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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비닷컴 Mar 10. 2021

나 무섭단 말이야

“저는 방에 숨었고, 남편이 발로 문을 차면서 열라고 했어요. 순간, 저는 기절했고, 이후는 기억나지 않아요.” 


 


G는 결혼 5년 차, 서른여덟 살의 여성이다. 결혼 1년 후부터 남편의 폭력적인 행동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수건, 휴지 같이 깨지지 않는 물건을 던졌다. 물건은 점점 무거운 것으로 바뀌었다. 수저, 탁상시계, 가습기, 선풍기.


 


처음에는 남편이 소리를 지르면 그녀도 같이 목소리를 높여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남편이 무섭다. 남편 목 혈관이 두꺼워지고 눈이 충혈 되면, 그녀는 두려워서 안방으로 뛰어가 숨었다. 문을 잠그고 남편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남편은 발로 문을 차면서 당장 나오라고 소리치고, 그녀는 문에 등을 기댄 채 울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문이 열릴까 두려워 몸으로 문을 막았다. 덜컹거리는 문이 그녀의 등짝을 후려치는 채찍처럼 느껴졌다.


 


한번은 남편이 선풍기를 바닥에 내던졌다. 아내는 숲 속에서 뱀을 본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 방으로 달려가 숨었다. 문을 닫고 잠그는 순간, 숨을 잘 쉴 수가 없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쓰려져도 침대에 쓰려야져야 한다고 생각한 그녀는 힘을 다해 침대로 걸어갔다. 침대 모서리 이불을 손으로 쥔 채 방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창가로 쓰며든 햇살이 그녀를 깨웠다. 전날 밤 일이 기억나지 않았다. 차가운 바닥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는 침대에 걸터앉아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흘린 눈물이 조용히 침대 위로 떨어졌다.


 


“제가 꿈꾸던 결혼 생활은 이런 게 아니었어요. 남편은 결혼 전에 저를 아기처럼 조건 없이 사랑해줬어요.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만났던 남자들은 정말 이기적이었어요. 그런데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죠.


 


남편이 왜 이렇게 변한 걸까요? 제가 속은 걸까요 아니면 제가 그를 그렇게 만든 걸까요? 혼란스러워요. 남편은 화날 때만 무섭고 평소에는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에요. 갑자기 화내는 이유를 모르겠어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사는 느낌이랄까…. 저는 불안해서 약을 먹기 시작했어요.”


 


남편이 말했다.


 


“내가 문을 발로 찼다고? 제발 그렇게 말하지 마. 손으로 문고리를 잡고 열려고 한 거야. 대화하다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가면 나보고 어쩌라고. 대화를 해야 문제가 풀릴 거 아니야. 당신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말하잖아.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당신은 들을 생각을 안 하잖아. 그럴 때마다 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


 


물건을 던진 건 내 잘못이야. 그러고 나면 얼마나 마음이 힘든 줄 알아. 당신은 내가 매일 물건을 던지는 것처럼 말하는데, 단 두 번뿐이야. 당신의 말은 엄청나게 과장된 거라고. 제발 진실을 말해. 당신 혼자만의 세상에서 벗어나란 말이야!”


 


아내는 조용히 눈물을 흘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을 보이지 않는 방에 가두었다. 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고, 아내는 그 안에 들어가 숨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남편은 매서운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면 폭발해버릴 듯한 눈빛으로.


 


아내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보, 사실… 나, 기억이 잘 안나. 당신이 너무 무섭단 말이야. 당신이 소리 지르면 정신이 나가버려.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소리 지르지 마. 제발 부탁이야….”


 


남편은 목이 메는 듯, 어렵게 말을 꺼냈다.


 


“사실, 어젯밤에 결혼식 앨범을 꺼내봤어요. 사진을 보면서 생각했죠. ‘우리 행복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을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아내에게 더 이상 상처주고 싶지 않아요.”


