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3대 영화마켓 - 홍콩필마트, 부산아시아마켓, 도쿄TIFFCOM
어느새 2020년의 끝이 코앞으로 다가 온 지금. 정말 코로나에게 한 해를 도둑맞은 한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스태프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던 대부분의 영화 현장들은 무기한 중단을 할 수밖에 없었고, 수많은 관객들이 찾아오던 영화제는 개최 중단 및 연기를 택하거나 온라인으로의 전환을 꾀하였다.
영화 마켓, 일명 필름마켓(Film market) 또한 마찬가지였다. 본격적인 글에 앞서 영화 마켓이 무엇인지 잠깐 설명하자면, 말 그대로 영화를 사고파는 시장을 말한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매년 코엑스에서 열리곤 하는 반려용품 or 육아용품 컨벤션을 떠올리면 쉽게 다가올 것이다. 수많은 용품 제작자들이 자신의 상품을 부스(booth)에 전시하고, 소비자는 전시회 장에 있는 부스를 살펴보며 제작자와 용품을 거래하는 것이다.
영화마켓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일즈사 혹은 제작사들은 영화(혹은 콘텐츠 IP)들의 포스터, 트레일러 등을 가져와 부스에 진열한다. 그리고 그 마켓에 참가하는 바이어들은 부스를 둘러보며 자신이 수입 혹은 제작하고 싶은 콘텐츠를 구입하러 다니는 곳이 바로 영화마켓이다. 차이점이라면, 일반 소비자가 아닌 영화제로부터 공증된 배지를 구입한 바이어(주로 영화계 관계자)라는 것과 거래되는 상품이 무형의 콘텐츠라는 것뿐이다.
필름마켓은 주로 영화제 기간과 맞물려 함께 개최되는데, 주요 필름마켓은 다음과 같다.
- 2월 EFM(European Film Market) in 독일, 베를린
- 4월 HK Filmart in 홍콩
- 5월 Cannes Film Market in 프랑스, 칸
- 10월 AFCM(Asian Contents & Film Market)* in 대한민국, 부산
*기존 AFM(Asian Film Market)에서 2020년부터 명칭 변경됨
- 11월 TIFFCOM in 일본, 도쿄
- 11월 AFM(American Film Market) in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
이외에도 수많은 필름마켓이 운영되고 있으며, 최근 Vuulr 등 온라인 전용 필름마켓도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많은 필름마켓들도 코로나의 영향을 피해 갈 수 없었다. 올해의 경우, 2월에 열린 EFM을 제외한 대부분의 필름마켓이 온라인 개최를 선택했다.
그중 후반부에 열린 아시아의 대표 필름마켓 3 곳: 홍콩 Filmart, 부산 AFCM, 도쿄 TIFFCOM을 비교해보고자 한다.
올해 홍콩 필마트는 코로나로 인해 연기되어 늦은 8월에 개최되었고, 비교적 온라인화가 빠른 시간 안에 진행된 느낌을 받았다. 아래는 홍콩 필마트 온라인 영화 마켓의 온라인 홈페이지 일부를 캡처한 것이다.
기존의 오프라인에서 진행되던 포럼 등 다양한 기획 프로그램을 실시간 생방송으로 진행하였으며, 해당 홈페이지의 계정을 부여받은 바이어와 전시자라면 누구나 참여하여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었다. 가장 관심이 갔던 포럼은 다름 아닌 프로덕션-파이낸셜 포럼이었다. 각 감독과 제작자가 기획개발 단계의 영화를 소개하여 투자자 및 파트너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피칭 형식의 포럼으로, 이번 홍콩마켓에서는 각 제작자가 사전의 제작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방식을 택했다. 제작자의 특성이 드러나는 다양한 편집 방식의 피칭을 볼 수 있었다. 혹자는 일반적인 PPT 방식을 취했던 반면, 다른 이들은 작은 롤 플레잉 형식으로 상황극을 연출하여 그들의 영화를 소개하였다. 그야말로 온라인에서만 볼 수 있었던 다양성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감독들에게 실시간으로 궁금했던 점을 물어볼 수 있는 현장감은 재현하기엔 아쉬움이 남는 포럼이었다.
