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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머스썸머 Apr 29. 2018

지지 않는다는 말 / 김연수

나는 무엇에 지지 않으려는걸까

2012년 여름, 휴학 없이 다녀온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인 백수 생활이 시작된 무더운 날들이었다.

당시 나의 대외적인 직함은 공무원 준비생으로 혼자 타지에서 밥해먹으면서 공부하는 것보다 집에 내려와 뜨신 밥 먹으며 공부에만 집중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부모님의 제안에 못이겨 겨우 떠나 온 둥지에 제 발로 돌아온 스물 셋 대졸자였다.

*당시 나는 공무원이 되고 싶은 생각은 물론 따뜻한 밥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생활비를 지원받을 염치, 아르바이트로 하루의 1/3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제 와 하는 얘기지만 정말 엄마는 밥만 해둘 뿐이었다.


주로 오후 6시가 되어야 달리기를 시작한다는 부분을 읽다가 문득 그 해 여름이 떠올랐다.

집에 내려와 편히 공부하라던 아빠의 인내심은 유통기한이 6개월에 불과했다는걸 알게 되었을즈음, 나는 본능적으로 부모님과의 타임라인이 최대한 겹치지 않는 일과를 만들고 있었다.

오전 10시 무렵 일어나 아침을 차려 먹고는 밤새 세상은 별고 없었는지 기사들을(대체로 스포츠면에 머물렀지만) 확인하고, 씻고 도서관으로 출근하면 오후 1시 무렵. 언제든 자리가 넉넉하던 도서관이었는데 학생들의 방학이 시작되면서 오후 1시에 오는 게으른 나를 위한 자리는 하나도 없게 되었다.

하는 수 없이(결코 이 일과를 포기할 수 없다.) 자료실의 널찍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였을거다. 서서히 십진분류표를 외우게 되고, 신간이 들어오면 앞표지부터 뒷표지까지 책배를 시원하게 훑어보는 의식을 하게된 것이.


<지지 않는다는 말>을 처음 읽게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 때에도 김연수 작가는 810번대의 국내문학 코너에서 한 컬렉션을 담당하고 있었지만 어쩐지 나는 그의 성실하고 맑은 이야기들을 지루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좀 더 솔직하게는 새로 나온 이 에세이도 제목부터가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으려는 것만 같고, 내내 성실하게 사는 삶을 이야기할 것만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스스로를 (사회인이 되지 못하고 부모님댁으로 리턴한) 루저라는 생각에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고, 책 속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자극적이거나 극단적이거나 또 아니면 장르가 분명한 책들에게서만 재미를 찾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후 그의 소설을 몇 권 읽으며 '자극적이지 않은 문장으로도 충분히 재미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느끼고, 지난 해 10월 그리고 올해 4월 작가의 강연을 찾아 갈만큼 좋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어째서 이 책을 다시 집어들 생각은 못하고 있을 때, 독서모임의 첫 책으로 (심지어 독후감도 써야한대!) 다시 만나게 된 것은 지금의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는 생각을 품고 다시 읽어봤다.


독후감이라는 과제를 안고 백지를 마주하게 되면 으레 처음 생각이 가닿는 것은 책의 제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가 있거나 혹은 단편소설 쯤이라도 되면 책 속의 이야기를 통해 운을 띄우기나 수월하겠지만 이번처럼 산문집을 앞에 두고 있으려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고민하다 한참을 제목만 들여다보게 된다. (나만 그런가?)

해서 공연히 질문을 하나 던져보기로 했다.


"지지 않는다는 말은 무엇일까?"

여기에 저자는 친절하게도 앞머리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만의 답을 주었다.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이어 책장을 넘기는 동안 많은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결에 비추어 또 하나의 질문을 해본다.


"나는 무엇에 지지 않으려는걸까?"

나는 타인 앞에서 내 감정에 솔직해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해왔다.

청소년기를 사소한 일탈 한 번 없이 보내오면서 나는 무던한 척, 동요하지 않는 척, 그래서 무언가를 열심히 하지도 않는 척(음 이건 척이 아닌가.) 하며 반대로 아주 긴 사춘기를 보내온 것 같다.

이성적이고 때론 냉소적인 사람에 비해 감정에 솔직한 사람들을 어린/철없는 사람으로 낮춰보며 결국 감정에 솔직하면 지고 말거라는 이상한(?) 이분법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지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들이 무엇이었느냐 하면 <친구들과 같이 영화보면서 슬펐지만 눈물 꾹꾹 참은 것>, <수능 성적표 받고 시험 다시 치고 싶었지만 그럭저럭 만족하는 척 대학에 간 것>, <좋아했던 오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에 심장이 깨지는 듯 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한 것> 등.


'몰아치는 바람 앞에서도 아무 일이 없다는 듯이 꼿꼿하게 서 있다면, 그건 마음이 병든 나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매순간 달라지는 세계에서는 우리 역시 변할 때 가장 건강하다. 단단할 때가 아니라 여릴 때.

가장 건강한 마음이란 쉽게 상처받는 마음이다. 세상의 기쁨과 고통에 민감할 때, 우리는 가장 건강하다.'

                                                                                                                                                       p.41


글을 시작하며 이야기 했던 2012년-13년은 스물 아홉 인생에서 가장 지난하고, 지질하고, 지루했던 시기였다. 같은 트랙 위에 경쟁하고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건지(있다면 누구인지)조차 모르면서 지지 않으려는 마음만 가득해서는 그저 앞으로 뛰어가기에 바빴다.

하지만 도서관 책장 사이를 걸으며 '돈 생각 없이 책 살 수 있는 날이 올까' 했던 내가 택배 상자를 뜯기도 전에 새 책을 주문하고 있는 내가 되어서도 지난,지질,지루한 일들은 계속 있다. 살아있는 한 앞으로도 계속 있을 거다.

다만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건 아니라고,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한 것이 지는 걸 뜻하는 것도 아니라는 두 가지만 기억하면 지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잊을 수 없도록 지금 이 순간을 더 많이 지켜보고 더 많이 귀를 기울이고 더 많이 맛보아야만 한다. 그게 바로 아침의 미명 속에서도 우리가 달리는 이유다. 그게 바로 때로 힘들고 지친다고 해도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심장이 뛰고 있다면, 그건 당신이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 삶을 마음껏 누리는 게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이고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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