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참 갖고 싶은 게 많던 아이였다. 아빠는 내가 갖고 싶어 하던 걸 모두 사 주고 싶어 하셨으나 나에게는 동생이 둘이나 있었다. 나이가 어려도 큰 누나였던 나는 자연스럽게 동생들에게 양보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몰랐다. 아빠는 왜 나에게만 인형을 사주지 않는 걸까, 나는 갖고 싶은 게 이렇게나 많은데. 이런 생각은 내가 자라면서, 내가 학교에 다니게 된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일본에 가고 싶어 하던 나는 왜 아빠가 나를 보내주지 않는 걸까 고민했고 그 생각은 결국 아빠가 나를 싫어해서, 혹은 나에게 그렇게 해 줄만한 이유도,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에게 그랬던 걸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고교생 때도 나는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어 하던 것도 참 많았기 때문에 아빠와 몇 번씩 부딪혔다. 나는 다른 아이들의 아빠가 부러웠고 자매가 없는 무남독녀 친구들이 부러웠다.
학생 때 엄마와도 참 많이 싸웠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엄마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내가 무얼 해도 엄마는 나를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참으로 삐딱했던 탓에 좋아하던 과목 이외에 공부는 완전 젬병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공부를 골고루 잘하던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도 아빠도 나에게 분명 기대할 만한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수능 직전, 수능 준비를 접어버리고 학교 선생님과 유학 준비나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는 분명 어딘가 단단히 꼬인 아이였다.
이후에서야 알았다. 아빠는 내가 갖고 싶어 하던 걸 왜 사주지 않았는지, 엄마는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어렸을 때 몰랐던 무언가가 어른이 되어 가면서 살며시 보이는 것 같았다. 분명해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우리 남매가 어리던 그때의, 젊은 날의 아빠와 엄마에게 그만큼의 여유는 없었던 걸 거라고. 그 시절의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분명하고 싶었던 일도 갖고 싶어 하던 것도 바라오던 것도 있었을 텐데. 우리가 갖지 못했던,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제일 속상해할 사람은 나도, 동생들도 아니었다는 것을 나는 왜 이제야 그걸 알았을까, 왜 나는 그런 말을 했을까.
우리가 성장하면서 젊은 날의 우리와 바꿀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생길 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우리에게 일어날 수많은 일들이 어떤 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훗날 돌아보면 젊은 날의 우리와 바꾸게 되어 정말로 다행일 일들로 가득할 거라고, 그 시절의 우리는 그 모습 그대로의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