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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새미 Apr 25. 2023

개발자의 품격

유니콘 스타트업의 개발자의 가용시간을 구독하세요?

"토스 개발자 주 20시간을 200만원에..!"

"두나무 개발자 주 30시간을 300만원에..!"


정말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개발 관련 검색을 좀 해서일까, 아니면 스타트업의 공통적 니즈 때문일까. 인스타그램에서 이런 광고가 자꾸 떴고, 볼 때마다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비슷하지만 여러 번 다른 포지션에 대한 광고도 봤으니 아마 하나의 서비스가 아닐지도 모른다.


얼핏 듣기엔 정말 혹할 수 있다. SI에 처참히 실패한 회사/기관들이 고급 개발자를 구하기 어려워서 이런 대행 서비스가 생기게 되었고, 하나의 프로젝트가 등록되면 토스나 두나무 개발자들이 일부 이슈를 해결하고 쓴 시간만큼 돈을 받아가는 모델이라는 것이다. SI 과제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토스나 두나무에 갈 개발자들이 우리 회사/기관에 올 리는 없으니까라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실패 가능성이 높은 거대한 프로젝트와 고급 개발자의 매칭. 딱 그렇게 느껴지고 가려움을 해소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 모델은 정말 말이 안된다. 토스나 두나무의 소위 '고급 개발자'가, 일주일에 20시간의 '가용시간'을 만들어서 '알바'를 한다? 이 전제부터가 틀렸다.


이 모델이 작동하려면 이런 상황이어야만 한다. 첫째, 퇴근 후 가용시간을 만들 수 있는 고급 개발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회사에서 쉬엄쉬엄 에너지를 세이브할 수 있는 사람이 고급 개발자로 불릴 사람이 된 사람은 지금껏 본적이 없다. 내가 본 개발자들은 회사의 메인 프로덕트를 개발했고, 구조를 짰고, 개선했다. 한가지에만 몰입했다. 퇴근 후에도 다른 일을 한다기 보다는 자신의 프로덕트를 고민하거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일하면서 다른 작업을 할 수 있는 가용시간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미안하지만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물론 널널하게 일하면서 고급 지적노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학부 대학원 회사 통틀어서 내가 본 적이 없을 뿐이다. 세상은 넓기에.)


둘째, 의뢰되는 프로젝트가 이슈만 쭉 해결하면 되는 단순 구현에 대한 건이어야 한다. 하지만 단순 구현은 SI에이전시들을 통해 이미 해결이 가능한 범주일 것이다. 프로젝트의 어려움이 있으니 고급 개발자를 찾는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이 모델은 고급 개발자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프로젝트의 어려움도 해소하지 못한다. 사이드잡에 대한 어떤 유행같은 것이 있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돈 벌 기회를, 회사/기관에는 어려움을 해결하는 듯 힙하게 보인다. 하지만 이 모델은 개발이 지적 노동이라는 점을 간과한 공허한 솔루션이다. 고급 지적 노동은 사이드잡이 불가능하다.


가장 나쁜 점은 이런 광고에 현혹된 주니어 개발자의 장기적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이드잡, 할 수 있다. 돈도 많이 벌 수 있다. 그런데 고급의 지적노동이 가능한 고급 개발자가 되려면, 메인 프로젝트에 빠져들어야 한다. 질적인 발전만이 성장을 이끈다. 이슈와 이슈를 잇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 문제지점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효율적인 구조를 고민하는 데서 고급 개발자로서의 성장이 이뤄진다. 개발자는, 어떤 단일 이슈를 해결하고 양으로 실력을 검증하는 직군이 아니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개발자 중 정년퇴임을 한 사람이 많이 없다. 비교적 신규의 직업군이라 이런 혼돈이 있는 것 같다. 개발이 지적 노동이라는 점에서 어떤 회사원의 라이프사이클보다는 교수님들의 커리어패스를 되짚어 보는 것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학원에서 연구생으로서, 졸업 후 연구교수로서 하나의 프로젝트를 완성시켜가는 과정 말이다. 보통 자신이 몰입한 주제에서 이런 저런 시도를 하고 이런 저런 논문을 쓴다. 그 주제에서 성장하고 이런 저런 옆동네 주제를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교수가 되어서 자신의 주제를 이을 후배를 이끌고 이런 저런 옆동네와 협업한다. 주제를 잇고 새로운 지식을 만든다. 사이드잡으로 공부를 하는 사람은 결코 이렇게 할 수 없다. 파트타임 대학원생이 학계에서 성장하려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개발자의 품격은 고급 지적 노동을 추구하는지 여부에서 나온다. 비전공자가 개발자 커리어패스에 들어왔다고 해서 다른 얘기가 아니다. 적어도 개발자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사이드잡으로 돈을 버는 광고에 현혹되기 보다는 메인 프로덕트에 헌신하고, 계속 생각해야한다. 혹시 그러다가 주말에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컴퓨터공학 빌딩블록을 따라 공부를 해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스타트업 대표라는 젊은 꼰대가 하는 말이 아니다. 스티브잡스가 하버드 졸업식 연설에서 한 말이다.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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