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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머스썸머 Mar 09. 2020

불안의 서 / 페르난두 페소아

포르투갈로의 여행 준비를 하기 전까지는 그의 이름도, 존재도 몰랐다.

그저 포르투갈 작가 누구 없나, 긴 여행에 함께할만한 두께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으로 e-book에 담은 것이 <불안의 서> 무려 750페이지에 달한다.


결제를 하고, 아이패드에 저장을 하면서도 '이거 300페이지나 읽으면 선방이겠다' 했던 책이 인생에 단 한권의 책이 될 거라는 것도 그 때는 몰랐다.


2년 전부터 메모해왔던 걸 이제서야 올려둔다. 그의 서랍 트렁크가 발견되었던 것처럼.



p.12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이 여인숙에 머물며 기다려야만하니 감옥으로 여길 수도 있겠고, 여기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으니 사교장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참을성 없는 사람도 평범한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 여인숙을 감옥으로 여기는 건 잠들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방안에 누워있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사교장으로 여기는 건 음악 소리와 말소리가 편안하게 들려오는 저쪽 거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넘긴다. 나는 문가에 앉아 바깥 풍경의 색채와 소리로 눈과 귀를 적시며 마차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만든 유랑의 노래를 천천히 부른다.

 언젠가 우리 모두에게 밤이 오고 마차가 도착하리라. 나에게 주어진 산들바람을 즐기고, 그렇게 즐길 수 있도록 주어진 내영혼을 즐길 뿐 더이상 묻지도 찾지도 않는다. 내가 여행객들의 책에 적은 글을 언젠가 다른 이들이 읽고 나처럼 경치를 감상하며 즐거워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만약 아무도 읽지 않거나 읽었으나 누구 하나 즐거워하지 않는다 해도 무방하다.


1. 일요일밤 침대에 누워있으면 죽음의 이미지가 가까워진다. 특정한 장면이 떠오르는 것도 아닌, 그저 어둠 속에서 더욱 어두운 그림자에게서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을 혼자 마주할 때의 서늘함. 두꺼운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도 좀체 포근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2. 이것을 두고 페소아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는 표현으로 죽음과 삶을 정의한다. 


p.13

여름날 긴긴 저녁 도심의 고요를, 특히 하루의 가장 북적이는 시간과 대조를 이루어 더욱 고요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사랑한다.


p.16

언제나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적막한 내 방에서 홀로 서글픈 심정으로 글을 쓴다. 그리고 정말 보잘것없어 보이는 나의 목소리가 혹시라도 수많은 목소리들의 본질, 수많은 삶들이 열망하는 자기표현, 그리고 일상에 매인 운명, 부질없는 꿈과 가능성 없는 희망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수많은 영혼들의 인내심을 담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나의 심장은 힘차게 고동친다. 삶이 고양될 때면 더욱더 강렬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

p.23

내가 쓰는 글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나의 글 덕분에 상처받은 슬픈 영혼이 잠시 시름을 잊을 수도 있으리라. 그것으로 충분하고, 혹시 충분하지 않다 해도 나름의 가치가 있다. 인생사 모든 것이 다 그러하듯.


1. 이 책은 그의 사후에 트렁크 속에서 발견된 메모들을 재구성/편집하여 출간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최대한 결을 맞추어 순서대로 편집했겠지만 계속 읽다보면 중첩되는 내용도 많고, 자기복제에 가까운 표현들이 반복되기도 한다. 또 내 생각에는 편집의 순서가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고. 이 페이지는 책의 앞 부분에 나오지만 이후 100여 페이지가 지나서 '생전에 책을 출판하는 일'에 대한 그의 주장과 맞닿기도 한다. 그리고 그의 생전에는 이 메모들이 세상에 나오지 않은 덕분에 지독하게 솔직해보이면서도 언젠가(사후?) 세상에 발견될 것을 염두에 둔 것인지 그만큼 솔직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마저 읽는 이로 하여금 눈치채도록 한 것이 그의 진심인가 하여 이상하게 귀여움을 느낀다. 특히 중국/여행에 대해 쓴 부분에서 잘 알 수 있다.

