소리가 밤새 날 괴롭히기도 했다.

여기에다 인터넷 환경은 이번 여행 중 최악이었다. 파키스탄 보다도 상황이 나빴다. 사진 업로드는 고사하고 오탈자를 한 번 수정하려면 10분은 기본으로 투자해야 했다. 내 넷북은 느린 인터넷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error'를 마구 양산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행정보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당연히 방안에서 인터넷 접속은 상상도 못했다. 파키스탄을 거치면서 열악한 인터넷 환경에 대해 면역력을 기른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이 숙소에서 정말 참을 수 없는 건 다른 데 있었다. 타이투호텔의 공용화장실은 나에겐 정말 큰 숙제였고, 고통이었다. 샤워실 수도꼭지의 수압이 낮은 문제는 시간으로 해결됐지만, 모든 화장실 변기에 시트(seat)가 없는 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고기와 여자를 멀리하는 수도승처럼 나는 화장실과의 인연을 끊으리라, 삐질삐질 땀을 흘리며 염불을 외웠다. 물론 제아무리 위대한 수도승도 중력의 법칙을 어길 수 없듯이 나의 멀쩡한 육신 역시 인내의 한계에 이르고 말았다. 저주받은 장을 갖고 있는 내게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호텔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필리스가 오더니 모얄레에서 사고가 일어났다고 했다. 모얄레는 에티오피아와 케냐를 잇는 국경 마을로 육로이동에서 꼭 거쳐야 하는 거점도시였다. 시미엔 트레킹을 마치고 다시 아디스아바바로 돌아와 모얄레행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자세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리셉션으로 갔다. 여직원은 작은 쪽지 한 장을 내밀었다. 쪽지 내용은 모두 일본어로 쓰여 있었다. 난 일본어를 몰랐다.

"잠깐 쪽지를 빌려주면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있는 일본 여행자에게 내용을 읽어달라고 부탁할게요."

내 사고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부탁이었다. 

"쪽지는 빌려줄 수 없어요."

여직원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혹시 쪽지를 분실할까 봐 염려하는 건가?

"쪽지를 잠시 빌릴 수 없다면 그걸 사진으로 찍으면 안 될까요?"
"그것도 안 돼요."
"왜죠?"
"이 쪽지는 일본대사관 직원이 와서 적어주고 간 내용이기 때문에 일본인 외에는 보여줄 수 없어요."


궤변이었지만 최대한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하려고 했다.

"잠깐 내 말 좀 들어..."
"어찌 됐건, 당신은 한국인이고, 이 쪽지는 절대로 줄 수 없어요!" 


그녀가 말허리를 자르고 나왔다. 딱 거기까지였다. 여직원은 더 이상 내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플리즈..."
"글쎄. 안 된다니까요!" 

그녀는 자기 말을 쉼 없이 이어갔다. 내 말 자체를 듣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안하무인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이 쪽지 내용을 알고 싶으면 레스토랑에 있는 일본인을 데려오라고 했다. '아놔!' 쪽지가 필요한 건 나였다.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뜨거움을 참고 일본 여행자들이 식사하고 있는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상황 설명을 하며 좀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좀 전에 우리도 쪽지를 봤어요. 모얄레에서 현지주민 간 충돌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일본대사관에서는 모얄레 여행을 금지시켰다는 내용이에요. 우리도 쪽지를 사진으로 찍겠다고 했는데, 리셉션 직원이 안 된다고 했어요."

리셉션을 다시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필리스에게 안하무인 여직원에 대해 침을 튀기며 '거품'을 뿜어댔다. 필리스는 여유있는 미소로 날 바라봤다. 그녀는 이집트보다 여기가 더 거지 같은 나라라는 말과 함께 날 진정시켰다. 한편으로 필리스는 날 재밌어했다. 에티오피아 초짜 여행자를 보며 자신이 과거에 느낀 울분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이 순간 전형적인 냄비근성이 발동하며 에티오피아를 그냥 뜰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런 나라에서 돈을 쓰고 싶지 않아. 그냥 케냐로 갈까?"
"워~워~ 킴! 진정해."

오만 여행을 날려 버린 두바이의 막돼먹은 렌터카 사건이 떠올랐다. 렌터카 회사 직원은 '돈'이란 지극히 상식적인 이해가 달려 있어 그렇다 쳐도 도대체 그 종이 쪼가리 하나가 자기랑 무슨 상관인지 도저히 납득이 되질 않았다.

일본인에게만 보여줘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일본대사관 직원이 꼭 일본인에게만 보여주라고 부탁하지도 않았을 것 같았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언제부터 일본인을 그렇게 챙겼다고. 일본인만 살고 다른 나라 사람은 다 죽어도 된다는 말인가.