 


아내가 여덟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의 투병 생활은 길었다. 어머니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다. 아홉 살, 어느  여름날이었다. 그녀는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가 해질녘에 집에 들어왔다. 엄마는 딸의 머리채를 잡고 화장실로 끌고 가서 회초리로 온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울면서 살려달라고  말했다. 평소 엄마의 눈빛이 아니었다. 빨갛게 충혈 된 눈은 무언가에 씌인 것 같았다. 어머니는 실성한 듯 그녀를 심하게 때렸다. 그녀는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고, 화장실에서 뛰쳐나와 방으로 도망쳤다.


 


문을 잠그고 엄마 눈이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 방에 갇힌 그녀는 귀를 막았다. 방문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 아빠를 닮아 그 모양이지. 너도 죽어. 다 필요 없어. 다 같이 죽어!”


 


그녀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아버지는 제게 한 번도 화낸 적이 없었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가 너무 그리웠어요. 너무 보고 싶고, 생각나고…. 엄마도 힘들었을 거예요. 지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마음에 상처는 남았지만, 그때 엄마도 아마 어쩔 수 없었을 거예요.”


 


남편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연극영화과에 지원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반대했다. 아버지에게 맞설 수 없었다. 아버지의 생각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으니까. 아버지 뜻을 거스르면 뺨을 맞거나 매질을 당했다. 아버지와 직접 대화할 수 없어서 늘 엄마가 중간 역할을 했다.


 


“아버지 생각은 이래. 그러니까 네가 이해하렴.”


 


어머니는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어머니가 상황을 설명해줘도 속 시원하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들은 동의할 수 없었다.


 


방학 중에도 그는 아버지의 기상 시간에 맞춰 일어나 밥을 먹었다. 해도 뜨기 전, 이른 새벽 시간에 식사를 했다. 그리고 단정히 옷을 입고 도서관에 갈 준비를 하는 척 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출근하시면 다시 옷을 갈아입고 모자란 잠을 잤다.


 


그는 늘 아버지 눈치를 봤다. “영화배우는 안 된다”라는 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진로를 정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방황했다.


 


두 사람은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남편이 말했다.


 


“아내는 있는 그대로 저를 인정해줬어요. 기를 살려줬다고 해야 하나… 사실 저는 부족한 게 많거든요.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성격이 좋은 것도 아니고요. 아내는 얼굴도 마음도 예뻐서 한눈에 반했죠. 사실 지금도 그래요. 가끔 아내를 보면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나? 이렇게 사랑스런 여자에게’라고 생각해요.”


 


아내가 말했다.


 


“남편이 사랑해주는 게 느껴졌어요. 그의 눈빛이 따뜻했어요. 저를 아기처럼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말해줬거든요. 남편이 손을 잡아주면서 결혼하자고 했을 때 저는 감격해서 울었어요. 그를 만나기 전까지 제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결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두 사람의 존재는 서로에게 축복이었다. 향기 가득했던 신혼집은 사랑이라는 꽃이 시들면서 악취가 났다. 남편의 거친 입에서 풍기는 침냄새와 아내가 문고리를 잡고 버티며 흘린 땀냄새로 얼룩졌다.


 


***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사람은 물이 두렵다. 물을 볼 때마다 두렵다. 다른 사람 눈에는 에메랄드빛으로 보이는 물이 그에게는 시커멓게 보인다. 물에 대한 기억이 물 색깔을 결정한다. 눈에 보이는 물 색깔을 바꾸려면 물속에 들어가야 한다.


 


발부터 시작해서 허리, 목까지 천천히 담그자. 방심하지 말자. 물속에서 손발을 사용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내는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아버지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어머니의 불안한 감정 상태, 학대와 상처 주는 말이 그녀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도피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남편을 처음 만나 가진 느낌, “아기처럼 예뻐해줬다”라는 말은 연인 사이에서 쓰는 말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쓰는 말에 가깝다. 아버지 모습이 투영된 남편에게 끌린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아버지가 아니다. 그녀가 남편을 통해 보았던 아버지는 사막에 신기루 같은 것이다. 멀리서 아버지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가보니 모래 언덕이다. 착시현상이다. 아버지가 없다는 상실로 쓰러진 그녀에게 사정없이 모래바람이 불었다. 코와 눈에 모래가 가득 끼어 앞을 볼 수도, 숨을 쉴 수 없다.


