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하여 사람들의 감정을 잘 캐치하지만, 아직 어린 탓에 관계에는 봄,여름,가을,겨울이 존재함을 알지 못하였던 어린 아이. 그런 어린 아이의 눈에, 부모님의 관계는 위태로워 보였다. 씩씩한 엄마 뒤로 외로움과 허망함이, 가부장적인 아빠 뒤로 가장의 무게와 외로움이 보였다.
엄마, 아빠를 사랑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엄마, 아빠를 주축으로 한 삶의 기반이 무너질까 두려웠기 때문일까. 난 엄마, 아빠의 외로움을 덜어주기 위하여 부지런히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열심히 공부하여 엄마, 아빠의 자랑이 되고자 하였다. 그렇게 내 삶의 터전인 가정을 지키고자 하였다. 엄마는 ‘딸은 엄마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프레임에 빠져 딸에게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 얘기까지도 내게 털어놓곤 하였다. 10대 소녀에게는 엄마의 넋두리를 그저 넋두리로 흘려버릴 수 있는 지혜가 없었기에, 어린 나는 엄마를 점점 더 위태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가 위태로워 보일수록, 아빠 역시 위태로워 보였다. 아빠가 술에 취해 들어온 날이면, 화가 난 엄마 대신 아빠에게 꿀물을 타주고, ‘공부하는 애 붙잡고 뭐하는 거냐’는 엄마의 차가운 눈총을 뒤통수로 느끼며, 가만가만 술주정을 들어주었다. 아빠가 잠든 뒤에는, 엄마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조금 더 늦은 새벽까지 공부를 하였다.
IMF 금융구제의 여파로 아빠가 사업에 실패한 후, 나는 열심히도 돈을 벌고 모았다. 로펌에서 상당한 월급을 받았지만, 천 원짜리 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빚을 갚고, 돈을 모았다. 그렇게 돈을 모아 부모님에게 마음 편히 사실 수 있는 아파트를 마련해드리고, 많진 않지만 적지도 않은 생활비를 드렸고, 때때로 안부를 살폈다.
대학원 시절 상담을 받고 돌아오던 어느 날, 내 속에서 불쑥 불평이 솟아 나왔다.
“아, 진짜, 도대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건데? 대체 어디까지 해야 행복해지는 건데?!!!”
응? 이게 뭐지? 곰곰히 생각하다가 난 이게 부모님에 대한 불평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훗ㅡ. 우습지 않은가? 부모한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거냐’니. 내 마음속 어린 아이는 아직도 부모님을 위태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작은 몸으로 부모님을 지키겠다며 종종거리며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부모님이 자기의 기준만큼 행복해보이지 않으니, 화가 이따만큼 났던 것이다. 나는 이 귀여운 꼬마를 품에 안고, 마흔이 넘어 깨달은 것들을 가만가만 말해주었다. ‘너는 딸이지 부모가 아니야. 딸이 딸의 위치가 아니라, 부모의 위치에 있으면, 부모님은 행복해질 수가 없어.’
나는 딸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괜찮다는 말 대신,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투정을 부렸다. 안아드리는 대신, 안아달라고 졸랐다. 마흔이 넘은 딸이 안아달라고 징징대니, 부모님은 어이없어 하면서도 웃으면서 나를 안아주셨다. 그 때 나는 보았다. 부모님의 행복한 미소. 내 어린 나도 부모님의 행복을 느꼈을까.
그렇게, 내 어린 나를 잘 만난 줄 알았다. 그러나 내 어린 나는 조금 더 복잡한 아이였다. 몇 년 후 또 다른 집단상담에서 내 ‘어린 나’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교수님이 또다시 내 생각을 뛰어넘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앞에서 나온 교수님과 다른 교수님이다. 집단상담을 꼭 교수님들이 진행하는 건 아니지만, 대학원에서 주최하는 집단상담은 대가들을 리더로 모시다 보니, 대학교수님들이 리드하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제나님(이번 집단에서는 서로를 ‘스스로가 지은 별명’으로 불렀다. 이날 내가 선택한 별명은 제나였다)은 초인이 되고 싶었다고 하셨는데, 정말 초인이었던 것 같아요. 보통 가족 내에 갈등이 있으면 아이는 부모의 한쪽과 융합이 되어 다른 한쪽 부모와 맞서게 되는데, 제나님은 그 어느 쪽과도 융합되지 않고 부모의 부모가 되어 그 둘을 보살피는 전략을 택했죠.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근데 제나님은 왜 그런 전략을 택했을까요? 헌신은 통제를 동반하죠. 제나님은 무엇을 통제하고 싶었을까요? 헌신을 통해 제나님은 무엇을 얻었을까요? 제나님은 왜 자꾸 가까운 사람들에게 헌신을 하려고 하고, 그 헌신의 모습은 자기착취적일까요? 생각해보세요. 아까 아버지가 사업에 최종적으로 실패한 날, 아픈 몸을 이끌고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자신을 몰아붙이며 고시촌까지 몇 정거장을 걸어갔다고 했죠? 어느 엄마가 아픈 아이한테 ‘정신 똑바로 차려! 정신 차리게, 학원까지 버스 타지 말고 걸어가!’라고 몰아붙였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동학대 아니예요? 어느 엄마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공부하느라 피곤에 쩔은 아이에게 ‘돈 아껴야 하니까 천원짜리 김밥으로 끼니 때워’라고 하면, 아동학대 아닌가요? 제나님한테는 자기착취적으로 헌신하려는 무의식의 패턴이 있어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저 깊은 한숨과 함께 묵묵부답 가만히 있다가 교수님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 어떻게 해야 하죠?”
