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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ster Apr 23. 2024

브로드웨이를 깨운 아시아 여성의 힘, 헬렌 박

이상인의 테넷 / 2023년 6월 호 칼럼

영화계에 아카데미 어워즈(Academy Awards)가 있다면, 뮤지컬 분야에는 토니 어워즈(Tony Awards)가 있다. 얼마 전 76회 토니 어워즈의 후보가 발표됐는데(수상 발표는 6월 11일), 이날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는 일이 벌어졌다. 케이(K)팝을 소재로 한 뮤지컬 [KPOP]이 무려 세 부문(Best Original Score, Best Costume Design, Best Choreography)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전 세계 뮤지컬의 심장 브로드웨이에서 주목받고 있는 작곡가 헬렌박을 만났다.


이상인: 반갑다. 토니 어워즈 노미네이션을 축하한다.


헬렌 박: 고맙다. 여전히 꿈만 같다.


이: 뮤지컬 작품 [KPOP]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한다.


박: [KPOP]은 여러 아티스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의 꿈과 노력, 케이팝에 대한 사랑을 담은 뮤지컬이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Circle in the Square Theatre’에서 공연했다.


이: 어떤 계기로 [KPOP]이라는 뮤지컬 작품을 만들게 되었나?


박: 이 뮤지컬의 시작은 오프브로드웨이(Off-Broadway: 야구로 비유하면 브로드웨이는 메이저리그, 오프브로드웨이는 마이너리그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에서다. 작품성과 상품성 모두 검증되어야 올라갈 수 있는 브로드웨이와 달리 오프브로드웨이: 쇼들은 상당히 실험적이고 진취적인 작품이 많다. 수많은 오프브로드웨이의 극장들 중 아스 노바(Ars Nova)라고 하는 곳이 2014년경 케이팝을 소재로 한 뮤지컬을 만들고 싶어 했고, 여기에 참여하게 됐다. 그 후 9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 2014년이면 케이팝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인지도도 대단히 낮았던 시기 아니었나?


박: 그렇다. 그때만 해도 한국 출신이라고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이 ‘North or South?’라고 되묻거나, 그런 정보조차 잘 모를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던 때다.


이: 아스 노바 극장의 프로젝트는 어떻게 처음 알게 됐나?


박: NYU(뉴욕대)에서 공부하며 케이팝적인 요소가 가미된 곡을 여러 편 썼다.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 유학을 왔지만, 한국 가요에 대한 사랑이 식은 적은 없었다. 어떤 면에서는 미국 팝음악보다 한국 가요가 더 다양하고 재미있는 요소가 많다는 생각을 했기에 자연스럽게 케이팝스러운 곡을 여럿 쓰게 되었다. NYU 시절 친구였던 맥스 버논(Max Vernon, 뮤지컬 [KPOP]의 공동 작사가)이 내가 케이팝 스타일의 작업을 꾸준히 해온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아스 노바 극장에 나를 추천해 프로젝트를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자마자 뮤지컬을 위해 곡을 만들기 시작했나?


박: 처음 조인한 2014년경에는 정식 뮤지컬이라기보다는 테스트 성격이 강한 워크숍이었다. 과연 이 새로운 소재와 스타일의 뮤지컬이 성공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았는데, 여기서 반응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하지만 많은 인원이 참여하다 보니, 전체적인 조화가 약간 어려웠다. 그래서 나와 맥스를 중심으로 팀이 개편되어 2017년 아스 노바 극장 데뷔를 목표로 작업했다. 그렇게 하나의 완성된 쇼로 그곳에 선보일 수 있었다. 오프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며 받았던 관계자들의 좋은 평과 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2022년 브로드웨이 진출했다.


이: 브로드웨이 극장에 진출하는 것이 당연히 쉽지 않았을 텐데, 8년이나 걸려 입성했다니 정말 엄청난 과정이었을 것 같다.


