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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posa Oct 30. 2016

가끔은 속아도 괜찮아

아모모리 오이라세계류 호텔 모닝커피 프로그램의 비밀

첫날 오후 오이라세계류 호텔에 도착하여 한국인 직원의 설명을 들었을 때, 우리 모녀의 관심을 끈 호텔의 프로그램이 하나 있었다. 이름하여 '모닝커피 프로그램'.

 
한국어 리플릿의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는 모닝커피 프로그램은 새벽 5시에서 6시에만 문을 여는 특별한 카페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선착순 50명에 한하여 진행되기 때문에 전날 미리 액티비티 센터에서 신청을 해야 한다. 


여행지에서의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엄마는 모닝커피 프로그램에 참가하기를 원했고, 내가 가지 않겠다면 혼자라도 다녀오겠다 했다. 여행지에서의 게으른 아침을 선호하는 나도 새벽 5시에서 6시 사이에만 문을 연다는 특별한 카페가 궁금해서 기꺼이 참가하기로 했다. 


노천 온천을 가기 전 액티비티센터에 들러 모닝커피 프로그램 참가 신청을 하니, 4시 50분까지 버스를 타기 위해 이 곳에 집결할 것과 화장실이 없으니 미리 다녀오라는 당부가 전해진다. 호기롭게 가겠다고는 했으나 아침에 일어날 수 있을까 하는 염려와 함께 잠이 들었다.




새벽  4시 20분. 

울리는 알람에 실눈을 뜨고 비척비척 욕실로 향한다. 세수만 겨우 한 뒤 옷을 입고 집결장소로 향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버스에 올라타고 계곡을 따라 10분쯤 이동하는 동안 운전기사님의 설명이 이어지더니  버스가 정차하고 사람들이 하차하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산뽀(산책)'라는 단어가 몇 번 들리긴 했는데 여기서부터 산책으로 이동하나 싶어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여름이지만 고산지대의 새벽이라 공기가 제법 선선하다. 

계류의 풍경을 눈으로 그리고 카메라에 담으며 산책을 시작했다. 이어지는 계류와 곳곳에서 계류에 합류하는 작은 물줄기를 감상하며 무리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모닝커피 프로그램이 사실은 산책 프로그램이고 산책이 끝나는 지점에서 커피를 한잔씩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모닝커피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초록숲에 온전히 둘러싸인 새벽시간을 즐기게 되었을 무렵 드디어 5시에서 6시 사이에만 문을 연다는 특별한 카페의 정체가 나타났다. 


모닝카페의 정체는 커다란 커피 보온 통 하나와 보온컵에 담긴 커피 한 잔. 


그마저도 미리 컵에 담아놓은 덕에 반쯤은 식은 커피잔을 하나씩 받아둔 우리 모녀는 어이없음에 웃음을 감추지 못하면서 계류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계류를 바라보며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는 내내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새벽 4시 기상의 모닝커피 프로그램의 결말은 이렇게 허무했지만 우리 모녀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이 생겼다. 새벽 5시에서 6시에서만 문을 연다는 특별한 카페에 속아 새벽부터 영문 모르는 산책을 했던 일은 유쾌한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영영 알지 못했을 특별한 모닝카페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고 말이다.

오이라세계류 호텔의 아침 산책 프로그램에 초대합니다.
20여 분의 계류 산책 후에는 커피 한 잔이 제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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