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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의권 Nov 18. 2016

이력서

또 이력서를 수정한다    2016.11.17

40대가 되어 이력서를 쓰니 이것은 단순히 구직을 위한 서류가 아닌 삶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같이 느껴진다.


이직을 5년 전에도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30대 중반의 실무자 수준이었고 지금은 40대 중반의 관리자를 대비하거나 관리자가 될 수 있는 나이이다.

내가 일하는 건설업은 비교적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경력을 쌓아야 되는 직종이다. 이런 점에서 중년이 되어 중간관리자의 위치가 되니 예전과 달리 이력서를 쓰는데 몇 가지 어려움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내가 고민하고 선택했던 지난 나의 경력들이 남들에게는 다르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첫째, 경력이 짧지 않은 만큼 많이 해봤고 잘하는 분야가 있기도 하지만, 동시에 많이 해보지는 않았으나 일해온 경력을 바탕으로 한 '할 수 있다' 하고 말하거나 ' 앞으로 하고 싶다' 하는 분야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자면 나는 초급과 중급 기술자 시절 토목설계 분야에서 일했다. 하지만 경력을 쌓아나가면서 그것이 전부가 아닌 실제 건축물을 만들어 올리는 시공관리 분야의 가능성에 눈을 돌렸다. 

둘째, 일의 영역이 한국에서만 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설계 일을 할 2000년도 중반, 당시 부분적으로 해외사업을 진행하면서 국내의 건설시장이 포화되고 축소될 것이며, 궁극적으로 건설산업은 개발도상국에서 많이 이루어지는 특성상 많은 개발이 이미 완료된 한국은 앞으로 파이가 줄어들 것이 뻔하다는 그런 생각을 하였다.


이 두 가지만 조합하여도 이직의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이력서를 이곳저곳 내고 아무런 반응 없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느끼는 것은 이런 나의 이력이 그냥 널뛰기 식으로 상황이 되는 되는대로 살아온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라는 말의 의미가 동양과 서양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조직적인 융화가 중요시되는 조직문화 때문인지 이렇게 이리저리 다닌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서 일하면서 외국 기술자들과 일해보면 한국에서 말하는 이른바 '정규직, 계약직' 같은 표현과 개념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오히려 계약직이 더 보편적이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이 더 유능하고 다양한 경력을 쌓고 관리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부분도 보았다. 

지난 사우디에서 보낸 4년 6개월의 시간은 '프로젝트 기간제'라는 고용방식으로 일한, 일종의 계약직이다.

그러나 일할 때는 현장에서 어떤 직급이나 직무의 권한이나 책임에 제한 없이 일했다. 그러함에도 이직의 상황에서는 '계약직'이라는 일종의 별도의 꼬리표가 붙는 듯하다.


몇 달간의 이력서 쓰기와 정리와 수정을 거듭하면서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많은 곳에 지원할 수 있는 가능성의 폭을 넓히는 식의 이력서 서술은 좋지 않다. 아실 15년 가까운 경력이 되면, 한 전문 분야 내에서 기웃거리면서 보고 배운 것들이 많다. 그것들을 다 일일이 말하면서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적는 것은 이력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어쩌란 것이냐, 도대체 뭘 하고 싶은데?'라는 반응이 생긴다. 구직 기간이 길고 어려워져도 자신의 경력을 떠벌리거나 포장하지 말고 중요한 마치 척추와 같은 일련의 중요한 흐름들을 어필해야 됨을 느낀다.


둘째, 동시에 자기가 지금까지 많이 했고 잘하는 분야,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더 발전하고 싶고 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른바 시니어라고 할 수 있는 50대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현상황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배우고 경험해 보고 싶은 방향이나 계획이 없다면 그런 사람은 현재 하고 있는 일에서도 더 나은 성과를 얻지 못한다. 현장의 중간관리자는 현장 소장의 생각과 관점을 가지고 일해야 된다고 배웠다. 그처럼 '내가 지금 잘하는 것을 가지고 일하겠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닌 나에게는 여전히 무언가 더 하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이 나를 발전시킬 것이고 그것을 통해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회사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있어야 함을 느낀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입사원서로 만든 자기소개서의 양식들을 보면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을 서술하는 부분들이 있다. 


셋째, 좋은 일자리는 기다려야 한다. 마치 좋은 이력서는 낚시꾼의 미끼와 같다. 미끼를 던져 놓고 이리저리 흔들고 이리 던졌다 저리 던졌다 하는 것은 좋지 않다. 때론 헤드헌터 같이 물고기를 몰아주는 사람들의 도움도 있으나 그것도 기다려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이력서라는 미끼는 점점 더 숙성되어져 간다.

가을이 깊어져 간다.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면서 아파트 주변의 단풍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색채가 아름답다. 햇살은 투명하지만 그것을 스펙트럼으로 보면 무지개 빛으로 갈라지는 다양성이 있다. 사람의 가치는 한 가지로 제단 될 수 없다. 그래서 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것에 도전하고 지금도 더 뭔가를 하고 싶은 이런 삶의 자세가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남들에게는 현란하기만 한 색채가 아닌 나와 주변 사람들에게는 투명하지만 밝게 비추어지는 빛으로 보일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오늘도 이력서를 쓰면서 느끼는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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