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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May 27. 2016

엄마표 진짜 참기름

엄마는 늘 가족에게 제일 좋은 걸 주고 싶다..

개교기념일 재량휴업일이라 아침 일찍 엄마한테 같이 놀자고 전화를 했더니 엄마는 역곡역 재래시장까지 가서 참기름을 짜와야 하니 바쁘다고 퇴짜를 놓으셨다. 거기서 짜는 참기름이라야 진짜 참기름이란다. 다른 곳에선 식용유도 섞고 말만 국산이지 중국산이 태반이라고..식구들 먹일건데 그 정도 수고는 일도 아니라시며. 하긴 어릴 적 뉴스를 떠올려보면 명절 선물로 설탕이나 참기름이 주로 오갈 때였으니 양심 없는 꾼들은 때맞춰 내 배 불리자고 명절대목을 노려 가짜 참기름을 만들어 내다 팔다가 꼬리를 밟혀 `가짜 참기름 파동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었다.


어쨌든 그럼 진짜 국산 참기름을 짜러 같이 가자고 앞장서서 모시고 갔다. 시장골목에 들어서자 마자 어디서부터 시작된 줄인지도 모르겠는데 무턱대고 그 줄 끄트머리에 붙어 줄을 서야만 할 것 같았다.  시도 안된 이른 시간부터 기름집 앞은 이미  줄로 나래비를 서고 있었다. 줄을 선 사람들은 미리 짜놓은 기름을 사들고 가겠다는 손님들이라고 한다. 별차이 없을 것 같은데 엄마는 굳이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고 갓짜낸 기름을 사야만 성에 차시나보다.


 골목은 깨를 볶는 냄새와 고소한 참기름 냄새로 진동했다. 오른쪽으로는 순댓국집과 빈대떡을 구워 파는 집, 색색의 빛깔로 번들하게 탐스러운 과일가게들도 있었지만 왠지 어디에서건 참기름 맛이 날것 같았다. 중국산, 북한산 이름표를 붙여주고 참깨와 갖가지 곡식을 파는 가게도 있었는데 그럼 언젠가 통일만 되면 북한산 참깨는 국산 참깨가 되겠구나.

무슨 특별한 재주나 장사 수완이 있어서인지 기름집들끼리만 모여서 골목이 끝날 때까지 옆으로 나란하게 붙어있고 서로 마주보고도 여럿이었지만 유독 그 집만 북적북적 손님이 많았다.


주문을 해놓고 기름이 짜지는 동안 번호표를 받았으니 엄마랑 둘이서 손을 잡고 설렁설렁 시장 구경하면서 호떡도 한 개씩 사 먹었다.  시간이 넘게 기다리고 나서야  따끈따끈한 참기름 열병과 들기름 열병씩을 받아들고 기름집을 나설 수 있었다.


햇볕에 꾸덕꾸덕 잘 말렸다가 화단 거름으로 쓰면 좋다고 쟁반만한 깻묵까지 두 덩어리 얻어가지고 돌아오는 길엄마는 막내 딸내미한테는 참기름과 들기름 세 병씩을 챙겨 주시더니 언니네와 동생네는 각각  병씩 나눠주고도 남은 거 가지고 노인네 혼자 실컷 먹겠다며 참으로 흡족해 하시더라. 자동차 바퀴가 쿨럭대며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에 고여있던 진하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덩달아 출렁거렸다.


내일은 진득하고 향긋한 달래장에 쪽파랑 청양고추 쫑쫑 다져 넣고 진짜 국산 참기름 듬뿍 넣어 고슬하니 콩나물밥 지어서 양푼에 비벼 먹어야겠다.

모레는 아직 풋내가 덜 가신 파릇한 열무김치에 고추장, 들기름 아낌없이 뿌려서 열무 비빔밥을 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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