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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 하는 마법 Jun 01. 2022

울지 못하는 엄마, 엄마 대신 우는 아이

대학원 수업의 모든 내용은 치유적이었다. 교수님들이 수업하면서 말씀해주시는 상담사례들에서 나의 모습과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특히 ‘엄마에 대한 역동일시로 인하여 ‘이상적인 엄마의 모습’을 목표로 삼고서, 현실에서는 항상 좌절하고 불행해하는 엄마효능감이 제로인 내담자’에 대한 얘기를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 때 나를 보던 교수님의 당황스럽고도 짠한 눈빛이란.. 그 공감 어린 눈빛에 하마터면 빗장이 열려 교실에서 엉엉 울 뻔했다.  


‘역동일시’란 어린 시절 부모 등 생애 초기 주요 애착 대상과 동일시되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를 의미한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 이것이 역동일시를 대표하는 멘트다. 그러나 ‘엄마처럼 살지 않는다’는 것은 그 형태가 모호하여 한계가 없고, 따라서 역동일시를 지향하는 사람들은 동일시를 지향하는 사람보다 더한 완벽주의에 시달리게 된다. 그 중 상당수는 자신에 대한 높은 기준을 세우고, 자기착취적인 삶을 산다.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지향점이 드라마나 육아서에 나오는 ‘완벽한 엄마’를 목표로 삼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동일시는 어릴 적 애착 대상에게 느꼈던 좌절감에서 비롯된다고 설명되고 있다. 


나는 어떤 역동일시를 가지고 있는가.


경상도 출신의 아빠는 딸을 이뻐하면서도(오해가 있을까봐 부연설명을 붙여놓자면, 아빠는 내가 성년이 되던 날에 손수 바람을 불어넣은 풍선들과,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적은 커다란 종이를 내 방에 주렁주렁 달아놓고 파티를 열어줄 정도로, 나를 이뻐해주던 다정한 사람이었다), ‘여자가’를 입에 달고 사셨다. 여자가 공부를 잘해봤자, 여자가 잘나면, 여자가 운전을 하면, 여자가, 여자가, 여자가! 그 말을 들을 때의 엄마의 표정은.. 흠. 아무래도 이 묘사는 두 분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아빠의 말엔 분노가 치밀었고, 엄마의 표정엔 연민이 샘솟았다.


난 아빠가 말하는 여자의 삶을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여자인 난 공부를 잘 했고,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또한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도 아이를 잘 키우는 엄마가 되고자 했다. 그런데 아이를 잘 키우는 워킹맘이란 도대체 어떤 모습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드라마에서도 아이를 잘 키운 워킹맘의 모습은 좀처럼 그려지지 않는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어딘가 결핍이 있고, 엄마는 늘 피곤에 찌들어 있는, 처절하고 짠한 가정. 그것이 통상 드라마에서 그려지는 워킹맘 가정의 모습이다. 더구나 나처럼 빡센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은 통상 야망에 가득 차서 아이를 내팽개치고 일에 몰두하고, 아이는 애정 결핍에 시달리는 모습으로 그려지곤 했다. (안타깝게도 드라마 속의 이런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난 아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고, 피곤에 찌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내가 엄마에게 받았던 모든 좋은 것을 주는 것에 더하여 육아서로 익힌 모성의 이상적인 모습을 모두 아이에게 전하고자 했다. 


아이가 잠들기 전 집에 와서 아이와 노는 시간을 가졌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에게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방실 방실 웃으며 아이와 시간을 가졌다. 아이가 잠든 이후 동이 틀 때까지 일을 했다. 아이가 더 놀고 싶은 마음에 쉬이 잠에 들지 않는 경우가 많아, 좌식 독서실 책상을 사서 아이 머리를 무릎에 누이고, 아이를 재우면서 일을 하기도 했다. 잠시 3, 4시간 눈을 붙이고 활짝 웃는 얼굴로 아이를 어린이집 셔틀버스에 태워 보내고, 출근을 했다. 주말에는 아이와 함께 요리를 하고, 아이와 함께 여기 저기 좋다는 곳을 찾아다녔다. 저녁이 되면 아이를 재우고 또다시 동이 틀 때까지 일하곤 했다. 자기착취적인 일상은 나를 수시로 번아웃에 빠져 들게 하였다. 번아웃에 빠질 때마다 분하고 억울했다. 그 시절의 난, ‘여자가’를 달고 사시던 아빠의 잔상과 워킹맘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시대상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자기착취적인 일상을 잘 하고 있을 때는 “승”, 번아웃에 빠질 때는 “패”.  