2. 그래서 이 부분은 결국 남의 인생에 참견하고 싶은 니즈가 전혀 없다는 그의 이야기와 배치된다. 무려 이를 통해 더욱더 강렬하게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하니까.


p.25

글쓰기는 나를 그들과 구별짓는 하나의 행위, 하나의 현실이다. 그러나 내 영혼 안에서 나는 그들과 다를 게 없다.


p.31

문학이란 예술과 사상의 결합이며 현실의 흠을 덜어낸 결과로,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루어야 하는 목표다. 그 아름다운 날을 미사여구로 꾸민 기억 안에 잘 보존하여 순식간에 흘러가버리는 저 공허한 세상의 들판과 하늘에서 새로운 꽃과 별로 빛나게 하자.

수많은 근본적인 생각과 정말로 형이상학적인 주제에 대해 할말이 너무 많은 지금, 갑자기 피곤이 밀려오니 더이상 쓰거나 생각하지 않으련다. 말하고 싶다는 열의에 잠이 쏟아지고, 눈을 감고 내가 말할 수도 있었던 모든 것을 고양이 쓰다듬듯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p.33

행복을 느낄 만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이, 정체를 알기 힘들지만 어쩌면 고상한 욕망이 나를 압도했다. 어쩌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을 거부하는 밤이 만들어낸 추상적이고 발가벗은 우주만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반쯤은 피곤하고 반쯤은 불안한 상태로 사물의 신비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이해에 도달했음을 몸으로 느낀다. 이럴 때면 나의 정신은 천천히 희미해지고, 아무 형태도 없는 이상의 조각들이 의식의 표면에서 떠다니고, 불면의 얇은 막 안에서 회계장부를 작성하느라 허우적댄다. 또 어떤 때는 나를 붙잡았던 반수면 상태에서 깨어나는 동안 시적이고 종잡을 수 없는 색깔을 한 애매모호한 이미지들이 망연해하는 내 앞에서 소리도 없이 장관을 펼쳐놓기도 한다. 나의 눈은 완전히 감기지 않은 상태다. 이 불면에서 벗어나 정말로 잠들 수 있는 밤의 해변가에 밀려왔다 밀려가는 드넓은 바다의 파도가 된다면!


1. 그렇지만 그도 불면과 불안을 겪고 있는 사람이다. 마음이 아프다.


p.37

불현듯 다가온 초가을에는 앞당겨 일어나는 사건처럼 어둠이 빨리 내려앉기 때문에, 마치 하루 일과가 더 늦게 끝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럴 때면 나는 날이 어두워지고 있으니 곧 일이 끝날 거라는 기대감을 일하는 도중에도 즐긴다. 어둠은 밤이고 밤은 곧 휴식, 귀가, 자유를 의미하니까.


1. 정말 서유럽의 여름밤은 밤 9시가 넘도록 해가 지지 않았다. 내가 갔던 5월 중순에도 일몰시작이 9시 즈음, 완전히 해가 넘어가려면 밤 10시나 되어야 했다.

2. 역시 직장인 마음은 직장인이 제일 잘 안다. 그도 이 글을 쓰면서 낮에는 월급쟁이로 살고 있었다.


p.41

한 구석에 던져진 물건 같고, 길에 떨어진 넝마쪽 같은 천덕스러운 존재인 내가 삶 앞에서 그렇지 않은 척한다.

모든 사람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그들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은 모든 불가능한 것들 중에서 가장 불가능하게 여겨지므로 날마다 열망하는 것이고, 슬픈 순간마다 체념하는 것이다.

자신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낄 때 그 느낌을 표현하기란 어려운 일이고, 나는 영혼이 독립적인 실체라는 것을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상에 태어나 의식을 갖게 된 이후로 참으로 오랫동안 나는 내가 아닌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 갑자기 다리 한가운데서 깨어나 강물을 굽어보며 그 어떤 순간보다 내가 확실히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p.43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때때로 죽음의 예감이 스치고 지나갈 때가 있다.



