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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드 Aug 03. 2023

공소순례

성당기행 #34 

여행을 좋아하는 저는 우연히 여행길에서 만난 성당의 아름다운 이국적 건축미에 끌려 2년 정도의 시간 동안 공소를 포함하여 137개의 성당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신앙이 없던 저는 처음엔 건물외벽의 형태만 보았지만 시간이 지나 과감히 성당의 문을 열게 되었고 아무도 없는 성당에 들어가 쭈뼛거리며 내부를 들려보고는 그 아름답고 은밀한 경건함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국적 풍경일 수밖에 없지만 한국의 문화와 잘 조화된 아름다움. 새삼 떠올리게 된 사실이었지만 한국의 가톨릭 역사는 평범하지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하여금 그 혹독한 박해를 고스란히 견뎌내게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러한 수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곳곳에 서있는 그 굳건함은 경외할 대상의 완벽함을 스스로 알아낸 초기 가톨릭 신자들의 신념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선교할 사제도 없고 성당도 없는 곳에서 자생적으로 꽃 피워 성장한 우리의 가톨릭 역사이기에 더더욱 신비롭기만 합니다. 그 신비로움에 푹 빠진 저는 지난 부활절에 8개월간의 통신교리를 받고 대구에 있는 만촌1동 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성당순례 중 우연히 만나게 되는 공소는 성당처럼 고딕식이나 비잔틴 양식의 화려함은 아니지만 그 소박함과 공소의 명맥을 이어가는 공소신자들의 순박함이 더욱 정겹게 느껴지던 곳이기도 합니다. 특히 공소는 옛 기와집이나 시골집 같은 곳이 많아 더욱 정감이 갑니다. 또한 거의가 시골에 위치하여 찾아가는 길 위에 펼쳐진 풍경들도 즐길 수 있는 곳들이 많았습니다. 제가 만난 공소 중에서 통영의 황리공소는 주변의 원룸과 도시 개발화 속에서도 꿋꿋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 상당히 인상 깊었던 곳 중의 하나입니다. 너른 마당 스레트로 올린 민트색 지붕이 해변의 한 곳 같은 느낌도 나는 곳입니다. 미사예절 시간표도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도 공소에서 공소예절과 미사를 드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국에는 650여 개의 공소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중 대부분이 인구가 줄어 멸실될 처지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제가 돌아본 공소들 중에도 유지 관리가 안 되어 잡초가 무성하고 지붕이 내려앉아 흉물스럽게 방치된 곳이 많았습니다. 안타까운 마음도 많이 들었지만 다행히도 몇 군데는 지자체의 자금으로 문화재 등록을 하는 등 복구하여 보존하는 곳도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많은 곳이 도시화되고 농촌의 인구는 줄어 공소가 제 구실을 하기는 힘들지만 형태라도 보존되어 조용하고 한적한 기도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괴목공소
설천공소
인안공소


칠곡공소
하빈공소
백산공소

이런 바람을 가지고 공소를 순례하다가 만난 아름다운 공소가 감포에 있는 감포공소입니다. 감포공소는 아름다운 감포의 한쪽 바닷가 언덕에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옥색의 바다가 바라보이는 약 2,000평에 이르는 너른 대지위에 성모동산과 공소건물 그리고 특이하게도 사제관이 있는 공소입니다. 공소에는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데도 사제관이 있다는 사실에 조금 의아할 수도 있지만 감포공소는 2021년부터 올해로 90세이신 허연구 모이세 신부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감포는 무속신앙이 워낙 강한 어촌 마을이라 전교가 무척 어려운 곳이었다고 합니다. 1980년 즈음부터 이곳으로 이주한 소수의 신자가 가정 공소를 시작했고 신자수가 조금 늘어나자 공소 부지를 매입하고 공소를 건립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15년이 지난 2005년에야 공소건물을 건립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공소건물이 지어져도 신자수가 많이 늘지를 않았고 최근에는 코로나 여파로 인해 신자수가 거의 없어 7년 동안이나 거의 방치되다 시피한 공소였다고 합니다. 몇 되지 않는 신자를 위해 신학생들의 봉사와 몇몇 신자분들의 헌신이 있었지만 겨우 공소를 꾸려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신 허연구 모이세 신부님이 2021년 3월 자청하여 이곳에 오시게 되었습니다. 교구에서는 연로하신 신부님께서 혹여 건강에 해를 입을 것을 염려해 처음에는 극구 만류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이세 신부님의 강경한 요구와 기도로 허락이 되었다고 합니다. 오셨을 땐 공소의 한편 조그만 방에서 기거를 하다가 교구에서 사제관을 짓기로 하여 공소 오른편에 아담한 사제관도 마련이 되었습니다. 사제관이라도 있으면 자신과 같은 은퇴한 신부들이 남은 생을 헌신할 수 있는 여건이 될 것이라는 모이세 신부님의 간청이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모이세 신부님은 10명의 신자분들에게 영세를 주는 것을 하느님께 서원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50명의 미사 참석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참석한 올해 6월 11일 성체성혈 대축일 미사에는 외부에서 오신 분들 포함 약 30명 정도가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작년에 방문했을 땐 20명이 채 못되었는데 몇 개월간 신자수에 변화가 있는 것을 보면 하느님께서 함께 하고 계시구나 하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현재까지 5명의 신자가 세례를 받으셨고 3명의 예비신자가 모이세 신부님께 교리공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울산에서 한복을 짓고 계신 카탈리나 자매님이라는 분은 우연히 감포공소를 방문하였다가  모이세 신부님의 헌신을 듣고 감포공소에서 세례성사를 받으시는 분들께 한복을 한벌씩 해드리겠다고 약속하셨다고 합니다. 현재 3명에게 이미 한복을 지어 드렸다고 합니다. 마침 제가 방문한 날에 이 자매님도 오셨는데 호탕하고 밝은 웃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여러 방편으로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선을 이루게 하시는 것을 보고 감포공소에서 시작하신 하느님의 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도 들었습니다. 


모이세 신부님은 오로지 기쁜 삶을 위해 자원해서 감포공소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대구에 40평 정도의 기거할 수 있는 편한 거처가 마련되어 있었음에도 오로지 남은 삶을 하느님께 드려 이곳 감포공소의 활성화를 위해 헌신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모이세 신부님은 "교회의 시작은 공소입니다. 은퇴한 신부가 상주하여 공소들을 맡아 헌신하는 사례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신부가 남은 삶동안 열심히 사제의 직분을 다하면 언제나 하느님께서는 함께 하실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이세 신부님은 많은 공소들이 멸실되어 없어지기보다는 사명감을 가진 신자를 교육하고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하면 공소라는 역사 안에 있는 아름다움이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성당과 공소를 순례하면서 그 안에 녹아있는 경건함과 하느님의 집의 아름다움을 알게 되어 마침내 세례를 받은 세례신자가 되었습니다. 내 안에 성체를 모실 수 있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기쁜 일임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당의 아름다움과 공소신자들의 순박하고 아름다운 삶이 제가 하느님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한 계기였던 것입니다. 전국에 있는 공소들이 감포공소처럼 아름다운 또 한 번의 시작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 신앙의 아름다움이 전교의 한 도구가 되지 않을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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