박: 슈퍼스타 배우나 제작자가 만들어도 브로드웨이에 바로 입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들도 최소 4~5년 정도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을 거쳐 브로드웨이로 들어온다. 개인적으로도 이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재미있었고 많이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케이팝 자체에 대한 공부가 많이 됐다. 특히 한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콘텐트 중 하나인 케이팝을 미국에 제대로 알리기 위해 작은 부분까지 최선을 다해 만들고 편곡하고 다듬었다. 우리 뮤지컬에는 세 가지 카테고리 아티스트(여자 싱글, 걸그룹, 보이그룹)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각 아티스트의 디렉션에 맞는 데뷔곡, 발전 과정, 이들을 성공으로 이끌 히트곡을 만들기 위해 기존 케이팝의 수많은 사례를 조사하고 분석해 곡을 만들어갔다.


이: 작품을 위해 만든 모든 노래가 다 자식 같겠지만, 그중에서 더 애착이 가는 곡이 있나?


                                                        

▎뮤지컬 [KPOP] 공연 중 한장면.


박: 개인적으로 두 곡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Amerika(Checkmate)’라는 곡이고 다른 하나는 ‘Supergoddess’라는 곡이다. 우선 ‘아메리카라’는 극 중 미국 진출에 나선 ‘F8’이라는 보이그룹 안에서의 갈등과 열정을 담고 있다. 토종 한국인 멤버와 해외 출신의 혼혈 한국인 멤버 사이의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갈등, 미국 진출에 대한 도전을 담은 곡이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표상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기대뿐 아니라 현실적인 부분에서 오는 부조리를 담았다. 이를 위해 코드는 하모니가 풍부하지만 강력한 비트와 다양한 효과음을 공존하게 했다. 또 다른 곡인 ‘슈퍼가디스’는 여성 그룹인 ‘RTMIS’가 부르는 노래다. 원하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파워풀한 노래다.


이: 뮤지컬 [KPOP]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할 때, 그룹f(x) 출신의 루나(Luna) 같은 실제 케이팝 스타가 여럿 참여해 화제를 낳았다.


박: 원래 오프브로드웨이 때는 케이팝 스타들이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브로드웨이로 가면서 실제 아이돌을 섭외하려고 했는데, 아무리 영향력 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캐스팅 담당자들이라고 해도, 한국에 있는 아이돌을 섭외해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연락해야 하는지부터 막막했다. 그래서 나와 우리 팀들이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DM(SNS를 통한 메시지)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이게 실제로 먹혔다.(웃음) 그래서 내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아이돌인 에프엑스의 루나(Luna), 유키스의 케빈우(Kevin Woo), 미스에이의 민, 스피카의 김보형까지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워낙 춤, 노래, 연기가 뛰어나다 보니 자기 역할에 금세 녹아들었다.


이: 뮤지컬 [KPOP]이 17번의 공연을 마친 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내려온 것으로 안다. 다음 스텝은 무엇인가?


박: 우선 오리지널 캐스팅 음반이 5월 중순에 나왔다. 이 앨범을 우리 팬들이 엄청 기다렸는데, 얼마 전 릴리스 행사에서 팬들의 열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여러 형태로 [KPOP]이라는 작품을 더 많은 지역의 다양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 공연 투어를 계획 중이기도 하다.


이: 헬렌 님은 유학생 출신임에도, 뮤지컬 분야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토니 어워즈에 역사상 처음으로 후보에 오른 아시아 여성이 됐다. 같은 길을 가고자 하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박: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모든 걸 담아 충실하면,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들려주고 싶다. 나 역시 감히 브로드웨이에 입성하는 것조차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사랑하는 케이팝을 뮤지컬화한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이후에는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사명감이라는 생각마저 들어, 이 프로젝트를 잘해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뮤지컬에 참여한 모든 분이 케이팝에 대한 열정과 책임감, 사랑을 갖고 임했기에, 이 뮤지컬이 토니 어워즈 노미네이션이라는 영광을 얻을 수 있지 않나 한다.


___

헬렌박과 이야기하는 동안 꿈을 향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한 사람이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또 아무리 보수적인 집단이더라도 헬렌처럼 재능과 열정을 다하는 사람을 성별과 인종이라는 핑계로 더는 묶어둘 수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미국 시각으로 6월 11일 토니 어워즈의 수상자가 발표된다. 수상 여부를 떠나 뮤지컬 [KPOP]과 헬렌박이 보여준 행보는 이미 수많은 여성과 아시아인들에게 토니 어워즈 이상의 영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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