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통 Mar 29. 2016

처음 보는 여자

[아노말리사]를 보고


어디선가 기분 나쁜 농담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남자의 이상형은 어떤 여자인 줄 알아? 

-글쎄. 뭔데?

-처음 보는 여자.


나는 여자라서 남자의 이상형은 잘 모르지만, 그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를 비하하는 말일 거라고. 나는 그 농담이 불쾌했다. 그런데 이 영화 '아노말리사'는 그 농담이 자꾸 떠오르게 만들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 마이클이 살고 있는 세상은 독특하다. 그 자신만 빼고 모든 사람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같은 얼굴이고 목소리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고 그 목소리가 그 목소리다. 마이클은 매우 불행해 보인다. 그러던 어느 날 출장지에서 어떤 목소리를 듣게 된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 처음 듣는 목소리다. 마이클은 목욕도 하다 말고 그 목소리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간다.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의 목소리가 꾀꼬리 소리처럼 들리고, 세상 그 누구보다 특별해 보인다는 건 알겠다. 나에게도 일어난 일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당신만 진짜고 나머지는 다 가짜예요는 무섭다. 사랑은 과연 어쩔 수 없는 운명이고, 마법인 걸까. 그리고 하필이면 그 불가항력의 사랑은 원나잇 스탠드 직후 끝날 수밖에 없는 걸까. 마법이 끝나면 그 뿐인 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영화 속에서 너무나 기발하게 외로움과 권태를 표현해낸, 같은 '목소리'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은, 너무 억울할 것 같다.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그 사람이 다 그 사람인 것이 아니며, 모두 당신한테 사랑을 구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똑같은 목소리, 얼굴인 세상에 어떤 마법 같은 이유로 한 사람의 목소리와 얼굴이 엄청나게 특별했다, 그래서 사랑에 빠졌다는 것은, 특히 그 대상자가 본인의 특별함을 전혀 모른다면,  나이기 때문에 당신의 특별함과 가치를 알아보았다는 또 다른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저변에 깔려있는 것은 아닐는지.


 모두 다른 얼굴이고, 다른 목소리다. 모든 사람은 다르다. 사랑을 받지 않더라도, 사랑을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전속력으로 사랑에 빠져버리고 마는 주인공을 보면서, 본인의 눈에 씌인 오만은 알아보지 못하며 낭만적 우울감에 빠져있는 쓸쓸한 사람을 보았다. 

 그 남자가 안되긴 안됐다.

 

 하지만 나는 리사가 걱정된다. 그 활기 넘치고 매력적이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착한 그녀가 이 모든 걸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니, 그 후로 수많은 세월 동안 '왜'라는 질문으로 앓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영화에서 리사는 밝은 모습으로 그에게 착한 편지를 쓴 것을 알고 있다. 이놈의 시나리오는 남자 녀석이 썼겠지. 리사, 리사, 완벽한 리사. 순수와 사랑의 여신.


 이야기하는 방식을 바꾸었다고, 같은 이야기가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미 아닌 잡초 같은 나 같은 여자에게, 첫눈에 반하는 사랑은 불안하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교회에서 듣는 것으로 족하다. 그래, 어쩌면 내 성격에 문제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도 못나고 당신도 못났다는 그 지점에서부터 시작하자. 그러니까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하잔 말이다. 멋대로 당신의 마법으로 나를 기대하지 말아주었으면. 그 마법을 핑계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지 말아주었으면. 나는 당신의 사랑의 마법 없이도 충분히 '나'이며 유일한 존재다.


 이 영화는 너무나 진짜 같아서 나를 이리도 흥분하게 만든다. 이 모든 이야기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다니, 감탄이 절로 난다. 그 주저하고 당황하고 자책하는 표정. 어쩜 그리도 그때 그 사람과 닮았는지. 

 

나는 이 영화가 슬프다. 이 영화도 본인이 그런 줄 알고 있기에, 더 슬프고 슬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