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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books Mar 20. 2021

노트의 죽음

노트의 죽음 



지금 바로 OO회의실에서 미팅을 한단다. 모두들 서둘러 노트북 하나씩을 챙겨서 이동한다. 나 또한 노트북을 챙긴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다 미팅용 노트 하나도 같이 집어든다. 펜과 연필 중 어떤 것을 가져갈까 잠시 고민하다 그중 하나를 선택한다. 다시 달력이 있는 스케줄러에도 마음이 닿는다. 왠지 일정도 같이 확인하면서 미팅에 참석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서이다. 결국 나는 단순한 내부 미팅 참석에 바리바리 여러 짐을 애써 챙겨 가는 꼴이 된다. 그래봤자 뭐든 하나만 들고 가면 되는 일인데.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회의이든 공부하는 자리에든 다양한 목적으로 적극 사용하는 일이 일반적이지 않았다. 종이 노트에다 무언가를 받아적는 일이 가장 자연스럽고 마음이 편한 일이었다. 노트북을 사용할 때에는 '놀거나', 오피스 프로그램 등 '작업을 할 때'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이다.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려고 한다면 PC나 노트북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안서를 만들어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작업을 위해서는 작업용 도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밖의 활동에서 나는 노트북을 이용하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소통 가운데 무언가를 적어야 하는 일이 있다면 나는 종이 노트를 활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소통의 자연스러움을 방해하지 않고 중요한 내용들을 빠르게 적을 수 있어서이다. 그리고 생각의 흐름을 그림처럼 도식화해서 빠르게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이제는 이러한 작업 자체도 터치형 태블릿PC가 완전히 대체하고 있지만). 종이 노트 위에 내 필기체로 어떤 내용들이 작성되어 기록화된다는 사실 자체에 적지 않은 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전반적으로 봤을 때 종이 노트는 세상에서 죽어가고 있다. 유난히 나같이 아날로그적인 행동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서 찾아서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종이 노트는 이제 정말 종이만 낭비하고 가방에서 무게만 더 차지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있는 듯싶다. 회사에서는 특히 종이 노트를 들고 다니면서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일정표를 체크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이다. 모든 것은 클라우드에 동기화되어 있고, 여러 편리한 형태로 언제든지 공유될 수 있다. 몸에 들고 다니면서 사적인 기록물로서 기능할 수 있는 종이 노트는 그만의 장점은 첨단의 IT 기기에 새로운 진보의 유산으로 전달하고, 단점은 크게 부각되어 점점 사양화되는 길로 접어들고 있다. 






최근 몇 년 전 타계한 움베르토 에코의 유작을 읽고 있다. 그는 내가 존경하는 학자 가운데 한 분이다. 여러 방면에서 천재적인 인물이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을 많이 가졌던 부분은 그의 진정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면모이다. '책의 종말'의 주제로 진행된 토론과 각종 칼럼에서 그는 종이책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종이책을 자전거나 의자처럼, 현재의 인간이라는 존재의 인체공학적인 특징과 삶을 영위하는 본성적 특성에 기반해서 봤을 때 그 형태 말고 다른 것으로 결코 생각할 수도, 만들어낼 수도 없는 본질적이고 자연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우리는 빠르게 두 눈과 두 손의 콜라보적 움직임을 통해 여러 텍스트 정보를 적어 놓은 종이책을 이리저리 도약과 생략, 분석과 감상, 필기와 삭제를 거의 동시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알다시피 같은 텍스트 정보를 담아내고 있는 전자책이나 여타 전자 디바이스로는 아직 그만큼 자연스럽게 수행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책은 게다가 전기와 같은 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종이 그 특유의 촉각적 성질은 만지고 접고 냄새를 맡는 등, 다양한 감각의 상호작용을 통해 독자의 가독성과 이해의 정도에 있어서 여러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만질 수 있다는 책의 물성은, 우리의 시각적 착각 효과에 의해 마치 정말 어떤 지식과 정보가 우리의 책장에, 책상 위에, 선반 어딘가에 실제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전자 정보보다 보다 현실적이고 현저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것은 마치 부자의 잔고가 기록된 통장과 농부가 거두어들인 수확물로 가득 찬 창고처럼, 지식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적 만족감을 충족해주는 자산이 된다.     


책을 진정으로 사랑한 움베르토 에코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기록물을 열성적으로, 많은 분량을 남긴 사람이기도 하다. 주머니에 '미네르바'라는 상표가 적힌 성냥갑을 항시 들고다니곤 했는데, 그 성냥갑을 순간순간 든 단상과 아이디어를 적는 노트처럼 활용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때 기록한 여러 내용들을 발전시켜 칼럼으로 새로 쓰기도 하고 여러 권의 책으로 출판하기도 했다. 지금 읽고 있는 에코의 유작 또한 바로 그러한 노트에서 최초의 아이디어를 기록하여 발전시킨 작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나 또한 에코처럼 책과 노트를 사랑한다. 그만큼 천재적인 학식과 중요한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만큼의 책과 노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는 있겠다. 나는 수많은 노트를 가지고 있다. 몰스킨과 무지 노트, 그 밖의 여러 형태의 노트를 구입해서 필요한 일에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내가 남기는 기록이 나는 물론이고 세상에 미약하나마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록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보곤 한다(그러나 대부분의 기록들은 무척이나 사적이며, 보편적인 지혜로 발전할 수 있는 단초가 될 만한 것들인지는 여전히 회의적인 수준이다). 순간의 인상이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은 생각거리와 의미를 전달해줄 때가 있는데, 나에게 그 순간은 재빨르게 손과 연필, 그리고 종이 노트와의 합작으로 만들어내야만 특정 의미를 지닌 기록물로 담겨지는 것 같다. 태블릿PC를 꺼내 필기를 위한 특정 앱을 구동시키는 순간, 이미 그것은 일이 아닌 다른 이유로는 앞으로 거들떠 보지 않을 죽은 기록으로 갈 것이라는 이상한 직감이 든다. 실제로는 하드웨어와 클라우드 두 가지 저장소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기록을 가장 안전하고 반영구적으로 남기는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미 6개의 서로 다른 용도의 노트를 운영 중이지만, 연중에 또 다른 노트를 구입할지도 모르겠다. 몰스킨 같은 경우에는 스케줄러 특성상 해당 노트에 프린트된 날짜들이 지닌 미래적 가치가 점차 줄어들게 되면 파격적인 할인가로 판매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노트를 사는 것에 대한 아내의 핀잔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특가 판매가 있으면 나는 다시금 그 가판대 앞에서 이리저리 서성이며 노트를 들었다 놨다 하다가는, 약간의 흥분과 함께 결국은 구매하여 가방 안에 잘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며 즐거운 마음으로 매장을 빠져나가게 될 터이다. 이 종이 노트에 지극히 사적인 기록들만 말고, 주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는 훌륭한 내용을 꼭 써보겠다는 대의적인 희망을 한가득 안고선 말이다.   



<원본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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