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베어스 팬이 되었는가
두산베어스 입문기
어째서 베어스 팬이 되었나요? - 그러게 말입니다...
뭐 딱히 듣는 순간 바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 질문을 어쩌다 보니 최근에 3번 정도 들었는데 마땅히 ‘왜?’에 대해 답을 찾지를 못했다.
어쨌건 나는 꽤나 진득한 두산 베어스 팬이다. 25년 우리 팀은 9위를 차지했다. 뭐,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다. 이 와중에 아직도 한 시즌 내내 야구장 다니겠다면 시즌권을 지르고, 집을 이사하고, 야구를 보고 있다. 대체 나는 9위 팀을 왜 이토록 응원하고 있는가. 대체, 왜?
왜 인지는 여전히 모르겠지만, 어째선지는 기억이 난다. 야구장이 좋아진 날이 있었다. 나는 꽤나 길치인데 심지어 서율은 나에게 너무 낯선 곳이었다.
야구 만화 보다가 야구장 한번 가보고 싶어서 - 갔다. 야구장에 사람이 없었다. 월요일이었다. 참으로 을씨년스러운 살풍경이 기다렸다. 봄날 7시에 어두컴컴한 잠실구장은 거대 지하주차장 같은 으슥함이 있었다. 나를 데려간 친구도 함께 허탕 치며 허무하게 , 첫 시도 실패.
그래서 두 번째 시도는 꽤나 조사를 많이 했다. 이번엔 내가 길을 안내해 보겠다며 나섰다. 야구는 잠실에서 경기가 있어야 하고 두산이나 엘지라는 팀이 홈경기가 있어야 하는 거고 그게 월요일은 아니고 지하철 역은 꽤나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 갔다. 잠실역으로. 이번엔 사람은 있는데, 야구장이 없었다.
아직도 의문이다. 잠실야구장은 왜 잠실역에 없는지. 그리고 왜 그 옆인 잠실새내역에도 없었고, 종합운동장역에 와서야 드디어 깨달았다. 대구와 달리 야구장만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고. 아직도 잠실, 잠실새내, 종합운동장역은 왜 붙어있는지 너무나 화가 난다.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나네. 20년 동안.
세 번째, 즉 3주 차 만에 나는 야구장에
사람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두컴컴한 입구를 지나자 둥그런 야구장 하늘이 펼쳐졌다. 귀에 꽂히는 응원소리가 온 정신을 녹색 잔디밭이 펼쳐진 야구장으로 향하게 했다. 하늘과 흰 아구공도, 잔디밭과 야구공도 잘 어울렸다.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났다. 응원가가 터졌고, 누군가 이름을 외쳤다. 모두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때, 그가 나왔다. 39번. 이종욱.
그 박수를 받은 선수는 간절하게, 절실하게
뛰었다. 그 정도 박수받을만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날은 39번 이종욱의 복귀전이었다. 큰 부상에서 돌아온 날이었다고.
나는 무엇보다 그의 응원가가 너무 좋았다. 응원석 근처에 앉았고, 이종욱 응원가만 머리에 콱 박힌 채 돌아왔다. 라이브홀에 갔다 온 기분이었다고 할까. 그리곤 매주 갔다. 수업 끝나면 잠실야구장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거의 20년이 되었다. 이젠 솔직히 내가 창단하고 구단주가 되지 않는 이상 팀을 바꾸긴 어렵게 되었다.
지금은 그러니까 하여간 잠실구장을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야쿠르트 스왈로즈가 아니라 진구구장을 좋아해서 팀을 좋아한다는 말을 나는 너무 공감한다. 그 바람과 햇볕을 좋아하듯 나도 잠실구장을 좋아한다.
응원석의 그 정신 사나운 소리 지르는 순간을. 때론 테이블석에 앉아 카메라 셔터누르며 찰칵소리를 듣는 순간을. 저 높은 꼭대기 자리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는 시간을.
그러니까 그 하늘을, 때론 그 저녁노을을. 가끔은 그 응원소리에. 때론 역전만루홈런 때문에. 어떤 신입선수의 역전 적시타 때문에. 그리곤 우승을 했기에. 그 순간에 내가 있었기에. 그러니까 그래사 아직도 포기를 못하고 오늘도 야구장을 간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아직도 포기를 못한다.
어째서 베어스 팬이 되었냐고요? 어째선지 베어스 팬이 되었습니다.
p. s: 그러니까 돔구장을 만들더라도 꼭 개폐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