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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Jun 20. 2016

두부 한모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들로 가득하다..

주차장 앞 화단에는 재활용으로 분류된 식탁의자가 하나 있다.

출근시간 관리 아저씨가 일렬로 주차된 차들의 등을 몇대 밀어주시고 나면 연회색 근무복 단추를 풀어 윗옷은 헐렁하게, 바지는 무릎까지 걷어올리고 앉아 빠른 부채질로 잠깐씩 후끈해진 등의 열기를 지나가는 바람결에 식히신다.


한낮엔 시원한 나무그늘이 드리워져 여유롭게 앉아 담배를 피우신다. 플라스틱 초록 싸리비로 마당을 쓸다가 큰칼 대신 빗자루를 잡아세우고  이순신 장군처럼 늠름하게 앉아서 또 쉬신다. 하굣길엔 촐랑촐랑 대각선으로 주차장을 가로질러 옆동으로 달려가는 꼬마 녀석들이 자동차  뒤꽁무니에 숨었다가 뒤쫒아온 친구한테 금방 들켜버리고도 좋다고 킥킥대는 모습을 앉은채로 지켜보다가 '주차장에서 장난하면 에비한다~' 하시며 다정다감한 외할아버지 미소를 보여주신다.


어느날 집에서 쫒겨난 식탁의자는 재활용 센타로 끌려가진 않고 그렇게 관리 아저씨가 잠깐씩 앉아서 쉬실 수 있도록 하는 일을 맡아서 하고 있다.

한동안 정붙이고 살았주인과 이별 후 아직도 혼자서만 서럽게 삐걱삐걱 흐느끼며..


월요일이라 아파트 주차장에서 장이 열렸다. 빨리 차를 빼주지 않으면 어김없이 인터폰이 울리기 때문에 어쩌다 깜빡하는 날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미처 말리지도 못하고 수건을 둘둘 감은채 내려가서 차를 빼드린 적도 있었다.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 허리를 수그리고 굽신굽신 거리며 차까지 뛰어가는 동안 뻣뻣하게 서서 바라보는 시선에선 다 필요없고 빨리 차나 빼달라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진다. 그러니 부녀회에선 귀찮다고 장이 서는 것을 반대하는 안건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오늘은 어차피 장이 설 때쯤이면 출근을 할 거라서 여유롭게 천천히 내려갔었다. 그런데 오늘은 관리아저씨가 아닌 낯선 할아버지가 의자에 앉아 쉬고 계셨다. 건너편 화단 바로 앞에 주차를 해놔서 서둘러 가려고 의자랑 한 몸처럼 앉아계셨던 어르신의 앞을 가로질러 갔다.


죄송한 마음에 통행료 치르듯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하면서 인사를 건넸는데, 어르신은 내가 차 앞으로 걸어가 문을 열 때까지 뒷모습을 배웅하며 마치 오랫동안 준비하고 연습하신 것처럼 끝없이 덕담을 보태어 얹어주셨다.


"좋은 하루, 기쁘고 좋은일이 하루종일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뭐든 원하는대로 다 이루어지실거예요. 시간나면 복권도 사세요. 꼭 당첨될 겁니다.. ㅎㅎ~"


아이고.. 너무 황송해서 차에 앉았다가 시동도 못 걸고 다시 내렸."


"감사합니다. 실은 한주 시작 첫날이라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처럼 기분좋은 아침인데 선생님 아침인사에 이미 너무 좋은 날이예요. 고맙습니다.


마당에 비질을 하시던 관리 아저씨가 내차 앞을 막고 일렬로 주차된 차량을 밀어주러 오셨다가 거드는 말씀이 오늘 아파트 주차장에 장서는 날인데 내 차가 주차된 구역에서 오늘 좌판을 벌이실 분이란다..


새벽 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을 시간을 재촉해 달려 오셨을텐데,  차가 빠지길 얼마나 기다리셨을까 생각하니 송구스럽고 더 빨리 서둘지 못한 너무 죄송했다.


하지만 어르신이 보여주신 여유와 넉넉한 베풂 덕분에 하루종일 괜히 마음은 즐겁고 좋은 일들로 가득했다.


퇴근길 거의 장을 마감하 시간 즈음이 되어 뭐라도 하나 팔아드리고 싶었다.

 얼음띄워 달달하게 미숫가루를 타서 들렀더니 때마침 사려던 하얀 찹쌀이 있었다.


어르신 덕분에 오늘 하루 안전하고 감사했다고 다시 인사를 드렸더니 마지막  남은 두툼한 손두부를 주셨다. 덤으로 찹쌀값 삼천원에서 백원을 깍아 주시더니 하나는 정없다시며 이백원을^^~


멋진 모습을 담아두고 간직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르신도 사진을 문자로 보내주면 가보로? ㅎㅎ 남기시겠다고.

가만가만한 미소로 장을 접고 계시던 할머님이 오시더니 쑥송편 한 개를 입에 넣어주셨다.

곱고 선한 어른들.. 아름다운 신랑각시.


더운 날이었다.

그보다 뜨거운 날이었다.

그러나 따뜻한 유월중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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