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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통 Apr 02. 2016

햇빛이 축복이다.

[러스트 앤 본]을 보고

이 영화는 나를 앓게 했음을 먼저 고백하며 시작해야겠다.

영화를 본 게 아니라 겪었달까 앓았달까... 아니, 영화가 내 몸을 뚫고 나간 것 같달까.

나는 이 영화가 그냥 너무 좋다.


 

낮과 밤이 바뀌었던 적이 있었다. 낮이 싫었다. 너무 환한 낮이 싫어서 , 그 햇빛이 싫어서. 아무렇지 않게 밝히고 있는 그 태양이. 그래서 해가 질 때 일어나고 해가 뜰 때 잠이 들었다. 그때 사실, 몸도 아팠다.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자고 또 잤는데, 뭐라 하는 사람도 한 명 없이 혼자라 어느 순간에는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이 노르스름한 햇살이 여명인지 노을빛인지 알 수도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그 날은 눈을 떴는데,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몹시 무서웠다. 그러다가 이른 새벽이라는 걸 알았고 지금 해가 뜨기 시작한다는 사실이 이상하리만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제야 밖에 나가보고 싶었다. 사실, 영화가 몹시 그리워서였다. 조조로 보는 영화의 맛이 그리워서 마을버스를 타고 푸르스름한 그 날 공기를 가르고 멀티플렉스 극장에 갔다. 8시도 되지 않은 시각으로 기억한다.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영화. 극장에 푹 안기고 싶었다.


영화는 '예언자'였다.

자크 오디아르의 '예언자'.

그 강렬하고, 낯설면서도 아름다웠던 영화를 떠올릴 때면 푸르스름한 새벽 냄새 같은 게 떠오르면서 마음이 좀 아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고,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잠을 자는 요즘,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을 보았다.







Bon Iver 의 노래가 나오면서부터 어이쿠야 싶었다.

그러다가 햇살이 나오는데, 햇살이 나올 때마다 눈물이 났다. 지친 스테파니, 마리옹 꼬띠아르의 얼굴에 노란 햇빛이 쏟아질 때, 바다에 부서지는 햇빛, 햇살에 눈을 감고 얼굴을 맡길 때, 그렇게 햇살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그렇다. 그것은 그림자였다. 그때도 햇빛은 있었다.

햇빛은 도처에 우리의 시야를 넘어 존재하며 공평했다.

햇빛이 축복이다.





당신은 나의 아픈 손가락이다.

몸의 다른 뼈와는 다르게 한 번 부러지면 잘 붙지 않는 손의 뼈.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겠다.

가끔 바늘로 찌르는, 유리에 베이는 것 같은 통증이 찾아오겠지만, 그렇게 당신을 내 손에 달고 잡고, 놓지 않겠다.

그렇게 아픈 뼈 덕분에 나는 녹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고통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닐지 모르겠다.


다리가 잘리고 손이 부서져도, 당신이 있으니 다행이다. 맨얼굴 맨몸이라 다행이다.


그렇게 햇빛이 있어왔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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