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환경에서도 어떻해서든 지내왔다 2016.11.13
요즘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살피면 이 시기 한국에 이렇게 자주 흐리고 비가 왔었나 싶다. 비와 함께 울긋불긋 낙엽들이 낙화 같이 내린 모습이 신선하다.
어제 대규모 집회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교회로 가는 워커힐 굽이길에서 바라보는 강 건너편 한강변의 희뿌연 공기를 바라본다. 그렇게 흐릿하고 불투명한 모습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건 나의 불투명한 앞날에 대한 의식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직장이 있거나 없거나 앞날을 알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결국 가장 밑바닥으로 들어가 보면 결국 남은 통장의 잔고가 얼마인가에 서 오는 답답함 그것이다.
비 오는 날은 보통 우울한 기분을 일으키는 것으로 사람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사우디에서의 5년에 가까운 시간은 나에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현 현장에서 사막에 짙은 구름이 끼고 강한 바람을 동반한 소낙비 같은 비가 왕창 내리던 날.
그날은 마치... 강아지가 눈 온 날 뛰는 모습이랄까, 자신이 기대하던 장난감을 손에 넣은 아이의 모습이랄까, 뭔가 들뜨는 기분이 있었다. 사막에서 맞이하는 비는 그랬다. 아니 그 이전에 비가 내릴 수 있다고 하는 계절이 되면서 아침 출근길에 구름이 끼는 날은 왠지 기분이 좋고 들뜨는 그런 기분이 있었다.
사막의 강한 햇살은 죽음의 이미지와 연결된다. 땀과 갈증을 상징한다. 중동 건설현장을 묘사하는 사진에서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는 얼굴이 타지 않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얼굴이 뜨겁기 때문에 하는 보호장비이다. 사우디 거리에서 상의를 긴 옷으로 입었다면 그건 장기간 거주하는 사람이다. 덥다고 짧은 옷을 입은 사람은 아직 중동의 삶을 모르는 방문객이다. 40도가 넘는 더위는 그냥 더위가 아니다. 난 온도계가 60도를 찍는 것도 보았다.
그런 나에게 비 오는 사막은 아라비안나이트나 사막 여행기에서 보는 사막의 낭만을 잠시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내가 있던 사막은 사우디아라비아 남동부의 아부다비와 오만 인접지역이었다. 이 지역은 높고 낮은 모래언덕(Dune)이 붉은색 모래로 이루어져 있다. 사실, 정말 장관이고 아름답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늘 죽음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가까운 도시가 800km밖에 있다. 사실 사막 도로를 이동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백수생활 5개월째 접어든다. 하지만 왠지 아직도 그 열기가 몸속에 남아 있는 듯 여름과 가을 그리고 지금 겨울로 접어들수록 몸이 추워지는 날씨에 적응이 쉽게 안된다.
그리고 일자리 정보를 보면 눈길이 자꾸 해외, 중동.. 이렇게 간다.
다시 그곳에 갈 수도 있다. 힘들었지만 가고 싶기도 하다. 어찌 되었던 지난 5년간 나의 삶과 나의 가족의 삶을 지탱하게 해 준 곳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