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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입문 Dec 24. 2021

크리스마스엔 하이볼

#사실 #그냥 #사시사철하이볼 #와인도좋지만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 즈음에는 지인들과 모여 소소하게 파티를 하곤 했다. 파티라고 해도 멋들어진 파티라기보다- 친구들과 모여 만화책이나 보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시도 읽고, 악기로 연주를 하기도 했다. 그건 그저 한 번 보고 싶지만, 어쩐지 머쓱한 이들과 어떻게든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뭔가 뽐내고 싶어서 그런가? 안타깝게도 나는 한국 기준 중산층이 아니라 그건 아닌 것 같다. (다행히 프랑스나 영국 기준으로 중산층이라 만족하고 있다.) 양주도 연구하고, 책도 쓰게 된 기념으로 다시 하고 싶지만 할 수가 없다. (오미크론!) 고마운 이들에게 멋들어지진 않아도 한 잔씩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으니 적당히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술을 글로 보내본다.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올해도 미안하지만, 술은 셀프다. 


와인을 그냥 부으면 크리스마스다


    크리스마스에는 두 가지 색이 필요하다. (유래는 모르겠지만) 하나는 산타의 빨간색이고, 두 번째는 나무의 녹색이다. 나란히 두면 평소엔 그저 신호등 같다. 하지만 12월이 되면, 때가 됐다는 그 이유만으로 크리스마스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두 가지 색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좋은 술이 있다. 바로 와인이다. 음료는 빨간색이고 병은 녹색이다. 그저 병을 따서 컵에 붓기만 해도, 크리스마스 그 자체다. 게다가 로제 와인이라고, 붉은빛이 도는 와인이 있는데 이건 병을 따지 않고 놔두기만 해도 분위기가 산다.  


    하지만 나는 크리스마스엔 "하이볼"이라 목 놓아 외치고 싶다.


    이 한 문장을 증명하고 싶어 부지런히 사진을 뒤졌다. 다행히 크리스마스에 하이볼을 마시고 있다. 문제는 다음 봄에도 마시고 있다. 음? 여름에도 마시고 있다. 하, 가을에도 마시고 있다. 그냥 사시사철 마시고 있다. 사시사철 하이볼이다. 추우면 추워서 난방 때문에 건조하니, 하이볼을 마신다. 더우면 덥다고, 상쾌하게 하이볼을 마신다. 보아하니 아주 일 년 내내 하이볼만 마셨다. 


봄/가을엔 진토닉, 여름엔 모히또, 겨울에 다시 럼 토닉


    일 년 내내 마신 하이볼 속엔 라임이 잔뜩 들어갔다. 덕분에 무색무취의 음료인데도, 어쩐지 녹색 음료라는 생각이 든다. 음료를 녹색으로 만드는 건 어렵다. 녹색 와인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산토리 사의 미도리를 넣는 방법이 있겠지만, 어쩐지 맛있어 보이지 않는다.(근데 맛은 있다) 이걸 동네에서 찾기도 쉽지 않다. 음료가 꼭 녹색일 필요는 없다. 녹색을 잔뜩 넣으면 된다. 

 

Photo by Tata Zaremba on Unsplash


    라임의 녹색은 신선하고, 잘랐을 때 과육도 꽤나 이쁘다. 민트 잎을 구해서 음료 안에 넣으면, 마실 때도 청량하지만 트리를 보는 듯한 즐거움이 생긴다. 마시는 음료 자체의 색보다는 주변 어딘가에 포인트 색을 두면 된다. 마시는 술에 색이 있어 녹색 느낌을 주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포인트만 두어도 음료에 대한 이미지가 생겨난다. 


Photo by Mae Mu on Unsplash


    빨간색은 더 쉽다. (와인보다는 어려울 수 있다.) 무색의 보드카와 크렌베리 주스를 섞으면 꽤나 멋들어진 핑크색이 나온다. 취향에 따라 딸기 주스도 괜찮을 것 같다. 정확하고도 엄격하게 칵테일 레시피(코스모폴리탄)를 지킬 수도 있지만, 우린 바텐더가 아니다. 적당히 본인 입 맛에 맞게 섞어 먹어도 괜찮다. 게다가 여기에 빨간색 딸기를 살짝 잘라 컵에 꽂으면 그럴싸 해진다.  