p.44

그렇다면 우리가 죽음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죽음의 불가사의함이야 어차피 내가 꿰뚫어볼 수 없으니 그만두고, 삶이 멈출 때 육신의 감각이 궁금하다. 인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어렴풋이 두려워할 뿐이다. 보통 사람들은 삶의 전투를 잘 이어간다. 그러다 늙거나 병들면 자신이 심연이라고 인정한 무의 심연을 두려워하며 거의 쳐다보지 않는다. 이 모두가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다. 특히 죽음이 일종의 잠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재고의 가치가 없다. 죽음은 잠과 닮은 점이라곤 전혀 없는데 왜 그런 말을 할까? 잠의 핵심은 깨어나는 데 있으나 알다시피 죽음은 그렇지 않다. 만일 죽음이 잠과 비슷하다면 죽음에서 깨어난다는 개념도 있어야 한다. 죽음은 우리가 아는 무엇과도 닮지 않았는데, 어느 누구도 죽음이나 죽음과 비교할 만한 것을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을 볼 때마다 나는 죽음이란 길을 떠나는 일 같다고 생각한다. 시체는 그가 떠나면서 남긴 옷과도 같다. 누군가 떠났고 그동안 입고 있던 유일한 겉옷은 그에게 더이상 필요가 없었다.


1. 불안으로 잠들기 어려운 밤(오늘밤은 잠들 수 있을까), 누군가 깨어있었으면 하는 헛된 바람을 가져왔다. 넓고 넓은 우주 한 가운데 혼자 있는 기분이 고통스러워서. 앞으로는 차라리 이 페이지를 펼쳐보자.


p.45

이제와 깨닫거니와 때로는 행복했고 때로는 만족스러웠던 모든 순간마다 나는 항상 슬펐다.


p.46

무기력을 나는 일종의 위생관념의 결여라고 이해할 수 밖에 없다. 몸을 씻듯 운명도 씻겨주고, 옷을 갈아입듯 삶도 갈아줘야 한다.

나 같은 운명적인 돼지들은 자신의 무기력에 깊이 매료되어 일상의 진부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나는 머물러 있는데 홀로 앞으로 나아가는 내 운명을 거닐게 하고, 나는 따라가지 않는데 홀로 흘러가는 내 시간을 거닐게 한다. 나의 지루함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은 지루함에 대한 짧은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p.53

형체없는 권태가 숨통을 조인다.

나는 그라사 또는 상 페드로 드 알칸다라에서 달빛 아래 고요한 도시의 불규칙적이고 장엄한 풍광을 내려다볼 때만큼의 감동을, 들판이나 자연을 볼 때에는 느끼지 못한다. 나는 햇빛 눈부신 리스본 거리의 다채로운 꽃들만큼 아름다운 꽃을 본 적이 없다.


p.58

나처럼 인간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런 유혹을 비웃는 사람마저도, 유명인사가 된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승리를 거두는 건 얼마나 찬란한 일인가를 종종 생각해본다.


p.59

솔직하고 당당하게 고백한다... 샤토브리앙의 문장들은 종종 내 생각을 그대로 목소리로 옮겨놓은 것 같고, 라마트린의 시구들은 종종 나의 자기 인식을 위해 쓰인 것 같아서 되풀이해 읽었다.

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요한 대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의 비탈길이다.


p.60

독서로 자유를 얻는다. 독서로 객관성을 획득한다. 나는 내가 되기를 멈추고, 산만하게 흩어져있는 존재가 되기를 그만둔다. 내가 읽는 것은 때로 나를 짓누르는 보이지 않는 의복 같은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뚜렷하게 드러내는 명료함이고, 만물을 비추는 태양이고, 고요한 대지에 그림자를 드리운 달이고, 바다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이고, 녹색 이파리를 흔드는 나무의 견고함이고, 농장 연못에 깃든 평화이고, 포도나무 덩굴이 우거진 해안의 비탈길이다.


p.67

자신의 삶을 어느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는 이는 축복받은 자다.



p.77

샤토브리앙과 비에이라 중에서 한 작가의 책만 읽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비에이라를 선택할 것이다.


1. 내 평생에 남은 날들 중 한 권만 읽어야 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책을 선택할 것이다.


p.79

나는 인생에서 위안을 얻지 못하기에 이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위안으로 삼는다. 그리고 테주 강으로 향하는 이 저지대의 거리를 걸어가는 육체와 영혼의 방랑자인 내가, 이미 기울어버린 태양의 다채로운 빛을 받아 다른 세상의 영광처럼 찬란히 빛나는 도시의 높은 곳들을 바라볼 때, 상징은 현실과 하나가 된다.


p.80

아, 나의 고향 리스본!


