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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께 하는 마법 May 28. 2022

어린 날의 길을 좇으면 길이 보일까.

그러던 어느 가을 날의 출근길, 못 보던 건물 간판이 눈에 띄었다. 


“OO상담심리대학원”


상담심리대학원? 그게 뭘까? 출근하자마자 검색창에 ‘상담심리대학원’을 쳐보았다. 말 그대로 상담심리를 공부하는 대학원. 학부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공자도 입시에만 합격하면 다닐 수 있으며,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상담심리사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상담심리대학원은 학문 중심인 일반대학원과 실무 중심인 특수대학원으로 나뉘는데, 특수대학원은 평일 야간에 운영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주말에 운영되는 곳은 없었다. 로펌 변호사가 평일 저녁에 대학원이라니, 언감생심. 검색창을 닫았다. 일이나 하자. 


그러나 한번 눈에 띈 건물 간판은 출근길마다 내 마음을 두드렸다. 매일 아침 마음이 요동쳤다. 

‘안돼? 진짜 안돼? 왜 안돼?’

‘안 되지 그럼. 미쳤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어떻게 평일 저녁에 두 번이나 자리를 비워? 팀 사람들한테 뭐라고 말할 건데. 가뜩이나 워킹맘이라고 눈치 보이는데. 너 회사 그만 둘 거야? 이 나이에 변호사 그만 두고 뒤늦게 상담심리사라도 되려고? 아니, 대학원을 간다면 법학대학원을 가야지, 무슨 상담심리대학원이야? 정신 차려, 좀!’

‘그럼 도대체 언제 되는데! 어느새 벌써 마흔이라고!!!’


‘어느새, 벌써, 마흔’이라는 지점에서 난 말문이 턱 막혔다.  

‘그러게. 벌써 마흔이네. 나를 위해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마흔이네.’ 


내 마음은 다양한 각도에서 명분을 찾기 시작했다. 


‘지금의 네 삶이 누군가에게는 성공한 삶으로 비춰질 지 몰라도, 너는 마음에 안 들잖아. 지금 네 삶이, 세상의 기준에 맞춰진 것 같아서 불편하고, 공허하잖아! 네 어릴 적 꿈이야. 그 꿈을 쫓아보면 길이 보이지 않겠어?’


 ‘그래. 변호사도 결국 사람을 도와주는 일이잖아. 사람을 알아야 사람을 돕지. 상담심리를 알게 되면 의뢰인들을 더 잘 상담해줄 수 있지 않겠어? 의뢰인들의 힘든 사정을 속속들이 알아야 하는 것이 변호사의 일. 그 힘든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나서 법률적인 면만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면까지 케어해준다면, 의뢰인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겠어? 너 개인 의뢰인 사건 할 때, 그 내밀한 사정을 속속들이 듣고서도 법률적인 해결 밖에 해주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까웠잖아!’


‘야, 요새는 융합이 대세란다, 융! 합! 변호사의 일과 상담심리사의 일이 융합되는 일이 있지 않겠니? 스콧 애덤스도 뭔가 남다른 삶을 원한다면 특정한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거나, 두가지 이상의 일에서 매우 뛰어난 능력(상위 25%)을 발휘하라고 했잖아? 변호사로서는 상위 25%에 들었다고 할 수 있으니, 법학대학원이 아니라 상담심리대학원을 가서 상담심리사로서 상위 25%에 들어보자! 멋진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거야. 너, 이거 되게 훌륭한 커리어다. 네가 지금 뻘짓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임마.’


‘그 동안 부모님 부양하고, 아이 키우느라 네가 하고 싶은 거 한번도 못하고 살았잖아. 벌써 마흔이라고, 마흔. 이제 네가 하고 싶었던 거, 네가 공부하고 싶었던 거. 해볼 수 있지 않아? 너한테 그럴 자격 있지 않아?’


난데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마음. 39살, 텅 비었던 공허한 마음은 어느 새 상담심리대학원으로 가득 찼다.  


결국 난 한보 후퇴하여, 대학원 입학시험이라도 준비해보기로 했다. 입학시험 준비하다가 때려치고 싶어질 수도 있는 일이니까. 야간수업이 있는 특수대학원 중에서 실무에 가장 특화되었다고 인기를 끄는 곳으로 마음을 정했다. 회사에서 이동이 어렵지 않아 마음을 끌었다. 대학원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상담심리학의 기본과목들을 공부해야 했기에, 한달 남짓한 시간 동안, 평일의 자투리 시간과 주말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공부를 했다. 다행히도 상담심리 공부는 입시공부조차 재미있었다. 결과는 합격. 하나님의 은혜였다.  


39살의 12월. 최종 합격통지를 받고 잠시 심란해졌다. 회사랑 병행할 수 있을까? 회사에서 알게 되면 뭐라고 할까? 팀 선배들의 굳은 표정이 떠올라, 내 마음도 이내 경직되었다. 하지만 다시 빼꼼히 고개를 드는 파워풀한 단어. 마흔. (와, 무섭다. 마흔.) 에라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가보자. 상담심리대학원. 어린 날의 꿈을 좇아보면, 무언가 길이 보이겠지.

 

<사진출처 katie moum @unspalsh>

그렇게 나의 40대의 여정은 상담심리대학원과 함께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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