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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써머스썸머 Jan 03. 2021

2일차) 올해의 가장 큰 변화

인생은 고기서 고기라지만

올해 2월의 어느 날이었던 것 같다. 약속시간보다 좀 일찍 도착해 근처 서점에서 책을 좀 구경하다 <아무튼, 비건>을 집어들었던 것이.


지난해 모 주간지에서 몇 주간 '음식물쓰레기-사료-축산환경'을 다룬 르포를 꽤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나서 일단 책을 계산하고 나왔다. 그리고 남자친구를 만나 그 날 저녁 삼겹살을 먹었다. 올해 마지막으로 먹었던 그 돼지고기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맛있었다. 음, 맛있었던 것 같다.

올해 내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라면 역시 그 날 이후 고기가 올라간 식탁과 멀어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녁을 맛있게 잘 먹고 돌아와서는 가방에 있던 책을 꺼내 읽다 덜컥,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수단  자체로 태어나 마지막 순간까지 고통을 느끼다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한때는 영혼을 가졌던 존재를 먹는 ' 과연  몸에 좋은 에너지/기운을 채워줄  있을까 하는 다소 미신스러운 의문이 들었다. 물론 영양소 측면에서 적절한 동물성 단백질 섭취의 중요성은 너무  알고 있지만.

사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유 모를 거부감에 소고기를 먹지 않았던터라(새로 알게되는 사람들마다 이유를 물어보시니 정말 마땅한 이유랄게 없어서 "아 제가 힌두교 모태신앙이라.. 호호 놀라시긴, 농담이에요."하고 눙치는 일에는 이제 이골이 났습니다.) 어쩌다 시작된 이 채식생활도 그저 소고기 편식의 연장선 정도로 생각했었다. 특히 책에서 읽은 동물권,환경보호,건강 등 채식의 주된 이유들이 내게는 어쩐지 소명의식처럼 느껴져서 자신이 없기도 했고.


"친구들, 나 요즘 고기가 좀 안 내키네. 오늘 메뉴는 회 아니면 파스타 어때?"

그렇게 점심 약속은 '파스타-칼국수-텐동'이, 저녁 약속은 어류 아니면 갑각류의 루틴이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가 길어진 덕분에(?) 집밥을 먹을 일이 많아지니 점점 다양한 (고기 없는)메뉴를 만들기에 이르렀고..


고기가 먹고싶다는 생각은 아직 들지 않지만(한번도 안 들었던 건 아니다.) 언제든 마음이 내키면 다시 먹겠다고, 그렇게 10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은 주변 사람들을 점점 불편하게 만드는 것 때문에 좀 고민스러운 상황이다. 특히 올해 두 명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떠나보내)는동안 가까운 사이에서의 식성/식단 이슈는 결코 가벼이 볼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되었는데 이 얘길 하자면 일단 냉장고에서 맥주를 좀 꺼내와야할 것 같으니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아, 그래서 이 변화가 마음에 드냐하면 앞서 말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만 빼면 꼭 마음에 든다고 하겠다. 소화불량이 사라졌고, 지금까지는 내 손으로 사본 적 없던 채소,해산물 등에서 미식의 즐거움이 +100쯤 된 것 같으니까.

올해 외식 중 가장 맛있었던 곤지암의 보리밥집. 청국장이 이렇게 맛있는 것이었냐고 다섯번쯤 물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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