 


어머니가 남긴 상처는 그녀를 파괴했다. 남편 눈빛이 엄마 눈빛과 연결된다. 어린 시절, 그녀는 어머니에게 대항할 수 없었다. 대항하지 않아 모진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았다. 남편에게는 달랐다. 사력을 다해 그에게 대항했다. 두 번 다시 고통  당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독설이 나갔다. 남편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살기 위한 투쟁이었다. 그녀의 정서는 아홉 살 어느 여름 날, 엄마의 집 화장실 안에 갇혀있었다. 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근 사람은 현재의 그녀가 아니다. 아홉 살 소녀다.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느끼는 두려움은 같다. 그녀를 기절시킨 사람은 누구인가? 엄마인가, 남편인가?


 


남편이 말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녹음하면 그 소리가 낯설게 들리잖아요. 제가 말을 할 때, 목소리가 이렇게 컸나요? 전혀 몰랐어요. 아내는 체구도 작은데 제 목소리가 커지면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저는 먼저 화를 낸 사람이 아내라고 생각했어요. ‘이 여자는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못 넘어가나?’ 생각했죠. 그녀가 사나운 고양이처럼 날뛰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흥분해서 몰아세우는데 정말 답답했거든요. 제가 아니라고 말해도 귀를 막고 듣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 이 사람은 대화하고 싶은 게 아니구나. 그냥 날 이기고 싶은 거구나.’ 혼자 결론을 내렸어요. 그 다음부터는 아내가 무슨 말을 하면 입을 막으려고 했어요. 화를 참지 못하고 실수할 것이 뻔하니까요. 차라리 말을 하지 않는 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깨닫게 되었네요. 아내가 무서워서 그런 거예요. 아내를 지켜줘야 할 사람이 아내를 두렵게 만든 거죠.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만약 제가 아내의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내의 손을 잡고 말했을 거예요. ‘이제 무서워하지 마. 이제부터는 내가 곁에 있어 줄 거야’라고요.”


 


아내는 남편 옆에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은 아내 손을 조용히 잡아주었다. 두 사람이 맞잡은 손에서 다시 향기가 났다. 더 이상 남편의 침냄새, 아내의 땀냄새가 나지 않았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처럼 따뜻한 사랑이 아내의 손을 타고 흘렀다. 아내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모래시계를 두 번 뒤집은 것처럼 긴 시간이 흐른 후에 그녀가 말했다. 


 


“제가 만일 남편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남편을 대신해서 아버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요? 그거야 간단하죠. ‘아버님, 왜 제 남편의 기를 죽이세요. 남편이 아니라잖아요. 왜 그의 말을 끝까지 안 들으세요? 끝까지 들으시고 하고 싶은 말을 하세요. 제 남편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제발 아버님 방식대로 생각하지 말고, 남편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세요, 제발!’이라고요.” 


 


그녀는 남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을 타고 따뜻한 기운이 흘렀다. 조용히 손을 잡은 채, 울기 시작했다. 한 번도 눈물을 보이지 않은 남편이 엎드려 우는 순간, 아내는 두 손으로 남편 등을 감쌌다. 그녀가 남편을 안은 것인지, 그에게 안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남편 등에 기댄 그녀는 편안해보였다.


 


남편이 뭐라고 말했다. 등 근육이 울리면서 남편의 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그녀가 문 넘어 듣던 무서운 목소리와 달랐다. 남편 등에서 울린 소리가 아내의 마음을 울렸다.


 


“여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치유의 고백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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