그럴싸 : Photo by Boba Jaglicic on Unsplash

    딸기를 자르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딸기를 세로로 3 분할해서 단면을 보여주는 방법이 있다. 손이 가지만, 단면만 보여주는 느낌도 뭔가 도회적이다. 딸기 꼭지만으로 녹색이 좀 부족하다 느낀다면, 아까 쓰다 남은 민트를 하나 살짝 걸쳐줘도 보기 좋다. 


Photo by Richard Brutyo on Unsplash


    깔루아에 우유를 얹어서 마시는 깔루아 밀크, 어른의 크리스마스 후식으론 딱이다. 편의점에서 우유랑 깔루아만 챙기면 된다. 베일리스도 추가하면 조금 더 부드럽고 고급진 느낌이 든다. 색은 전혀 다르지만, 컵 옆에 산타가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크리스마스 같은 느낌이 든다. 

음료와 상관없이 포인트 컬러만 있어도 된다.


    이자카야에서 가장 일반적인 '하이볼'도 깔루아 밀크처럼 술 색만 봤을 때는 크리스마스와 영 어울릴 것 같지 않다. 가뜩이나 컬러도 노란감이 있는데, 거기다 두툼한 잔까지. 거리감은 더 멀어진다. 하지만 술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잔을 콜린스 잔으로 살짝 바꾸고 안에 빨간색 체리를 포인트로 살짝 넣어주면 소소한 파티에 제법 잘 어울리는 술이 된다.

 

Photo by Fidel Fernando on Unsplash


    이렇게 잔만 바꿔 줘도 느낌이 확 달라지는 술을 보면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생각난다. 노르스름한 술은 그대로인데 말이다. 술맛처럼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자리만 바뀌어도 달라 보이는 게 사람이다. 어쩐지 우습기도 하다. (회사원인 나와 글을 쓰는 나 같기도)


하이볼 안에  체리를 넣어도 예쁘다.


    오늘 같은 날 같이 놀 수 없어 아쉽지만, 각자 다른 술을 만들면서 놀아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술도, 재료도 채워 넣을 음료도 다 다르지만 뭐 어떤가. 어차피 정답은 없다. 어차피 만드는 함께 만드는 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실패하면 뭐 어떤가. 한 잔을 술과 약간의 탄산음료를 버릴 뿐이다. 맛이 없으면 쿨하게 버리고 새로 만들면 된다. 아까워서 맛없는 걸 꾸역꾸역 먹는 것만큼 애석한 일은 없다. 머리만 아프고, 맛도 없는데 칼로리만 섭취하는 것이다. 기분 좋게 버리고, 다음 잔을 마시자. 맛있는 한 잔을 즐겁게 마시기 위해 이런 날이 있는 게 아닐까? 


메리 크리스마스 :)



별 것 없지만 혹시 찾아볼까 싶어서

하이볼 만드는 방법

Photo by Molly Keesling on Unsplash
원하는 술 소주잔 1잔, 과일즙 좀 넣고, 나머지는 토닉/콜라/사이다


술(소주잔 1잔, 40~60ml) + 과일즙 + 탄산류(토닉/사이다/콜라) 


    술을 적당히 본인에게 맞을 만큼 넣는다. 소주잔 1잔 정도를 기준으로, 세게 먹고 싶으면 반 잔 정도 더 넣고, 나머지는 과일즙 조금 넣고, 얼음과 달달한 탄산을 채워 넣으면 끝이다. 마지막에는 얼음을 바닥부터 들어 올려서 살짝 들썩들썩한다. 비중이 달라서 위아래로 섞어줘야 잘 섞이기 때문이다. 들썩들썩 정도만 하면 된다. 인스턴트 커피를 타는 게 아니라서 저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많이 휘저으면 탄산이 날아가서 밍밍해진다. 너무 단 게 싫다면 취향에 따라 탄산수를 넣고, 설탕시럽을 넣어서 당도를 맞추는 것도 방법이다. 요즘엔 편의점에 각 얼음도 있고, 커다란 구형 얼음도 판다. 취향에 따라 넣으면 된다. 


토닉을 붓고 나서 바닥에 깔린 얼음들을 살짝 들었다 놨다한다.

        

https://brunch.co.kr/@kimibmoon/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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