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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정민 Oct 27. 2020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 26

누구에게나 '언젠가 읽어야지.....' 하고 책장에 꽂아두고는 세월을 같이 먹어가는 그런 책 한 권쯤은 있을 것이다. 그러다 그 '언젠간' 조차도 효력을 다하면 슬그머니 중고 책방으로 내몰리거나 아니면 재활용 더미에 섞여 활용을 달리하게 되는 그런 책. 그 목전에서 구사일생한 책과의 인연을 소개한다.


브런치 작가도 아니면서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라는 프로젝트에 덜컥 참가신청을 했다. 일단 저질러 놓고 어떤 책을 선정해야 하나 고민했을 때 머릿속에서 이미지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이름도 어려운 러시아 작가, 코르네이 추콥스키의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였다.


남편의 책과 나의 책이 반반 정도 자리를 차지한 책꽂이에는 사람들이 모름 직한 제목의 나에게 조차 낯선 책들이 많았다. 몇몇 책을 뒤적인 끝에 그래도 역시나 이 책으로 정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냥 보내기는 아쉬운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더 시간이 지나면 생각에서 조차 밀어내게 되리라는 예감이었을까? 프로젝트는 책장 한가운데 꽂아 두고는 있었으나 점점 마음에서 멀어지던 이 책 읽기를 강제하기에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했다.



책과 나의 인연


엄밀하게 말해 이 책은 잃어버렸거나 잊고 있던 책은 아니다. 줄지어 늘어선 육아서 사이에서 육아서로 분류하기에는 애매한 정체성만큼이나 흐릿한 색감을 자랑하며 늘 나의 의식 한편에 자리하고 있던 책이었다.


어디어디 숨었나?^^


아는 러시아 작가라고는 대문호인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쉬킨, 체호프 정도가 다인 내가 제목도 생소하고 작가 이름은 더더욱이나 생소한 이 책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순전히 아이 때문이었다.


영유아기 엄마와 맺는 애착이 평생의 관계에 기반이 된다는 강력한 믿음은 나를 자유로운 영혼에서 두 아이의 엄마로 머물게 했다. 낳고 나면 절로 아이가 예뻐 보이고 그저 사랑해 주면 되겠지 하는 예상이 무너지는 데는 불과 며칠이 걸리지 않았다. 온종일 먹이고 기저귀 갈고 씻기는 일상 속에 밤잠을 설치고 밥 한 술 제때 뜨지 못하며 아이와 집에서 지내는 시간들은 몸과 마음을 흐트러 놓았다. 처절하고 치열했던 시간을 지나 아이와 리듬을 맞춰가며 엄마라는 옷에 적응 해 갈 무렵 덜컥 둘째를 만났다.


양가의 도움 없이 가정보육으로 아이 둘을 혼자 키워내는 시간은 내 인간성의 바닥을 마주하게 되는 날들이었다. 큰 아이가 감기에 걸린 어느 겨울, 몇 날 며칠 40도 고열을 오가는 아이를 지키고 젖먹이 둘째에게 밤낮없이 수유하는 날들을 지나며 나는 전과는 다른 엄마가 되어있었다.


전에 없이 아이에게 소리치고 비난의 말을 퍼붓는 나를 발견하고, 빠르게 트인 말문으로 내가 뿌린 씨앗을 그대로 나에게 돌려주는 아이를 보면서 나는 놓았던 육아서를 다시 잡았다. 웬만한 자신감에 이제는 필요 없다고 여겨졌던 부모 강의의 문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렇게 찾은 한 강의에서 나는 이 책을 소개받았다.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한 강의였는데, 숲학교 교장님이기도 하신 강사님은 아이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대화를 이끌어 내는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림책이나 미디어로 대체되는 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해주셨다. 강의 끝에 강사님은 아이들의 시선을 이해할 수 있는 몇 권의 책을 추천해 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두 살에서 다섯 살까지'였다.


함께 추천해 주신 또 다른 책, '창가의 토토'와 같이 구입하기 위해 중고 서점을 뒤졌으나 흔하게 나와있지는 않은 듯했다. 애타는 마음으로 찾는 중에 종종 는 매장에 딱 한 권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누가 사갈 새라 얼른 가서 손에 쥐고 뿌듯해했다. 마치 아이들의 말을 통해 마음을 이해하고 더 이상 아이에게 화낼 일도 아이가 소리지를 일도 없어지는 마법의 비책을 얻은 기뻤다. 이 책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



책에 담긴 이야기


함께 구입한 창가의 토토는 아이와 너무나 재미나게 읽었다. 간간이 들어 있는 삽화 외에 아이가 볼만한 그림도 없고 글씨를 읽지 못하던 때였던 지라 아이는 오롯이 나의 목소리에 의지해 그림을 그리듯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는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과 토토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그 시간 속에서 아이와 가까워짐을 느꼈다.

그와 함께 이 책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도 같이 읽어보려 했으나 아동문학과 논문(?)의 경계를 오가는 책의 내용상 아이와 함께 읽기는 어려웠다.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의 작가인 코르네이 추콥스키는 러시아 아동문학을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그가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의 말을 관찰하고 정리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작가뿐만 아니라 러시아 전역에서 독자들로부터 수집한 아이들의 말을 바탕으로 쓰인 책이라는 서문의 설명은 아이들에 대한 그의 애정과 사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책에는 아이들로부터 건져 올린 다음과 같은 언어유희가 등장한다.

사실 어른의 눈으로 봤을 때 유희인 것이지 아이들은 자신의 인식 안에서 진지함 자체로 말하고 있다.

