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감정이 어때요?”
“감정이요?? 아.. 감정이요. 그러니까 내 감정이.. 글쎄요.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아닌가? 그냥 뭐.. 모르겠어요. (아.. 쭈굴쭈굴..)”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사람들은 자꾸 나에게 “지금 내 감정이 어떤지”를 물었다. 살면서 누군가 나에게 감정을 물은 적이 있었던가? 나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 이후 오랜 기간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왔기에, 내 감정을 캐치하는 것이 어려웠다. 기껏 생각해서 답변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건 생각이고요, 생각 말고 감정은 어때요? 지금 어떤 느낌이 들어요?” 하아.. 환장할 노릇. 생각이나 감정이나 그게 그거 아니냐고?! 나는 생각과 감정의 구분이 어려웠다. 아니, 생각 속에 묻혀있는 감정을 캐치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사람은 발전하는 존재. 계속하여 질문을 받으니, 어느새 내 감정을 캐치하는 것이 보다 쉬워졌고, 어느새 꺽꺽 소리를 내며 서럽게 울고 있을 때가 많아졌다.
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진솔한 자기 존재를 만날 수 있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자기 존재에 더 밀착할 수 있다. 느낌에 민감해지면 액세서리나 스펙 차원의 ‘나’가 아니라 존재 차원의 ‘나’를 더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 ‘나’가 또렷해져야 그 다음부터 비로소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정혜신, 당신이 옳다-
정혜신 선생님의 말대로, 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를 맞닥뜨리게 해주었다.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처음 들은 “지금 감정이 어때요?”라는 낯선 질문은 스펙 차원의 ‘나’가 아니라, 존재 차원의 ‘나’를 만나게 해주었다.
[사진출처 : Greg Rakozy /unsplash]
지금의 나는 감정을 말하는 것이 수월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자신의 감정도,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지도 못한 채, 오로지 꾸역꾸역 달려가던 2,30대의 나’가 안쓰러워 애잔함을 느낀다. 상담심리대학원을 다니면서 “존재”를 만나던 순간들이 떠올라 흐뭇함을 느끼고, 대학원 졸업 이후로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약간의 불안감을 느낀다. 애잔한 나. 흐믓한 나. 불안한 나. 이 모든 것이 나다. 이제 나는 이 모든 나를 귀히 여긴다.
“지금 감정이 어때? 지금 마음이 어때?”
나는 이제 이 귀한 질문을, 아이에게, 남편에게, 친구들에게, 회사 후배들에게 던진다. 아이와 남편처럼 이제는 이 질문이 익숙해진 이들도, 과거의 나처럼 이 질문이 당황스러운 이들도 있다. 이들의 표정과 답변에서 뿜어져나오는 감정이, 존재가 사랑스럽다. 어느 날 회사 후배가 손편지를 써주었다.
“변호사님, 저는 사실 부끄럽지만 이제까지 살면서 내가 누구이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고, 나의 옆에 누가 있었으면 좋겠는지 큰 생각을 하지 않으며 살아왔어요. 그냥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변호사님 말씀처럼 내가 누구인지, 나에게 일과 삶은 무엇인지, 가족은 어떤 의미인지 고민이 필요한 때가 온 것 같아요. 그 앞에 변호사님이 계셔서 큰 힘이 된답니다”
선배에게 손편지까지 써주는 고운 마음을 가진 후배가 자신의 존재를 만나기 시작한 것 같아 기쁘고, 흐믓하다.
이 글과 함께 하고 있는 그대, 지금 그대의 마음은 어떠한가요? 그대의 마음이 평안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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