왜 사진을 찍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지만, 설명은 없고 무조건 안 된다는 억지를 당해낼 재주가 없었다. 無논리, 無대뽀, 無경우였다. 이런 에티오피아인의 '三無정신'에 난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필리스는 시뻘게진 내 얼굴을 보며 "이런 나라가 에티오피아"라며 "이건 보통"이라고 했다. 일본대사관 직원이 아디스아바바 시내를 돌며 정보를 실어 나를 때 한국대사관 직원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정말 단! 단! 단! 한 번 일본인이고 싶었고, 일본이 부러운 날이었다.

다음날 BBC는 에티오피아 남부지방에서 부족 간 충돌이 발생해 최소 18명이 숨지고 주민 2만여 명이 국경을 넘어 케냐로 대피했다고 보도했다.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에티오피아의 열악한 상황을 감안하면 모얄레의 사정은 안 봐도 뻔했다. 만약 저 소식을 모르고 모얄레행 버스를 탔으면 난민대열의 틈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됐을 거다. 아니면 국경이 닫혀 있을 수도 있고, 국경을 넘는다고 해도 나이로비행 버스를 탈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일본여행자들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모얄레로 갈 건가요?"
"글쎄..."
"노, 노, 노. 너무 위험해욧!"
"당신들은 어떻게 할 건가요?"
"우린 나이로비행 비행기를 이용할 거예요."


루트 수정이 불가피했다. 계획이 계획대로 되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여행 정보

- 빈대 이야기
여행을 하다 보면 흔히 '베드 버그'로 불리는 빈대의 습격을 받는 경우가 생긴다. 베드 버그는 모기와 달리 잠들어 있는 사이 수십 군데에 흔적을 남긴다. 빈대가 물고 간 자리는 극심한 가려움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2차적으로 피부에 상처를 남기기 쉽다. 장기 여행자라면 가려움증을 완화해줄 연고 등을 꼭 가지고 다니길 당부한다. 

빈대는 눈에 잘 보이지 않으며, 만약 빈대에게 물리게 되면 물에 약한 빈대의 약점을 이용해 옷을 전부 세탁하고, 숙소나 방을 옮기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빈대에는 장사가 없다. 숙소를 고를 때 햇빛이 잘 드는 방을 선택하면 빈대의 공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빈대는 배낭 등에 붙어 이 숙소에서 저 숙소로 옮겨지기 때문에 100% 막는 방법은 없다.

- 아디스아바바 이야기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는 '이동하는 텐트의 집단'이란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현재는 아무도 이런 유목 생활을 하지 않는다. 과거 에티오피아의 유목민들이 정착 생활로 갈아탄 것은 성장이 빠른 유칼립투스를 이용해 연료 확보가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현재도 아디스아바바의 도심 이곳저곳에 유칼립투스 나무가 즐비하다. 

아디스아바바를 방문했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바로 허름하기 그지없는 에티오피아 국립박물관이다. 이곳에는 320만 년 전 초기 인류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루시)가 전시돼 있다. 루시의 발견으로 직립보행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 두뇌 발달이 아니라, 도구제작 능력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이야기 2] 아프리카의 지붕 시미엔 산으로 

오전 4시, 휴대폰 알람이 울렸다.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짐을 챙겨 나흘간 머문 타이투호텔을 나섰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새벽 피아자 거리는 어두웠다. 어서 빨리 택시를 잡아타고 곤다르행 버스가 출발하는 메스켈스퀘어로 가고 싶었다. 숙소 앞에는 택시가 대기 중이었다. 택시기사는 멀지 않은 거리를 150비르에 가자고 했다. 협상 끝에 80비르까지 가격을 내렸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큰길로 나섰다. 동이 트기 전의 새벽 거리는 음산했다. 흑형들 몇 명이 어둠에 몸을 숨긴 채 날 쏘아보았다. 만약 여기가 케냐 나이로비나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쯤 됐으면 뭔 일이 나도 벌써 났을 분위기였다. 잠시 뒤 어둠 속에서 다른 택시가 나타났다. 택시기사는 70비르를 불렀다.

메스켈스퀘어에 도착하자 곤다르행 스카이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스카이 버스는 보통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버스보다 가격이 2배 비싼 고급형이다. 티켓 사무소는 타이투호텔 안에 있다.

