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때가 됐다.
언니들에게 말할 때가 됐다. 사실 몇 번이나 그만둬야겠다 싶었다. 다른 운동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나가기 직전까지 나가기 싫다. 여자야구인이 천 뭐 어떠랴. 나 하나 빠져도 운동 못하는 애가 하나 줄 뿐. 1,000이 999가 될 뿐이다. 때가 되었다.
평일보다 두 시간 일찍 나서는 게 쉽지 않다. 주말에 쉬지도 않고 이 시간에 일어나다니… 내가 무슨 영광을 보려고! 양말에 넣으며 미쳤지, 까만 언더를 입으면서 미쳤지 바지 입으면서 미쳤지. 허리띠까지 -미친- 내가 야구 유니폼을 입고 있다.
출발도 어려운데, 가는 길도 쉽지 않다. 버스에서도 흔들흔들 정신이 없다. 지하철에서 내려 한참을 걷는다. 야구장에 겨우 도착한다. 벤치에 야구가방을 턱 내려놓는다. 아직 아무도 안 왔네- 혼자 구시렁거리며 가방에서 글러브, 꺼낸다. 아무도 없는 넓은 잔디밭, 가만히 있기엔 좀 싸늘하다.
어둑한 야구장에서 아직 새벽 냄새가 난다. 콧속이 뻥 뚫린다. 눈도 번뜩 떠진다. 자연스럽게 . 야구장 어귀에서 뻐근한 몸을 휘적휘적 푸는 동안 언니들이 하나둘 야구장에 도착한다. 동그랗게 모여서 다 함께 몸을 푼다. 다리 끝까지 근육을 늘린다. 뻐근하다. 여기저기 ‘억’ 소리가 들린다. 멀쩡한 사람이 하나 없다.
드디어 캐치볼을 시작한다. 내가 공을 던지고 언니가 받는다. 언니가 던지면 내가 받는다. 포수 언니 글러브에서 기분 좋은 뻑 소리가 들린다. 수비 연습을 시작한다. 멀쩡한 곳 없는 감독님이 운동장 여기저기로 공을 배트로 쳐서 보내주신다. 야구장은 아비규환. “악!”하고 소리 지르며 감독님이 쳐 준 공을 따라 뛴다. 놓쳐서 뎅굴뎅굴 굴렀다.
“좀 쉬고 있어봐.” 앉아서 언니들을 구경한다. 은퇴한다던 언니들이 아직도 저렇게 공을 잘 잡는다. 언니들이 공을 잡을 신나서 손뼉 치며 “나이스!” 하고 외친다. 끝나간다. 아쉬우니 배트도 한 번 잡아보고 끝내야지. 짝을 지어 서로 공을 토스해서 올려주고, 깡깡 친다. 내가 보기엔 언니들의 은퇴는 올해도 유보다.
온 주변이 환해져 있다. 온몸으로 햇살을 맞으며 느낀다. 이렇게 소리 지르고 싶어서, 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잔디를 밟고 싶어서, 나의 은퇴도 유보다. 오늘도 그만두지 못하고, 야구를 한다. 야구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