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꿈에게
술을 마시고 가까운 거리란 생각에 운전대를 잡아버렸다. 운전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눈앞이 흐려진다. 쿵!!!
누군가를 친 것 같다. 어떡하지?
순간 나는 상황을 직시하지 못하고 도망가 버렸다.
당신이 검사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에게 어떤 비난을 하실 건가요?
그에게 몇 년 형을 내릴 건가요?
어떤 형벌을 내려야 죽은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늘 '감히 내가 해도 될까?'하는 판단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당시 두 명의 계장님 중 베테랑이었던 계장님이 조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 뒤 당직을 서는데 변사(사망) 사건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익숙한 이름이 쓰여 있었습니다.
'김 ㅇㅇ씨...? 아! 몇 주 전 조사 했던 그 성폭력 피의자잖아...!'
가슴이 쿵 내려앉고 식은땀이 났습니다. 앞으로 벌어질 일들이 직감되었습니다.
며칠 동안 나를 비롯해 부장님까지 경찰과 함께 모든 사실관계를 집중적으로 확인했습니다.
남자의 유서에는 피해자와 경찰 수사기관에 대한 원망도 들어있었습니다. 본인은 억울함에도 범죄자로 조사받는 것이 수치스러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에 따라 검찰 내부적으로 조사 과정에서 인권침해적인 요소가 있었는지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당시 영상으로 녹화를 하며 조사를 하였기 때문에, 조사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었습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그러한 요소가 있었다면, 저는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당시 내부 조사를 담당했던 검사님도 상황이 끝나고 따로 저에게 연락을 주며 위로를 해주셔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본인의 신고로 인해 사람이 죽었다고 자책하던 그 어린 피해자가 받았을 정신적인 상처는 어땠을까요? 죽은 피의자 유족들의 심정은요?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고 정의에 맞게 일을 한다고 매일 같이 야근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자책과 후회, 비난뿐이었던 계장님과 저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내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고객은 피해자 혹은 피의자였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써내려 갔습니다.
일기를 쓴 지 300일이 넘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저에게 동화책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린아이가 당나귀를 데리고 길을 가는 단순한 내용의 동화였습니다.
꼭 전달을 하고 싶은 마음에
부족하지만 내용을 떠올리며 직접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아무리 찾아도 인터넷에 없어요.)
라며 저마다의 예쁜 씨앗을 품고 어른이 됩니다.
저도 그랬어요. 저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검사가 될 거예요!
그런데 씨앗이 예쁘면 예쁠수록 아이는 지킬게 많은 어른이 됩니다.
씨앗이 크면 클수록 짊어질 것이 점점 더 많아집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짊어진 짐이 무거워 포기하고 맙니다.
자신의 당나귀를 잃은 것도 모른 채 그냥 걸어가는 거예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참 공허했습니다.
다시는 잃고 싶지 않습니다.
당나귀의 모양은 변할 수도 있겠지만요.
저는 용기 내서 끝까지 외로움을 감내하며 가겠습니다.
찾았다면 그 감내하고 감사한 그 과정을
찾고 계시다면 그 불안하고 설레는 그 과정을 응원하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