1. 네, 고작 나흘 머물렀지만 나의 리스본이라 부르고 싶은 그런 곳.


p.81

가끔 나는 자의식에 대한 지리학이 발달할 미래의 가능성을 놓고 흥미로운 생각에 잠긴다. 언젠가는 자신의 감각을 연구하는 미래의 역사가들이 자의식에 대해 취하는 행동을 토대로 정밀한 과학을 와ㅏㄴ성할 수 있을거라고 믿는다. (중략) 이 내면의 공간은 또다른 새로운 차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아마 언젠가는 과학적인 연구로, 모든 것은 같은 공간의 다른 차원일 뿐이고, 따라서 온전히 육체적이거나 정신적은 것은 없고, 우리는 어떤 차원에서는 육체로 살고 어떤 차원에서는 정신으로 산다는 것을 밝혀낼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어딘가 다른 차원이 있어 지금 여기와는 다른 삶을, 여기와 똑같이 현실로 인식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p.82

부드러울수록 애무가 아닌 것 같은 애매모호한 어떤 손길이 변덕스러운 오후의 바람이 되어 내 이마와 이성을 향해 불어오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하는 이 권태감이, 상처를 긁지 않도록 막아주는 옷처럼 그래도 한순간이나마 위안을 준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1. 페소아는 평생 모쏠이었다고 알고 있는데.


p.89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내게도 글쓰는 체계와 규칙을 세우고 싶다는 비뚤어진 욕구가 있다. 사실 체계와 규칙을 두기 전부터 글을 써왔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략)

첫째, 느끼는 것을 말할 때는 정확히 느낀 대로 쓴다. 분명하다면 분명하게, 모호하다면 모호하게, 혼란스럽다면 혼란스럽게 쓴다. 둘째 문법은 도구일 뿐, 법칙이 아님을 명심한다. (중략)

이렇게 문법을 초월한 승리자로서 "나를 존재시킨다"고 말하리라. 이 짧은 두 마디 안에 나의 철학을 구현했다. 마흔 개의 문장을 써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철학과 언어학에 더이상 무엇을 요구하겠는가?

자신이 느끼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는 사람은 문법에 복종하라. 자신의 표현을 좌우할 수 있는 자는 문법을 이용하라.

p.93

엎드려 울 수 있는 무릎, 거대하고 형체가 없고 한여름 밤처럼 드넓은, 그러면서도 아늑하고 따뜻하고 여성스러운, 어느 난롯불 옆의 무릎... 생각할 수 없는 것들과, 뭔지 모를 실패와,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일으키는 안타까움과,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소름 끼칠 정도로 엄청난 의심을 떠올리며 그 무릎에 기대어 울어봤으면....


나의 인위적인 생각들을 깨끗이 없애고 지혜를 다 모으고 애정을 담아서, 입맞추고 싶도록 소중한 장난감인 단어와 이미지와 문장 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으면 나는 크고 슬픈 방, 심오하도록 슬픈 방에서 철저히 혼자이고 너무나 작고 나약한 존재가 된다!....


나의 비참함을 끌고 다니는 이 거리들, 웅크리고 앉아 누더기 사이로 파고드는 차가운 밤바람을 맞는 계단들, 이 모든 것은 언제 끝나려나? 언젠가는 신이 나를 찾아와서 그의 집으로 데려가 따뜻하게 안아주고 사랑을 베풀어주려나.... 가끔 그런 생각을 하며 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에 겨워 운다... 하지만 이 거리에 찬 바람이 불어오고 낙엽이 길 위에 떨어지는데.... 눈을 들어 아무 의미도 없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본다..... 결국 나는 다시 홀로 남아, 어떤 '사랑'도 나를 데려가 양자로 삼아주지 않고 그 어떤 '우정'도 나와 놀아주지 않는, 가련한 버려진 어린아이가 된다.

너무나 춥다. 버려진 나는 너무나 피로하다. '바람'이여, 내 어머니를 찾아다오. 이 '밤'에 내가 모르는 집으로 나를 데려가다오... 거대한 '침묵'이여, 나의 유모와 나의 요람과 나를 재우던 자장가를 돌려다오.....


p.97

사랑에 바랐던 것은 언제나 머나먼 꿈으로 있어달라는 것뿐이었다.


p.105

내가 바로 그런 순간을 겪고 있다. 나는 적어도 살아 있기는 한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처럼 이 글을 쓰고 있다.