교수님은 복잡한 표정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내가 제나님이랑 하고 싶은 작업이 있어요. 다른 집단원들도 함께 도와줘야 되요. 한번 해볼래요?”라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수님은 나를 가운데 세운 후, 집단원들로 하여금 나를 둘러싼 후, 팔과 팔을 굳게 잡도록 하여 인간 결계를 만들었다. 교수님은 집단원들에게 죽을 힘을 다해 팔을 잡아 끝까지 결계를 지키라고 당부한 후, 내게 바라는 것들을 말하라고 했다.
아이가..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아이는 외로우면 안돼!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 아이는 행복해야 돼!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 엄마는 행복해야 돼!
아빠가 삶이 버겁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아빠의 삶은 버거우면 안돼!
남편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남편은 힘들면 안돼!
교수님은 나의 말들을 하나씩 당위의 말들로 바꾸어 말했다. 내가 꺼낸 바램들은 교수님의 목소리로 당위의 말들로 바뀌어져 내 위에 턱. 턱. 얹어졌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집단원들이 만든 결계 안에 갇힌 나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면서도, 이상하게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교수님은 나를 둘러싼 집단원들에게 교수님이 바꾼 당위의 말 중 하나를 선택하여 큰 소리로 외쳐달라고 했다. 집단원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내 아이는 외로우면 안돼!”, “내 아이는 행복해야 돼!”, “내 엄마는 행복해야 돼!”, “내 아빠의 삶은 버거우면 안돼!”, “내 남편은 힘들면 안돼!” 사방에서 에워싸는 집단원들의 당위의 목소리. 집단원들의 감정이 빠른 속도로 고조되면서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그 목소리가, 너무 무겁고, 버겁고, 듣기 힘들었다. 나의 감정도 고조되었다. 나의 이성은 ‘여긴 교실이야’라고 나를 제어했지만, 내 속의 어린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닥쳐! 닥! 쳐! 닥치라고!!!!!! ”
내 평생 이렇게 소리를 질러본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나를 둘러싼 집단원들은 교수님의 지침에 따라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높였다. “내 아이는 외로우면 안돼!”, “내 아이는 행복해야 돼!”, “내 엄마는 행복해야 돼!”, “내 아빠의 삶은 버거우면 안돼!”, “내 남편은 힘들면 안돼!” 나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눈을 감고 귀를 막으며 닥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인간 결계 밖에 서 있던 교수님이 소리쳤다. “자, 끊고 나와요! 힘으로 밀어요. 끊고 결계 밖으로 나와요!” 나는 집단원들이 만든 인간 결계를 끊고 나오려고 애썼다. 있는 힘을 다해 밀었으나, 인간 결계는 견고했다. 교수님이 계속 소리쳤다. “자. 있는 힘을 다해 끊고 나와요. 계속 그렇게 살거예요? 계속 그렇게 살거냐고요?!! 밀어요. 젖 먹던 힘을 다해 밀어요!!” 나는 다시 한번 있는 힘을 다해 밀고, 밀고, 또 밀었다. 너무 힘을 줘서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나의 이성은 다시 ‘이게 지금 뭐하는 상황이냐?’고 제동을 걸었지만, 내 ‘어린 나’는 이 결계를 끊고 나기를 간절히 바랬다. “제발, 제발, 제발 좀!!!!!”, “나 나갈 거야. 나 나갈 거라고!!!! 아아아악!!!!!!! 나, 나갈 거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발악하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밀어대자 결계가 끊어졌다. (아.. 집단원들 이날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안하고, 고맙다.)
인간 결계를 끊고 관성에 의해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나를 교수님이 확 잡아 안아주셨다. 나는 교수님 품에 안겨 한참을, 서럽게 울었다. 그것이 내 어린 나와의 만남이었다. 자신을 착취하면서까지 가족을 지키고 싶었던 용감한 수호자이자 멍든 천사였던, ‘어린 나’는 사실 너무나도 지쳐 간절히 그 굴레를 벗어나고 싶었다는 걸, 나는 이 작업을 통하여 깨달았다. (이 집단상담은 대상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상호작용 중심 집단상담인데, 위와 같은 작업은 게슈탈트 기법을 활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의 작업이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잘 모른다. 다만 그 당위의 목소리들에서 기어코 벗어나고 싶었던 ‘어린 나’의 간절함만을 마음에 담을 뿐이다.)
작업을 마치고 자리에 앉은 후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아요. 아마 제나님은 오늘 이후에도 자기착취적인 헌신의 패턴을 버리기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오늘 결계를 끊고 나올 때의 안간힘을 기억하세요. 제나님은 이제 그 힘으로, 스스로를 먹이고, 스스로를 챙기고, 스스로를 돌보면서 자기착취적인 삶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집단원들 앞에서 다짐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끼니마다 맛있는 것, 몸에 좋은 것을 먹여주고, 잠을 잘 재웠으며, 운동도 시켜주고, 쉴 수 있는 시간을 주었고, 뭘 하고 쉬면 좋을지 같이 고민해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교수님의 예언처럼 지금도 곧잘 과거의 패턴으로 돌아가곤 한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잘 바뀌지 않을 뿐, 바뀌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과거의 패턴으로 돌아갈지라도, 이보 전진, 일보 후퇴를 반복하며, 어린 나의 생생한 절규를 붙잡고, 자기 착취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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