"우리 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악마밖에 모를 거야."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남편이 물었다.
그러자 다섯 살짜리 아들이 바로 반박하며 훈계하듯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방금 악마밖에 모른다고 했잖아. 엄마가 악마야? 엄마가 어떻게 알아!"
어른들은 비유와 은유로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사물로 구성된 세계 속에서 파악한 사물에 따라 생각한다. 어린아이들은 사물의 이미지에 맞추어 생각하기 때문에 상징으로 표현하면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다.

P26
누가 '정신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아이는 눈을 끔벅거리며 물었다.
"그럼 정신을 어떻게 찾았어?"

P28


이런 사례들은 큭- 하고 웃음이 나오게 재미있기도, 미소가 지어지게 귀엽기도 하다. 더불어 아이들의 말속에 드러난 인식의 한계를 이해하게도 한다.

 

코르네이 추콥스키처럼 나도 내 아이의 말들을 수집해 왔다.

큰아이가 만 3살 중반쯤 되었을 무렵 아이가 좋아하는 선생님에 대해
 "그 선생님 어떤 점이 좋아?"
하고 물었다.
아이는 나의 물음에
"엥? 그 선생님이 점이 있어요? 어디예요?" 하고 놀란 눈을 하고 되물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빵! 터져서는 한참을 웃었다.  

둘째가 만 4살 때 다리를 주물러 주는 아이에게 시원하다고 했더니 자기도 나중에 해달라고 했다. 아이의 요청에 따라 자리를 바꾸어 주물러 주었더니 아이가 묻는다.

"엄마! 이게 뭐가 시원해요? 나는 아직 더운데?"

<블로그 기록들 중에서>


이런 일화들을 겪으며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언어 습득의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의 보석같은 말들을 기록해 놓음으로써 아이가 아이로서 빛나던 순간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아이들의 고유하고 특별한 언어를 수집한 것뿐만 아니라 그 말들을 통해 아이들이 언어의 규칙을 어떻게 이해하고 발전시키는지 설명하고 있다.

두 살 무렵부터 모든 아이들은 잠시 동안 언어의 천재가 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대여섯 살쯤 되면 이 재능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여덟 살짜리 아이들에게서는 이렇게 언어적 창의성이 드러나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략).... 아이가 단어를 만들어 내고 구성하는 능력을 잃지만 않는다면 열 살만 되어도 어떤 어른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탁월하고 유연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P20


나이가 가져오는 창의성의 한계를 설명할 때는 왠지 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아이들의 말이 자유로움을 잃고 문법이라는 틀 속에서 정형화되어 가는 모습이 마치 각각의 개성을 상실하고 획일화된 모습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과도 같게 여겨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성장임과 동시에 어떤 의미에서 크나큰 상실임에 틀림이 없다.




이 책을 다시 펼친 의미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책 속에 담긴 아이들의 말이 너무나 귀엽고 재미있어 흥분하며 읽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아마도 책에 나온 사례들이 당시 내 아이들의 말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내 아이들은 서늘한 강바람이 주는 시원함과 뜨거운 물에 들어갔을 때 온몸이 풀리며 느끼는 시원함을 혼돈하지 않는다.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하라는 말에 "엄마, 아빠의 역할은 자신들을 돌보는 것인데 그럴 거면 엄마 아빠가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부모 존재의 이유를 따지기도 하고, 책 속의 사례를 읽어주면 같이 웃을 만큼 자랐다.

레프 톨스토이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쓴 유려한 문장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전부 그때 얻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 시기에 너무나 많은 것을 빨리 익혀서 그 뒤의 삶에서 얻은 것은 그 백분의 일도 되지 않는다. 지금 나와 다섯 살 때 나 사이의 거리는 한 걸음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갓난아기 때부터 다섯 살 때까지의 거리는 그야말로 엄청나다."

P30


책에 나온 톨스토이의 말을 굳이 빌지 않아도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의 시간이 비단 아이들의 언어만 폭발적으로 습득하는 시기는 아니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해 왔다. 바닥에 누워 손가락을 고물거리는 것이 다였던 아이들이 기고 걷고 뛰며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엄마라 이름의 무게를 견디며 지켜왔다.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 아이들과 부대끼며 함께 성장해 온 시간들은 말처럼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차곡차곡 기억 어딘가에 저장되어 삶을 지탱하게 하는 기반으로 자리했으리라 믿는다.  


아이들은 더 이상 자신들이 몸에 난 점과 특징을 일컫는 점의 뜻을 하나로 보았던 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를 키우며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기억의 퍼즐을 맞추어 가는 과정이 아닐까 하고. 더 이상 기억으로 떠올려지지는 않지만 어딘가에 잠재되어 있을 어린 나를, 나를 꼭 닮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맞추어 가고 나는 아이들이 잊어가는 기억의 조각을 붙잡아 인생이라는 퍼즐을 완성해 간다. 우리는 그렇게 잃어버린 또는 잊어버린 조각들을 맞추어 가기 위해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두 살부터 다섯 살까지'를 꺼내어 읽는 일은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싶은 간절함 속에 이 책을 손에 쥐었던 나의 시간을, 내 품을 파고들던 그때의 아이들을 기억하게 해 주었다.

잃어버린 책 찾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책이 아닌 잊혀가는 시간의 기억을 되찾아주었다.



번역서의 답답함을 절감하고 싶다면 ★★★★★

뤄시아 문학을 읽는 고고한 사람인 척하고 싶다면 ★★★

아이들의 말에 담긴 성장의 비밀 이해하고 싶다면 ★★★★

흥미로운 이야기 책을 원한다면 ★★


이 글을 마지막으로 <잃어버린 책을 찾아서 Project>가 끝났습니다. 10월 한 달간 함께 쓰고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숨어 있는 책을 찾았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았습니다. 이제, 우리들의 이야기는 하나로 묶여 책으로 발간될 것입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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