그렇게 혼자만의 승패를 반복하고 있던 중, 7살의 아이에게 야경증이 나타났다. 야경증은 비렘(NREM) 수면 각성장애 중 하나로, 비렘수면기 중 수면 초반 1/3 앞쪽에서 가장 흔하며, 주로 소아에서 갑자기 잠에서 깨어 비명을 지르며 공황상태를 보이는 질환이다. 아이는 잠든 지 1, 2시간 내에 잠에서 깨어나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는데, 뱃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지는 소리로 “엄마아아아아아!!!!!!!!!”를 부르며 서럽게 울었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저렇게 울까 싶을 정도로, 아이는 나를 부르면서 서럽게 울었다. 아이의 야경증에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그저 같이 울었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역시 부족했던 걸까.. 나는 더욱 애를 썼다. 더 잠을 줄여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더 오버하여 웃었다. 다행히도 그 해 여름, 회사에서 유학을 보내주어 1년간 사실상 전업맘의 삶을 살게 되었다.  아이랑 원없이 함께 있었고, 아이에게 원없이 맛있는 것을 해주었다. 아이의 야경증도 차차 잦아들었다. 아이의 야경증이 잦아든 건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지만, 전업맘의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아이의 야경증이 잦아들었다는 사실은 마음 한편에 패배감을 불러일으켰다. 역시 부족했던 걸까..


대학원 재학 중 한 집단상담에서 이 얘기를 꺼낸 적이 있다. 교수님이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셨다. 

“너 (이날 집단상담은 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서로에게 반말을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그 때 유학 안 갔으면 큰일 났겠다. 내가 보기엔, 네가 그렇게 힘들다 소리 한번 안하고 꾹꾹 눌러 담기만 하니까, 애가 너를 대신해서 비명을 질러준 거다. 아이랑 엄마가 기가 막히게 연결되어 있거든. 내가 보기엔 너 지금도 위태롭다." 


댕ㅡ. 머리 한 대 쎄게 맞은 느낌. 

아이가, 날 대신하여, 비명을 질러주었다고? 그게 가능한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이가 나를 대신하여 비명을 지르며 울 수도 있었다는 것. 그것이 나를 깨웠다. 


그날 나는 멍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고, 오랜 시간 음악을 틀고 몸을 담궜다. 와.. 이 무슨 호사인가. (원래는 집에 오자 마자 일을 할 계획이었다.) 갑자기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어, 나 또 왜 이러지. 서둘러 눈물을 닦아보지만, 한번 빗장이 열린 눈물은 속절없이 툭툭툭, 쏟아진다. 눈물이 쏟아지자, 속에서 울음이 터져나온다. 끄윽ㅡ. 끄윽ㅡ. 겨우 울음을 참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어어어엉ㅡ. 난 끝내 한참을 목놓아 엉엉 울어버렸다. 남편과 아이가 욕실 밖에서 안절부절하며 무슨 일인지를 물었지만, 나는 겨우 ‘나 괜찮아. 잠시만 혼자 있을게’라고 대답하고,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아이가 야경증 증세를 보이던 그 때처럼. 그렇게 몇시간 동안 울고 나서야, 난 내가 긴 시간 동안 부질없는 싸움을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부질없는 싸움을 하는 동안 정말 쉬고 싶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쉴 수 없어서 정말 지치고 힘들었다는 것을,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수십 번 엉엉 목놓아 울고 싶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나와의 첫번째 만남이었다. 

<사진출처 Meghan Hessler @unsplash>
하아.. 그 때가 언젠가? 아침부터 같이 살던 사람한테 맞아서 동네방네 도망 다니다가, 내가 기껏 숨은 데가 산 아래 공중화장실 변소칸 안이었어. 거기서 아마 한 나절은 있었지? 정말 죽겠더라고. 그래서 나가려는데, 그 때 다시 그 사람 목소리가 들리더니, 재열이가 들어온거야. 근데 재열이가 날 보던 눈빛이란… 그때 그러고 재열이랑 냇가 가서 씻는데, 나는 울고 싶은데, 재열이가.. ‘엄마 웃기지? 우리 둘이 똥뚜간에 빠지고.’ 하면서 웃더라. 그래서 나도 덩달아 웃고. 엎어진 김에 놀자. 하며 물놀이했네. 그 때부터였을 걸? 재열이는 화장실에서 자고, 나는 문 닫힌 방에서 못 자고. 하아.. 요즘 그 생각이 부쩍 자주 나면서, 그 때 우리가 둘이 부여잡고 울었어야 됐나. 재열이가 아픈 게 그 때 못 울어서 병 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자꾸…   -괜찮아, 사랑이야. 재열 모(차화연 분) 대사 중-


몇 년 전 플랫폼을 통하여 본 나의 인생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 차화연 배우님이 덤덤한 표정으로, 그러나 끝내 울컥하며 말하는 저 대사를 들으면서, 난 많이도 울었다. “그 때 우리가 둘이 부여잡고 울었어야 됐나” 그렇다. 이들은 웃는 게 아니라 울었어야 했다. 그리고 30대의 나도, 씩씩한 척 방실방실 웃을 게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며 울었어야 했다. 너무 늦지 않게 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너무 늦지 않게 울 수 있었음에, 감사 드린다. 

         


이 글과 함께 하고 있는 그대, 힘들 때, 슬플 때, 잘 울고 있나요? 우리 함께 잘 울고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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