다음으로는 영화 마켓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바이어 미팅'이다. 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손쉽게 이번 마켓에 참여한 전시자와 바이어의 기본정보(회사, 직함, 이메일 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기존의 영화제에서 발급해주는 실물 배지의 정보가 그대로 온라인에 등록된 셈이다. 그러나 기존 영화제의 배지 담당자가 검수를 통해 모든 정보가 기입되어야만 발급되었던 배지와는 달리, 이번 온라인 마켓의 정보의 경우 별다른 검수작업이 들어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름만 존재하여 연락처를 찾을 수 있는 경우가 있었고, 마켓 계정으로 메시지를 보내도 상대방이 이를 확인하지 않아 끝내 미팅이 이루어지지 않은 케이스가 생겼다.
하지만 긍정적인 점은 마켓 측에서 미팅 플랫폼을 무료로 제공해주었다는 것이다.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대부분의 온라인 마켓의 경우 연락처 등을 제공할 뿐 플랫폼 시스템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이로 인해 바이어와 전시자가 직접 줌(Zoom), 구글 미팅 등의 프로그램을 가입하여 세팅하여야 했다. 그러나 이번 홍콩 마켓의 경우 블루진(Bluejean)이라는 시스템을 제공하였다. 강제성은 없었지만, 마켓 전시자와 바이어에겐 무료로 블루진 유료계정이 한시적으로 제공되었고 자유롭게 미팅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독려하였다. 가령 무료 줌 계정에서 진행하기 힘든 1시간 이상의 미팅의 경우, 블루진을 이용하는 등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플랫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공해주었다. 대부분의 영화 마켓이 참가비를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일부나마 풀랫폼의 유료 계정을 제공한다는 점은 소비자의 시점으로 봤을 때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
다음으로는 아시아 최대의 영화제 중에 하나인 부산영화제와 함께 개최되는 '부산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ACFM)*'이다.
* 2020년부터 기존의 Asian Film Market(AFM)에서 Asian Contents & Film Market(ACFM)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영화와 더불어 드라마, IP 등 다양한 콘텐츠를 포괄하겠다는 포부가 엿보이는 명칭이다.
부산도 홍콩과 마찬가지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바이어와 전시자들이 직접 온라인으로 정보를 찾을 수 있고, 각종 포럼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였다. 아래는 한 전시자들의 홈페이지를 캡처한 것이다. 각 업체들이 자유롭게 홈페이지를 꾸밀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였고, 바이어들은 마치 전시자의 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것처럼 작품 등의 정보를 볼 수 있었다. 홍콩의 비해 전시자들의 정보가 잘 드러나도록 비교적 디자인이 잘 정리된 느낌이었고, 라인업의 개수도 제한이 없어 온라인의 장점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홍콩의 경우 홈페이지에 게시할 수 있는 라인업의 수가 한정되어 있었음.) 그러나 이것을 마켓의 부스로 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떨칠 수 없었다. 물론 자사 홈페이지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인디 영화사들의 경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자사 홈페이지를 보유하고 있던 영화사들에 대해선 이 혜택이 실효성이 있었을까.
바이어 미팅 역시 마찬가지이다. 올해 부산마켓의 포커스는 출판 IP였다. 마치 홍콩의 기획개발 포럼처럼, 부산도 세계 각지의 출판물을 선정하였고 이를 바이어들에게 소개할 수 있는 다양한 경로를 마련하였다. 그러나 이 외 영화, 드라마 등에 대해서는 어떨까. 홍콩과 달리 미팅 플랫폼을 제공하지도 않았기에, 바이어와 전시자들은 일일이 각 회사의 홈페이지를 들여다보고 그들의 연락처를 찾아야 했으며, 또 스스로 플랫폼을 세팅하여야 했다.
