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제 선정과정과 프리미엄 규정
지난 2020년 2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와 오스카에서 수상을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마음 같아선 <기생충>이 베를린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등등 온갖 영화제의 상을 휩쓸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영화가 그렇게까지 좋지 못해서? 아니면 아직 한국영화는 그렇게까지 되지 않아서?
NOPE!
<기생충>은 칸 영화제의 수상을 확정하는 그 순간, 아니 칸 영화제의 선정과 상영이 확정되는 그 순간부터 자동적으로 타 대형 영화제들의 수상 기회를 박탈한 것이다.
바로 영화제의 '프리미어 규정'에서 비롯된 일이다. 이 규정을 이해하기 위해선 영화제의 작품 선정 과정에 대해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화제에 상영되는 영화들은 크게 2가지의 방법으로 선정된다.
첫째, 타 영화제 등을 통해 미리 알려진 수작들을 프로그래머가 초청하여 상영하는 경우.
가령 A라는 프로그래머(내지는 선정위원)가 베를린영화제와 EFM(European Film Market)*을 참석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영화제에서 상영 혹은 세일즈 되고 있는 영화 <화양연화>를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영화제에 소개되기를 원한다면. 바로 그때 프로그래머는 제작사 혹은 세일즈사(해외배급사)에 연락을 취하여 <화양연화>를 '초청(Invitation)'하게 된다. 최근 여러 영화제에서 이루어지는 회고전과 같은 기획전도 이러한 방법을 통해 진행된다.
(*추후 각 영화제와 마켓들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져 해당 마켓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나..현생에 치여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
둘째, 배급사, 제작사 등이 직접 영화제 측에 출품한 작품들을 선정위원들이 검토 후 선정하게 되는 경우.
프로그래머가 모든 영화를 감상하고 초청하기란 쉽지 않다. 특히나 한 번에 300여 편 가까이 상영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칸 영화제 등과 같은 대형 영화제라면 말이다. 때문에 영화제들은 영화 창작자로부터 직접 영화제 출품(신청)을 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 매년 정확한 시기는 다르지만 대략 6개월 정도 전부터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출품 규정이 있는데, 바로 '프리미어' 규정이 그것이다. '프리미어'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최초 상영을 뜻하며, 더 넓게 확장하자면 다음과 같다.
- 인터내셔널 프리미어(International premiere) : 제작국가를 제외한 국가에서 최초 상영
- 월드 프리미어(World premiere) : 제작국가를 포함 전 세계 최초 상영
- 아시아 프리미어(Asia premiere):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 상영
- 유럽 프리미어(European premiere) : 유럽 지역에서 최초 상영
출품된 작품은 프로그래머 등 여러 선정위원의 검토를 거쳐 선정되게 되는데, 바로 이 선정과정에서 프리미어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 일종의 가산점을 받게 된다. 바로 이러한 연유로 한 해에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한 번에 수상이 힘든 것은 물론, 작품을 출품할 때에 일명 '영화제 플랜'을 잘 짜야하기도 한다. 모든 영화제에 무작정 다 출품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영화가 가장 빛날 수 있는 영화제를 잘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물론 칸영화제와 같이 큰 영화제는 선택의 여지없이, 선정되면 Go이지만 말이다)
물론 영화제에 선정되는 영화만이, 그리고 수상을 하게 되는 영화만이 좋은 영화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영화제가 좋은 영화를 조금이라도 더 많은 관객에게 소개하려고 하고 또 그러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수상을 하게 되는 영화의 경우 관객들이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음으로, 상을 받는 독립 및 예술영화가 하나라도 더 생기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이 프리미어 규정이 조금이나마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본다. 하나의 영화가 상과 관심을 독식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개의 영화들이 상과 관심을 나눠 소개되는 것. 그럼으로써 조금 더 다양한 영화계가 될 수 있는 길이 아닌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