산다는 것은 물질의 형이상학적 실수 같고, 무기력이 저지르는 실수 같다.


p.110

오늘날 월등하게 지성적인 인간에게 남은 유일한 행로는 포기하는 것이다.


p.111

천재든 거지든 자신이 원한느 걸 모른다면 똑같은 무능력자다. 나는 결국 회계사무원에 불과한데, 나 자신을 천재라고 소개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

행동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다. 나는 무엇이든 원하는 존재가 될수 있지만 그러려면 뭔가를 원해야 한다. 성공은 성공하는 것이지 성공할 조건을 갖추는 게 아니다. 넓은 땅이라면 어디든 궁궐을 세울 수 있지만 궁궐이 지어지기 전엔 아무것도 아니다.


p.115


누구나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 나는 존재 자체에 깊이 도취돼 있다.


p.115

낭만적 사랑이란 영혼과 상상력이 만든 옷이며 우연히 나타난 사람에게 입혀놓고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 옷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p.118

우리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불가사의한 것이 되도록 꾸려가기.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와 가까이 있는, 우리를 잘 아는 사람이 우리를 더 모르게 하기. 나는 그렇게 내 인생의 형상을 만들었다.


p.119

글을 쓴다는 것은 잊는 것이다. 문학은 인생을 무시하는 가장 유쾌한 방식이다.


p.121

<아미엘의 일기>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픈 것은 나 자신 때문이다.

아미엘이 친구 셰레가 영혼의 열매를 '의식에 대한 의식'이라고 묘사했다고 기술한 대목을 읽었을 때, 그것은 바로 내영혼에 대한 언급 같았다.


p.123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만 해도 멀미가 난다.

나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을 이미 다 보았다.

나는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들을 이미 다 보았다.


풍경은 반복된다. 기차를 타고 짧은 나들이에 나선 나는 바깥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재미있어했을 책을 멍하니 들여다보는 일을 불안스럽게 헛되이 반복하고 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어렴풋이 멀미가 나고 움직이면 상태가 악화된다.


여행은 느낄 줄 모르는 이들이나 하는 것이다.


p.126

병적인 감성을 지닌 항해자인 우리는 이렇게 말하리라. 인생을 살 필요는 없으며 느낄 필요만 있다.


p.129

분개하지 않는다. 분개는 힘 있는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체념하지 않는다. 체념은 고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침묵하지 않는다. 침묵은 위대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나는 힘 있는 자도, 고귀한 자도, 위대한 자도 아니다. 나는 고통스러워하고 꿈을 꾸는 사람이다. 나는 나약한 자라서 그저 불평만 한다. 나는 예술가라서 나의 불평으로 노래를 만들며 놀고, 내 꿈들을 더 아름다워보이도록 배열하며 논다.


p.131

설문지의 괄호 안을 나의 지적 성장에 문학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준 인물로 채워야 한다면 당연히 세자리우 베르드부터 시작하겠지만,


p.137

여행은 무엇이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석양은 그저 석양일 뿐인데 그것을 보러 콘스탄티노플까지 갈 필요는 없다. 여행을 하면 자유를 느낄 수 있다고? 나는 리스본을 떠나 벤피카에만 가도 자유를 느낀다.


p.139

이따금 완화시킬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지독한 삶의 피로가 감각 한가운데로 갑작스럽게 솟구쳐오를 때가 있다. 그 피로를 치료하기 위한 방법 중 자살은 효과가 의심스럽고, 자연스러운 죽음은 그것이 의식의 종말을 의미한다 할지라도 충분하지 않다. 이런 피로가 몰려오면 삶의 중단(가능할 수도 있고 불가능할 수도 있다)보다 더 무섭고 심오한 것을 원하게 된다. 즉 처음부터 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기를 원하게 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p.141

나는 이루어질 리 만무하고 특별한 일을 꿈꾸는 사람들보다 접근 가능하고 합리적이고 이루어질 법한 일을 꿈꾸는 이들이 더 딱하다.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들은 좀 미쳐 있기 때문에 자기가 꿈꾸는 것을 믿으며 행복해한다. 아니면 그들은 단순이 몽상가라 영혼의 음악 같은 공상이 별 의미 없이 그들을 달래준다. 하지만 가능한 것을 꿈꾸는 이들은 진짜 환멸을 느낄 가능성이 다분하다. 로마 황제가 될 수 없는 건 크게 실망할 일이 아니지만, 매일 아침 아홉시경 거리에서 마주치는 재봉사 아가씨에게 한 번도 말을 걸지 못한느 일은 나를 비참하게 만든다. 불가능한 꿈은 처음부터 우리의 접근을 막지만, 가능한 꿈은 우리 삶에 개입하고 그 꿈을 이루려는 방향으로 삶을 진행시킨다.