버스에 올라 보니 동양인은 나 혼자였다. 버스 내부 공기는 무거웠고 나를 보고 힐끔거리는 차가운 눈빛이 느껴졌다. 에티오피아에서 중국인의 이미지는 최악이다. 중국인들이 건설한 도로는 2~3개월 뒤면 여지없이 망가져 버린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인들에게 중국은 '부실도로를 만들어 놓고 각종 자원은 다 가져가는 나쁜 나라'란 인식이 팽배했다. 중국인 남자와 에티오피아인 여자가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면 3개월 뒤 유산이 되는데, 'made in china'이기 때문이라는 농담이 회자될 정도다.

내게 차가운 눈빛을 보내는 사람 중에는 날 중국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내 국적을 알게 되면 형제의 나라라며 활짝 웃어주는 사람들이 적잖았다. 오전 5시 30분에 출발하기로 한 버스는 지각한 승객을 전부 기다린 끝에 1시간이나 연발됐다. 고급버스답게 출발 뒤 안내양이 음료수, 카스텔라, 물 한 병씩을 나눠 주었다. 서비스에 비해 좌석은 그리 편치 않았다.


                                                                                   

에티오피아의 옛 수도 곤다르까지의 이동은 에티오피아에 대한 나의 편견을 깨주었다. 여행은 매번 TV나 사진으로 본 이미지가 얼마나 작은 부분이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부분을 전체로 착각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마냥 좋았던 나라들이 최악으로 바뀌는가 하면 기대하지 않았던 나라에서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다. 


에티오피아 하면 풀 한 포기 없는 척박한 땅이 먼저 연상됐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미지의 조각들이 깨져나가며 그 자리에 새로운 인상들이 자리를 잡았다. 여행은 그렇게 내 인식의 틀을 재조정해 주었다.

아디스아바바를 벗어나면서부터 초원이 이어졌다. 공장 건물은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가축을 기르고, 땅을 일구었다. 흙집에서 사는 사람들의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가옥 자체만 놓고 보면 티베트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버스가 정차하면 동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돈을 달라는 사람도 있었고, 먹을 걸 요구하는 아이도 있었다. 먼발치서 버스에 내리고 오르는 사람을 신기한 듯 관찰하기도 했다. 신발을 신은 사람은 반밖에 없었다.


                                                                                     

그들의 눈에서 '동경'이 읽혔다. 아디스아바바에 사는 사람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환경적으로만 보면 아디스아바바 주민들은 선택받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물질에 집착했고, 나라 전체가 안고 있는 결핍에서 오는 두려움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에티오피아의 빈부격차는 상상을 초월했다.

부정부패가 만연했고, 가진 사람들이 더욱 많은 걸 가질 수 있는 구조였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친절은 사치였다. 이들이 여행자를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거나 사기를 치는 이유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그렇게 해서라도 그들은 가져야 했다.

그런 그들의 이글거리는 눈앞에 반짝이는 옷을 입고 하얀 운동화를 신은 낯선 여행자의 모습이 어떻게 다가올지...


                                                                                   

한 에티오피아인은 나에게 영국에 갈 때 비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 난 비자가 필요치 않은 나라에 살고 있다. 그는 비자를 받는 데 5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당연히 영국에 대한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이들에게 물질은 나와는 또 다른 절박함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이율배반적이게도 물질주의를 거부하는 내 사고의 형성도 풍요로운 물질을 누려왔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다. 그만큼 물질은 중요하다. 이곳에선 더욱 그랬다.

검은 그림자가 내리깔렸고, 하나 둘 흙집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전기는 꿈도 못 꾸는 환경이었다. 버스여행도 힘들었지만,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들이 내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15시간을 달린 끝에 곤다르에 도착했다.

에티오피아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기독교 국가이면서 국민의 상당수가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다. 이들의 삶의 질과는 무관하게 전 세계에서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두 번째 나라가 에티오피아다. 만일 신이 있다면, 신은 이들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여행을 하면서 감상 따위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난 이 순간만큼은 감상의 늪에서 허우적거렸다.


여행 정보

왕궁 유적과 데브레 베란 셀라시에 교회(Debre Berhan Selassie Church)는 곤다르의 유명 관광지다. 데브레 베란 교회는 기독교 국가 에티오피아의 신앙 중심지로, 17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이다. 천장에 그려진 각양각색의 천사 그림이 잘 알려져 있다.

또 곤다르 도심에서 가까운 고하호텔에 가면 곤다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악숨'이란 곳도 가볼 만하다. 모세의 십계명 원판이 이곳에 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도시다. 오벨리스크 유적지와 악숨 왕국의 성채 등 다양한 유적을 관람할 수 있다. 시간이 된다면 악숨에서 400km 가량 남쪽에 위치한 랄리벨라 암굴교회를 찾는 것도 추천한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 김동우 시민기자가 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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