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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점프] 2장. 생존을 넘어서기

by 백기락


눈꺼풀이 이렇게 무겁다는 걸 처음 느낀 것 같았다. 겨우 눈을 뜨려 하자 밝은 빛이 눈을 불편하게 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선명해지더니, 하얀 천장의 형광등이 보였다.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니, 하얀 커튼, 링거 … 그리고 차 대령이 눈에 띄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던 차 대령이 고개를 돌리고, 이내 백준기와 시선이 마주쳤다.


“아, 눈을 떴군요!”


차 대령의 물음에 답을 하고 싶었지만, 금방 목소리가 나오진 않았다. 겨우 내뱉은 목소리는 준기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낯설고, 거친, 연약한 목소리였다.


“제가.. 살았군요….”

“네, 다행히 준기 씨는 가벼운 뇌진탕 증세더군요. 온몸에 피는 그 여성의 것이었어요”

“아 맞다, 그 여자분… 어떻게 됐어요?”

“어깨에 총상을 입었어요. 한 발이 스친 정도였는데, 한 발이 관통을 하면서… 피를 많이 흘렸어요. 아직 혼수상태입니다.”


그제서야 그때의 상황이 떠올랐다. 누군지 물어볼 겨를도 없었고, 그냥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는데.. 누군지는 모르지만, 준기 자신을 대신해서 총을 맞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했다.


“살 수 있을까요? 누군지는 모르지만, 저를 구하려고 했어요.”


준기가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 들었고, 잠시 제지하려던 차 대령도, 이내 준기를 일으켜 주었다. 머리는 여전히 두통이 심했지만, 몸이 무거울 뿐 고통이 드는 곳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일본 요원 같았습니다…. 일본인 신분증이 있었어요. 화이트 요원 같았는데, 보통 화이트 요원이면 그런 현장에, 총까지 지니고 가진 않는데… 이유를 모르겠네요.”


커튼 때문에 보이진 않았지만, 준기의 침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녀가 누워 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죠? 갑자기 아무도 없었어요. 계속 잠들었다면, 진짜 죽었을지도 몰라요. 누군가가 유리창을 총으로 쐈어요. 그래서 급하게 탈출하려 했는데, 그 여성이 차로 저를 데리러 왔어요.”


차 대령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잠시 후 차 대령은 천천히, 무겁게 입술을 떼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윗선에서, 백준기 씨를 위험에 빠트린게 아닐까 싶어요. 다들 연락을 받고,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그게 거의 동시에 이뤄졌어요. 그것도 서로 의심을 사지 않을 순서대로… 이 정도면 누가 계획적으로 그런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준기의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그렇게 살려고 6개월을 도망 다녔는데, 정작 자신을 보호해줄거라 생각했던 한국 정부에서 자신을 위험에 빠트렸다고? 아니지 이건 죽이려 한 게 아닌가…


“아무래도… 이렇게 숨는다고 해서… 안전할 것 같진 않네요…”

“네… 윤 부장님도 심각하게 여기는 눈치에요. 자신을 거치지 않고 이뤄졌다더군요…”


윗선이라면 윤 부장도 의심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준기의 머리 속을 스쳤지만, 이내 그 생각은 지웠다. 윤 부장이라면, 이렇게 복잡하게 자신을 처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오히려 윤 부장과 차 대령을 배제하려고 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현장에 가보니, 두 사람 뿐이더군요. 다행히 금방 발견했어요. 낌새가 이상해서 요원들과 급하게 돌아왔는데, 준기 씨 위치가 잡히더군요. 꽤 총격이 많았던 것 같은데, 놀랍게도 두 사람 뿐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두 사람을 지킨 것 같아요. 저 여성 요원 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그랬구나, 하긴 그 여자 운전자는 총을 맞았었지, 준기 자신도 정신을 잃었고… 그런데 누가? 총격전까지 감수하고 그런거지?


그때 차 요원의 전화기가 울렸다. 네, 네, 라는 대답이 이어졌다. 전화를 끊은 차무영 요원은 준기의 눈을 보며 이야기했다.


“방금, 부장님으로부터 전권을 위임 받았습니다. 지금부터 상부 보고 없이도 단독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어요.”


그 말은, 결국 윤 대령도 자신의 힘으로 나를 지켜줄 수 없겠다, 고 판단한 셈인데… 어디선가 정보가 샌다고 본 모양이다… 준기의 머리 속은 복잡해졌다. 지난 6개월 동안의 시간, 아니 쓰지도 못할 비트코인을 지키겠다고, 알량한 애국심 같은 걸로 이렇게 살아보려 힘들게 지냈는데, 그 시간들이 너무나 허탈해졌다.


결심이 필요했다.


“도망쳐서 될 건 아니겠네요…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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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기의 말에 차 요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생각할 시간을 좀 주시겠어요?”

“… 그러죠. 쉬세요.”


다시 커튼을 닫고 차 소령이 자리를 떠났다. 그러고 보니 어지러움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대한민국 정부가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이렇게 현장 요원에게 전권이 주어질 정도면, 제대로 숨을 수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결국, 필요한 건, 결심이었다.


이렇게 숨어서 도망쳐서는 살 수 없을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대한민국 땅에서 총격전이라니…


그리고 마음을 먹었다. 살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맞서야겠다고. 비록 준기 자신은 평범한 사람일지 모르지만, 이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일들을 겪었고, 무엇보다 너무나 많은 자원을 가진 사람이 아니던가. 100만 비트코인.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찾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고 스마트폰 안의 보안 폴더를 열었다. 100만 비트코인의 수많은 코드들… 일전에 윤 부장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한국 정부도, 미국이나 일본, 중국까지도 당분간은 준기 씨의 비트코인을 건들지 못할거라고. 서로 견제하고 있다고… 하지만, 누군가가 그 침묵을 깨드린 모양이다. 그렇다면 자신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수많은 생각을 하며,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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