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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리아 Aug 02. 2016

반지를 향한 완전범죄

이렇게 위기를 모면해야만 하는 특별한 이유에 관하여..

어떻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어제 저녁부터 밤을 새워 인터넷으로 폭풍 검색을 하느라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오늘도 아침일찍 백화점 매장을 찾아가 이미 너무 오래된 디자인이라 구할 수가 없다는 실망스런 대답만 듣고 돌아와 결국 비슷한 디자인이라도 찾아서 제작을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혼 십주년 기념으로 선물받은 반지를 그 후로 십육 년째 끼고 있었다. 실은 다음 해 한여름 이맘때쯤이었는데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서 썬크림을 손등과 손가락까지 야무지게 발라보겠다고 반지를 빼서 무릎 위에 내려놨었다. 그런데 다시 손가락에 낀다는 걸 까맣게 잊고 그대로 주행을 하고 목적지 주차장에서 그대로 내리는 바람에 어이없게 반지를 잃어버렸었다. 반지를 잃어버린 것도 속상했지만 남편한테 미안해서 얼른 똑같은 반지를 맞춰서 여태 끼어온 전과가 이미 한번 있다.


 하지만 이번엔 너무 오랫동안 끼고 있던 반지라 오른쪽 손가락에 비해 손가락 굵기가 확연히 가늘어지고 하얗게 선명한 흔적까지 남아 있어서 그  빈자리가  너무 서운하고 허전해서 속까지 상한다.


어떤날엔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한 술자리가 길어져서 12시까지 들어온다던 사람이 이제 마지막 잔을 남겨뒀다고 전화가 오고, 지금 막 대리기사를 불러 출발했다는 전화를 끝으로 감감 무소식이길래 더이상 기다리지않고 먼저 침대에 누우면서 협탁위에 반지를 빼놓고 그냥 잠들었었다. 취중에 들어와서 보더라도 이젠 너란 놈이랑 끝장이란 선전포고 같은 거였다.


 잠결에 인기척이 느껴져서 살짝 실눈을 뜨고 보니까 새벽 두시가 넘은듯한데..살금살금 다가와서 손가락에 반지부터 끼워 놓더니 잠든척하고 있는 내가 깰까 봐 조용히 옆에 누운지 채 오분도 안되서 그대로 코를 골며 잠귀신한테 업혀가버렸다. 그래서 또 그 후로 5년을 더 그 반지를 낀 채 탈 없이 살아주고 있었다.


어제는 썬크림도 안 발랐는데 그럼 그 전날인가? 혹시 설겆이를 끝내고 땀이 나서 고무장갑을 벗을 때 같이 딸려 나갔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잠시 위안을 삼았지만 집에 오자마자 슬쩍 부엌으로 가서 혹시나, 제발..하면서 고무장갑을 뒤집어봤지만 아이고..없다..아무 곳에도 없다.


처음부터 고백할 생각은 전혀 안 하고 감쪽같이 완전범죄만 꾸미고 있느라 머리에서 쥐가난다. 종일 마음을 졸이며 여기저기 반지 모델을 찾아서 돌아다니느라 끼니도 걸렀다. 많이 지치고 피곤하다.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아서 제작 주문을 넣었다. 이미 오랫동안 나의 일부분이 되어 정이 들었던 반지가 나와의 인연이 여기까지 였다는 게 한없이 서운하고 미안하기만 하다. 제발 남편의 눈썰미 없음이 이번에도 실력발휘 되기를..너무 오래 끼고 있어서 이젠 낡은 느낌이 들어 리셋팅 했다고 해야지.


에구, 칠칠맞긴..도대체 어디에다 빠트린 걸까? 누구라도 잃어버린 반지의 새 주인이 되거든 이게  웬 떡이냐 하면서 후딱 헐값으로 팔아치우지 마시고 어쩌면 전생의 누군가와 소중한 인연이 닿았다 여기시고 잘 간직해주시길..그리고 이전보다 더 많이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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