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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B Jan 01. 2024

퇴사하겠습니다.

2023년 12월 26일 화요일

"부장님, 저 퇴사하려고요."


이 회사에서 이 말을 내뱉기까지 4년이 넘게 흘렀다.


"지금이 아니면, 회사를 옮기기 쉽지 않을 것 같고 쉬지 못할 것 같아요."


퇴사를 결심한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서 대외적으로 말하기에 가장 좋은 말이었다.

거짓말은 아니다. 단지 그 아래에 수많은 생각과 마음들이 숨어있을 뿐.


나는 너무 지쳤다.

아프든 말든 매일 출퇴근을 반복하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도,

상사의 숨 막히는 메일을 확인하며 눈치를 보는 것도,

수시로 업무 연락을 확인해야 하는 것도,

야근도 주말근무도, 모든 것에 질렸다.


"한 두 달 쉬면서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머리를 식히려는 여행이 아니라, 텅 비어버린 나를 채우고 싶은 여행이다.


내가 좋아했던 모든 것들이 잿빛이 되었다.

달콤하고 설렜던 휴일도,

금요일마다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던 것도,

개운함과 활기를 주던 운동도,

조용하게 즐길 수 있던 전시도,

평생을 해도 좋을 것만 같던 연극도,

다 재미없다.


2023년 하반기 내내 퇴사를 고민했다.

결심이 선 이후에는, 1월 중 시기를 고민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까를 매일 생각했다.

요 근래 퇴사생각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며칠 미루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이르게 12월 말에 얘기를 했다.


내 인생의 고작 두 번째 퇴사 결정이라서, 퇴사를 말하는 것도 꽤나 긴장했다.

하지만 의외로 부장님은 따뜻하게 받아주셨다.


"저도 해본 생각이기 때문에 너무 이해해요.
그래서 잡지 않는 거니깐, 섭섭해하지 말아요."


나의 퇴사 소식에 눈물짓는 분도 계셨다.


"미안해요."


그동안 본인이 챙겨주지 못해서 친해지지 못한 것 같다고, 그것이 미안하다고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분의 예상치 못한 반응이라서, 놀라웠다. 그리고 나도 눈물이 났다.

몰랐는데, 내가 회사 생활을 생각보다 잘했나 보다.

내가 퇴사한다고 우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사람 관계도, 사람의 마음도 참 알 수 없는 거구나.


"울지 마세요. 저는 내일도 출근해요."


이 날은 무미건조하던 다른 날과 달리 코 끝이 찡한 퇴근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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