p.145

그러나 나는, 이 덧없는 삶에서 아무것도 아닌 나는, 실제로 글을 쓰고 있기에 먼 훗날 내 글이 읽히리라 상상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1. 네, 그렇게 되었습니다(2018).


p.153

더이상 잘 쓸 수도 없으면서 왜 나는 글을 쓰는가? 글을 씀으로써 지금보다 더욱 열등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쓸 수 있는 것을 쓰지 않는다면 무엇이 남을까? 뭔가를 이루려 하는 나는 열망에 찬 평민이다.

그렇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상실이기에 다들 스스로를 잃어버리며 산다. 그러나 나는 아무런 기쁨 없이 나를 잃어버린다.


p.159

만일 내 안의 모든 예술성을 한데 모은 위대한 표현력이 허락된다면 잠을 숭배하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인생을 통틀어 잠자는 행복보다 더 큰 쾌락을 알지 못한다.


p.166

나는 겁을 먹은 채 삶을 증오하고, 매혹에 빠진 채 죽음을 두려워한다.

나는 뭔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무none가 두렵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 동시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none가 두렵다. 마치 거기에 끔찍한 공포와 공허가 뒤섞여 있는 것처럼, 나의 영혼과 육체의 영원한 호흡이 관 안에서 멈춰버리는 것처럼, 그 안에 불멸성이 갇혀 산산조각나는 것처럼 두렵다.


p.167

지금까지 쓴 모든 글을 한 문장, 한 문장씩 천천히 맑은 정신으로 다시 읽는다. 그러면서 전부 다 헛소리이고, 차라리 쓰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p.170

리스본을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사람이 전차를 타고 벤피카까지 간다면 마치 무한대로 가는 여행처럼 느낄 테고, 어쩌다 신트라까지 가는 날에는 화성에라도 가는 기분일 것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여행자는 길을 떠나 5천 마일 이상을 가면 새로운 것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는데, 항상 새로운 것만 마주치기 때문이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새로운 것이 계속되는 일상의 일부가 되고, 두번째로 발견한 새로움 이후에는 새로움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바다에 빠지고 만다.

존재가 단조롭지 않도록 존재를 단조롭게 만들자. 지극히 무미건조한 것들로 일상을 채워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재미나게 하자.

나는 아무것도 아니므로, 모든 것이 되는 상상을 할 수 있다.


p.176

우리는 죽음이다. 우리가 삶이라고 여기는 것은 실제 삶의 잠이고, 진정으로 우리인 것의 죽음이다. 죽은 자들은 태어나는 것이지 죽는 게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우리는 죽은 것이다. 우리가 죽을 때 삶이 시작된다.


p.178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나는 지금의 모든 걸 그리워하게 될 미래가 그립다.


p.186

일과를 행하는 시간이 족므이라도 바뀌면 영혼은 차가운 신선함과 더불어 약간은 불편한 쾌감을 감지한다. 매일 여섯시에 퇴근하던 사람이 어쩌다 다섯시에 직장을 나서면 정신적인 여유를 경험하는 동시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안타까움 비슷한 걸 느끼기 마련이다.


때때로 나는 서글프면서도 기쁜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언젠가 내가 더이상 살아 있지 않은 미래에,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들이 찬사를 받는 날이 오고, 마침내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진정한 가족들 사이에서 태어나 사랑받을 수 있을거라고. 하지만 그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기 한참 전에 나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죽은 자가 살았을 때 겪었던 냉대를 애정이 보상해줄 수 없을 때, 나는 단지 우표 속 초상으로 이해될 것이다.



아 이미 너무 길어져버렸다. 남은 500여 페이지와 그 그사이의 메모는 또 언젠가 이어서 쓰기로 한다.


리스본의 벨렘수도원. 페소아가 잠들어 있는 곳.
Fx Factory에 있던 큰 서점에서. 페소아를 리스본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의 글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무척 인상적인 독서모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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