올해의 경우 부산마켓은 전시자와 바이어들에게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향후 해당 서비스를 기존의 마켓 배지처럼 유료화를 한다면, 과연 돈을 지불하면서 부산마켓에 참여하고 싶은 포인트가 무엇일지. 만약 참여한다면 그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실효성 있는 혜택이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도쿄국제영화제와 함께 개최되는, 아시아 마켓의 대미를 장식한 도쿄의 TIFFCOM이다. 보통 도쿄마켓의 경우 부산마켓과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었기에, 아시아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전시자와 바이어들의 경우 부산과 도쿄 중 1곳을 선택하여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물론 모두 참여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그러나 소요되는 비용을 고려하였을 때, 전문 세일즈사 등을 제외하고는 쉽지 않은 선택임은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쿄 마켓의 온라인화는 다른 마켓들의 비해 빠르게 결정되었고, 오랜 시간에 걸쳐 차근차근 준비되었다. 3개월 전부터 마켓 등록에서부터 정보 수집 등 기존의 영화제 진행과 비슷한 흐름에 맞춰 진행되었다.
가장 눈에 띄었던 점은 오프라인 전시회의 온라인 화이다. 다른 마켓들이 마켓의 기능의 온라인화에 집중한 것 같았다면, 도쿄마켓의 경우 오프라인의 전시회를 그대로 온라인으로 옮겨놓는 것을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중의 하나가 아래의 온라인 VR부스이다. 전시자들은 각 부스 벽면에 걸 포스터와 오른편 모니터에 재생될 영상을 선택하고 전달하여야 했다. 마치 실제 전시장에 온 것 같은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것이다.
(역시 포켓몬 GO의 나라인가...ㅎㅎㅎ)
하지만 도쿄마켓 역시 타 마켓처럼 해당 회사의 로고를 클릭하거나 검색해야지만 위의 부스를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은 아쉬운 점으로 작용했다. 개인적으로 오프라인 전시장의 묘미 중 하나는 지나치다 발견한 작품들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전시회장을 돌아다니며, 기존에 알지 못했던 영화의 포스터를 보고 매료되어 정보를 얻게 되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온라인 마켓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라는 아쉬움이 진하게 몰려올 때쯤, 우연히 좋은 예시를 발견하게 되었다. 바로 서울아트북페어 UE12 온라인 행사였다. 아래는 UE12의 온라인 홈페이지이다. 마치 현장에서 책이 무더기로 진열되어 있듯이, 책의 표지가 랜덤으로 홈페이지에 나타난다. 소비자는 포스터와 제목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그러나 정보가 없던 보물을 찾아 나서도록 유도한 것이다.
필름마켓도 이를 차용해, 포스터 더 나아가 트레일러를 무작위로 넣는 홈페이지를 일부 제작하여 바이어들의 눈길을 끄는 방향도 매력적이지 않을까 제안해본다.
지금까지 아시아의 3대 마켓이라고 할 수 있는 ①홍콩 필마트, ②부산ACFM, ③도쿄 TIFFCOM을 살펴보았다. 코로나라는 갑작스러운 변수임에도 불구하고, 각 마켓들은 촉박한 일정 속에 나름의 온라인 마켓을 진행하였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만약 이들이 포기하였다면, 전 세계의 영화사들이 소통할 수 있는 큰 창구가 막혀버리는 셈이니 말이다.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급작스럽게 준비하였던 온라인 마켓이었기에 허점이 많았던 만큼, 또 이를 만회하여 더 발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온라인 마켓에선 해결되기 힘든 큰 갈증이 존재한다. 바로 '신뢰성'의 문제이다. 큰돈이 오가는 시장이니 만큼 각 회사에 있어 신뢰성은 매우 중요하다. 세계 각지의 크고 작은 영화사들은 이 영화마켓에서 서로 안면을 트며 서로의 신뢰를 쌓아갔었다. 그러나 올해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영화사들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메일, 화상미팅 등의 비대면 방식이었다. 같은 나라의 기업끼리 대면 미팅을 진행하더라도 쉽게 쌓을 수 없는 것이 신뢰성인데, 과연 해외의 비즈니스 상대들을 비대면 방식을 통해 신뢰성을 쌓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더라도 매우 큰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 정보 수집과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온라인 마켓이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프라인 마켓이 그리운 이유는 바로 이 근본적인 것을 해결해줄 수 없을 것 같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이미 2021 홍콩필마트가 온라인 진행을 발표한 가운데, 내년의 마켓 추이는 어떻게 진행될 지. 한편으로는 궁금하기도, 한편으로는 걱정되는 마음이다. 부디 내년에는 다양한 형식의 마켓이, 그리고 영화제가 진행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